영남알프스 관광산업이 새로운 유망 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걷는 길이 뚫리고 케이블카가 놓이고 캠핑장 등이 생기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느라 아이디어도 백출하고 있다. 그 모두가 산을 살리고 사람을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덧쓰고 있다. 영남알프스는 늘 높고 깊고 넓고 아늑하고 그윽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산악관광의 열풍에 휩싸인 영
울산이 '전화앵'의 망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넘기고도 전화앵 영웅만들기에 안달복달하고 있다. 지난 6월의 열세 번째 전화앵제가 본보기다. 아무리 울산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긴 여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울산과는 상관없고, 심지어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전화앵에 목을 매달 하등의 이유는 없다. 전화앵에 대한 기록은 조선 중
울산학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일은 뭘까? 그 무엇보다 울산에 대한 선행 연구결과물의 목록집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겠다. 울산의 힘이 미친다면 그 목록집은 역사시대부터의 모든 기록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기록까지를 총망라한 것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겠다. 여기서 양해하여 주시리라 믿으며 목록집과 관련된 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하고자 한다. 수년
2014년 6월 27일. 닷새 전 그 날은 울산에 문화원이 생긴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쉰 살 생일을 맞았지만, 그 날 울산의 5개 구·군 문화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50주년이라고 하여 부산을 떨고 반드시 무슨 행사를 거창하게 떠벌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5개 문화원이 함께 민선 6기의 새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조촐한
지난 주 토요일 '오영수 문학관'에 다녀왔다. 차일피일하다 문을 연지 다섯 달이 다 돼서야 찾아 나선 첫 발걸음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문득 지난 일이 떠올랐다. 선생이 말년에 웅촌 '침죽재(枕竹齋)'에 둥지를 튼 이듬해 1978년 초가을 어느 날 해거름이었으리라. '중구 옥교동 버스정류장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서상연(徐相演) 선배를 만났다. 손에
울산암각화박물관이 5개년 계획으로 야심차게 펼치고 있는 '한국의 암각화' 총서 발간사업이 오는 10월 대장정을 끝내게 된다. '한국의 암각화' 발간은 암각화 연구에 있어 가히 기념비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유일의 암각화 전문박물관으로서는 당연히 펼쳐야 할 사업이지만, 무수한 난관을 넘고 또 넘어야만 하는 그야말로 쉽지 않은 사업이기
"아쉬웠다. 그 정도 밖에 꾸밀 수 없었을까? 무언가를 빠뜨리고 전시한 것 같았다." 울산 땅에서 살다간 선조들의 삶과 죽음을 표현한 울산박물관의 '태화강인의 삶과 죽음' 특별전을 관람한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다. 하나같이 특별전인 만큼 볼거리가 꽤 되리라는 생각으로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았으나, 영 실망했다는 반응이었다. 이런저런
울산과 경주는 10년 시차를 두고 똑같이 대규모 개발로 도시 형태가 확 바뀌었다. 당시의 중앙정부가 두 지역의 강점을 살려 국가경제의 버팀목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울산은 1960년대 초에 공단으로, 경주는 70년대 초에 문화관광도시로 만들어 나라 살림을 살찌우려 했다. 경주가 그나마 여건이 나았다. 신라 고도로 풍부한 역사유적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달 말 50년 전 대통령 아버지가 찾은 독일을 대통령 딸이 찾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50년 전 우리는 얼마나 헐벗고 굶주렸던가. 얼마나 굶주렸으면 보릿고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까. 지금 그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실감하는 이들이 몇이나 되랴. 다 꿈 같은 이야기다. 그 시절의 절망을 넘어 국부(國富)를 이룬 사실을 기록한 책이 나와 우리를 울리
울산의 이름값을 제대로 한 책이 나와 기쁘기가 한량없다. 그 책은 울산광역시가 이번에 펴낸 '2013 울산의 문화재'다. 단순히 전년도에 나온 울산의 문화재 책에 새로 지정된 문화재를 실었거나, 오탈자를 수정 또는 끼어 넣어 펴낸 것이 아니다. 내용을 완전히 뜯어고친 새로 쓴 전면 개정판이다.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놀랐다. 울산시는 해마
요즘 시대의 화두가 단연 비정상화의 정상화다. 어느 시대인들 비정상적인 일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그럼에도 새삼 비정상화의 정상화가 국민 관심과 공감을 끄는 이유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실천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입버릇처럼 겨우 시늉만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울산 문화계 역
울산의 문화원이 올해 반세기를 맞았다. 그러니까 오는 6월 27일이 울산에 문화원이 태어난지 꼭 쉰 살이 되는 날이다. 50년 전 울산은 산을 허물고 바다를 메워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라는 공업단지를 만드는 일에 온힘을 썼다. 온통 먹고 사는 일에 매몰됐다. 문화예술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울산의 비극이었다. 이후 도시발전의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 열
울산학춤은 전통무인가? 아니면 창작무인가? 울산시민이라면 거의가 전통무로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뒤늦었지만 이렇게 울산학춤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단순히 울산학춤이라는 한 예술작품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울산 사회의 전체 수준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년간 울산 사회는 검증도 없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울산
울산광역시가 문화재단을 만들려는 실천의지가 있었다면 벌써 만들고도 한참은 지났을 것이다. 세월만 그냥 흘러보냈다는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울산광역시가 전혀 생각도 못한 종잣돈이 생기고도 10년하고도 그 절반을 더 넘겼는데도 문화재단을 만들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 아예 실천은 하지 않고 있으니 정녕 딱한 노릇이다. 전국 16개 광역단
삼남농협 고향주부모임은 12일 연말연시를 맞아 관내 소외이웃 65가정에게 쌀, 라면 등 500 원 상당의 생필품을 전달했다. 이날 회원들이 전달한 생필품은 해마다 작천정 벚꽃터널 먹거리장터를 운영하면서 모은 수익금으로 마련했다. 고향주부모임 측은 " 성금 마련을 위해 작천정 벚꽃터널 먹거리장터에서 봉사해주신 회원과 장터를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지금 울산박물관에는 울산의 역사문화를 보여주는 두 가지 기획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두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새삼 울산의 박물관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그것은 울산 정신을 구현하고 선양하는 일이 아니랴. 어떤 계층의 시민이나 울산의 역사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만 하리라. 그러므로 박물관의 핵심인 학예연구직의 역할이 매우
울산을 나타내는 동물로는 단연코 '고래'와 '용'과 '학'이 꼽힌다. 용과 학은 7,000년 전 반구대 암각화에서 유래된 고래보다는 역사에서는 뒤지지만, 서로가 신·구체제라는 시대정신의 표상으로서 충돌하면서까지 울산의 공동체 형성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울산에서 용과 학의 활용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울산에서 용은 태화사의 용을 먼저
대곡박물관이 연이어 큰 일을 하고 있다. 찬사를 보낸다. 울산을 알리는 일련의 특별전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시립박물관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구태여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 특별전을 여는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곡박물관은 대곡댐의 건설과정에서 수습된 토기류와 철기류, 기와류
매우 어리석은 질문부터 해야겠다. '심포지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돼야 할까?' 이 질문부터 하는 이유는 울산에서 매번 열리는 심포지엄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결코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최 측이 심포지엄의 주제별 토론이 기본원칙에 어긋나게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텐데도, 나중에 여는 심포지엄 역시 똑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한글날이다. 한글날이면 울산에서는 맨 먼저 외솔 최현배 선생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선생이 태어나신 곳이 바로 울산이고, 선생이 한글 연구와 보급에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선생은 비록 몸은 울산을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늘 고향 울산을 잊지 않았다. 선생이 남긴 글에 잘 드러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13년 뒤 1983년 12월 당시 울산문화원이 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