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축년에 순흥이 폐부가 된 후 고치령과 마구령을 넘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장꾼들이 넘어 다니던 길은 토끼나 고라니가 다니는 길로 변했다. 정축년에 목숨을 걸고 소백산을 넘어와 영월에 자리 잡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순흥은 역모의 고장으로 낙인찍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렸다. 정축년으로부터 십일 년이 지난 무자년 9월이었다. 영월에는 때 아닌 손님이 들이닥쳤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의금부도사가 식솔들을 거느리고 영월을 방문했다. 식솔이라 봐야 젊은 새댁과 똘똘한 아이들
울산신문 제10기 독자권익위원회 세 번째 정기 월례회가 25일 홍성우 울산시의원실에서 열렸다. 이날 독자권익위원회에는 김순경 위원장(법무사), 김남규(서경플러스종건 대표), 김상욱(국민의힘 울산 남구갑 당선인), 이현진(울산세무회계 대표세무사), 이상민(한국타이어북울산㈜ 대표), 홍성우(울산시의회 의원) 등 6명의 위원이 함께했다. 정기 월례회에서 본보 발전을 위해 제시됐던 의견들을 정리했다. 초저출생 사회 등 기획기사 발굴 제안 김순경 위원장은 "국내 합계출산율이 2016년 1.17명에서 최근 0.6명대까지 떨어져 국가소멸위기에
시민의 보건·환경과 관련된 정책을 과학·기술적으로 지원하는 울산보건환경연구원은 2000년 남구 야음동 청사에서 출발해 지역의 중추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급격한 기술 혁신과 국제화로 인해 신종 감염병이 속속 등장하고 각종 개발 행위에 따른 주민 생활권 침해와 환경 오염 사례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연구원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졌다. 코로나19 사태와 봄철 미세먼지는 시민들에게 보건과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충분했다. 첨단 장비 등의 도입으로 과거에 비해 대응 능력은 크게 향상됐지만, 시민들의 생활권과 건강권요구 역시 높
영월이라면 임영복이 제격이었다. 십 년 전에 영월 관아에 머문 적도 있어 지리에는 환했다. 영월에 잠입한 임영복은 바로 관풍헌을 찾아가지 않았다. 영월 관아에서 한참 떨어진 변두리에 허름한 집의 방을 하나 얻어 기거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관내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폈다. 그러기를 사흘째 되던 날이 영월 장날이었다. 점심때가 되어 장터 한쪽에 있는 국밥집에 들었다. 국밥집 발을 헤치고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얼굴들을 만났다. 바로 마구령에서 만났던 언양 무사들이었다. 언양 무사들도 바로 임영복을 알아보았다. “어서 오시오. 노형. 언
윤미를 데리고 한양으로 올라간 임영복은 한 대감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이 사냥에서 성공하고 돌아온 사냥개 같았다. 한 대감은 눈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있는 임영복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라면 순흥 부사 이보흠과 함께 오라를 지어 올라왔어야 하는 임영복이었다. 이보흠과는 다르게 자신이 살길을 용케 알아채고 살아 온 것이었다. "그래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이 처자는 누군고?" 한 대감은 윤미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밉지 않은 얼굴이었다. "예. 이 처자가 금성대군의 시녀였는데 격문을 빼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0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지역 각 투표소를 찾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민생, 미래, 복지를 위해 대화하는 제22대 국회가 되길 소망했다. 울산시민들의 한 표 행사 열기가 사전 투표율이 역대 총선 최고치 기록에 이어 본 투표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되는 투표 현장들을 소개한다. 5살 아들과 투표소 발걸음북구 화봉동에 거주하는 박철민(41)·김효진(37)부부는 5살이 된 아들과 함께 송정동 투표소를 찾았다. 아들 민찬 군은 투표행렬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손가락을 가리키
울산에서 4·10 총선 개표는 울산혁신도시 복합혁신센터, 문수체육관, 전하체육센터, 오토밸리복지센터, 온산문화체육센터 등 5곳에서 진행됐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된 오후 6시 30분 전후 개함이 시작됐다. 각 개표소 현장에서는 작은 소동을 제외하면 큰 마찰없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 개표가 진행됐다. 4·10 총선 개표 과정에서 벌어진 이모저모를 모았다. 30년만에 부활한 수개표…개표 정확성 높아져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에서는 투표지 분류기와 투표지 심사계수기 사이에 수검표 절차가 추가되면서 '심사·집계부'
정상에서 윤미가 소피를 보러 잠시 숲속으로 들어간 사이에 두 사람은 사이좋게 황천길로 떠나가고 말았다. 임영복이 주먹으로 뒤통수를 슬쩍 치니 그대로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렸다. 시체는 경사가 심한 비탈길에 그대로 굴려버리고 말았다, 윤미가 숲속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와 보니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언니는 어디를 갔습니까?" "으응. 풍기에 잊어버리고 온 물건이 있어 가져오라고 보냈다. 우리는 먼저 가자꾸나." "저 보따리는 놓아두고 가셨네요?" "그래? 그 보따리를 풀어 보아라." 윤미가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어보니 수태에
지난 5일과 6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의 울산지역 최종 투표율이 30.13%로 집계됐다. 이는 21대 총선 최종 사전투표율 25.97%보다 4.16%p 높은 수치로, 투표마감시간 전까지도 울산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울산에서는 전체 유권자 93만4,661명 중 27만1,659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구·군별로는 동구가 31.53%로 가장 높았다. 울주군 31.45%, 중구 29.96%, 북구 29.32%, 남구 29.18%로 뒤를 이었다. 사전투표 모습을 화보를 통해 확인해본다.
경군은 하루 동안 순흥에 머물면서 온갖 분탕질을 했다. 그런 다음 곧장 구구들로 가서 이수형의 집을 둘러싸고 철통같이 지켰다. 경군 대장도 왜 이수형을 지키는 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단지 명령만 따를 뿐이었다. 이수형은 이번 일의 핵심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한명회는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 바로 이수형이었다. 금성대군이 순흥에 내려가면 제일 먼저 만날 사람이 이수형이라는 사실도 꿰뚫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올라 온 사발통문에도 이수형의 이름은 버젓하게 올라 있었다. 나이는 이제 겨우 22살이고 벼
풍기 현감 김효급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순흥부의 관노인 급창이 두 여자를 데리고 가져온 것은 산천을 뒤집어 놓을만한 내용이었다. 격문을 읽는 내내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걸 놓고 어물쩍거리다가는 장차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아랫것들을 시켜 격문을 가져온 세 사람을 대접을 잘하라고 이르고는 손수 말에 올랐다. 죽령을 넘어 한양으로 내달리면서도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잘만 하면 이번 기회에 출세 길에 들어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문을 받아든 한명회는 곧장 대궐로 들어가 수양을 만났다. 수양은 입이
대장이 아궁이 앞에 지긋이 누워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주막집 주모가 머리를 대장의 사타구니에 처박고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일어나 자신의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리고 대장의 양물 위에 살포시 앉았다. 아궁이 안에 불꽃이 일렁이고 있는데 대장의 얼굴도 아궁이 불꽃만큼 벌겋게 익어 있었다. 솥뚜껑이 들썩이며 밥물이 끓어 넘쳤다. "허허. 이런 산골 여편네가 방중술이 보통이 아니구나." "대장님은 정말 힘이 센 장부이십니다. 소인이 만나본 남정네 중에 최고였습니다. 항상 옆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허허. 그게 진심이더냐?" "진
"오늘 나를 살려준 걸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네놈이 자랐다는 각동 돌밭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대문 안에서 갓을 쓰고 살더라도 내가 한 말을 잊지는 말아라." "하하하. 네 놈이 두 발로 일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임영복은 군사들을 시켜 산채에 불을 지른 다음 마구령을 내려갔다. 마구령을 다 내려가 처음 맞닥뜨린 것이 풍기 댁이 운영하는 주막집이었다. 윤미가 떠나간 뒤에는 임장호와 소운 부부가 풍기 댁을 도우며 새살림을 살고 있었다. 풍기 댁은 난데없이 나타난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국제컨벤션센터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3일 동안 '국내외 언론인 초청 4·3 팸투어'를 진행했다. 첫 방문지는 4·3사건의 역사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제주4·3평화공원으로 4·3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위패봉안실과 행방불명인표석을 찾았다. 위패봉안관에서는 지난 12일 제막한 '4·3희생자 무명신위 위패조형물'이 있다. 지금까지 4·3희생자로 결정되지 못한 모든 희생자를 위무하는 공간 마련으로 4·3의 정명과 상생을 위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다랑쉬굴, 곤을동, 주정공장 옛터, 관덕
이백여 명의 군사들에게 둘러싸인 여덟 명은 이게 자신들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양쪽 사이에 흐르고 있는 그때 산채 안에서 임영복이 나타났다. 임영복은 느긋한 걸음으로 마당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잠시 기다리시오." 군사들은 임명복이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다. 이선달의 앞으로 다가온 임영복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이렇게 되게 되어 있었소. 위에서 이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었소. 형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난
망설이는 김장복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군사 한 명이 바가지에 탁주를 가득 담아와 건네주었다. 김장복은 탁주 바가지를 받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 들이켜고 난 다음 꿇어 엎디어 있는 안흥선을 노려보았다. '내 좆을 자른 놈. 내 좆을 자른 놈.' 몇 번이나 입속에서 중얼거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탁주 기운이 올라와 더욱 힘이 났다. "어서 실행하시게." 군사 한 명이 재촉했다. 김장복은 성큼성큼 걸어가 안흥선의 옆에 섰다. 가오리 채찍으로 자신의 등짝을 후려치던 사내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
한명청은 김장복에게 예천 댁의 주리를 틀라고 했다. 그런데 김장복은 차마 예천 댁의 곁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뭐야. 그년이 네 계집이라고 봐주겠다는 거냐? 그럼 네가 대신 형틀에 묶이겠느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뭐라? 그렇게 하겠다고? 이것들이 목숨 소중한 줄을 모르고 나대는구나. 너는 잠시 빠져 있거라." 한명청은 예천 댁에게 받은 모욕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군사를 시켜 예천 댁의 주리를 틀게 했다. “아아악. 내가 죽어서도 네놈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어디 네 명대로 사는지 두고 보아라." 예천 댁은 말을 마
순흥부에는 안흥선의 식솔들이 모두 불려와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이를 안고 있는 안흥선의 처 예천 댁이었다. 예천 댁은 죄를 지은 사람마냥 아이를 품에 안고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었다. 한명청은 안흥선을 향해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네 죄는 네가 알렸다. 일개 처사가 어떻게 관아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는지 낱낱이 고해바치거라." 안흥선은 낯빛이 백랍처럼 하얗게 변해 고개를 떨구었다. 순흥 부사 이보흠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안흥선의 입을 닫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봐라. 당장 형틀을
그 시간에 윤미는 대군이 건네준 두루마리를 품에 안고 열심히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간밤에 순흥 부사가 배소에서 물러간 뒤 대군은 윤미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윤미는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잡은 대군 앞에서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선달이 일러준 대로 이런 식으로 가면 자신이 언젠가 대궐에 들어가 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윤미의 손을 잡은 대군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풍랑 속으로 들어와 있구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단단히 듣거라." 대군은 시렁 위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었
"이런 고약한 일이 있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한명청이 이보흠을 노려보며 물었다. 이보흠도 김장복의 상처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안흥선이 옥에 다녀간 뒤 한때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직접 양물이 잘린 상처를 보기는 싫었다. 안흥선이 왜 김장복의 양물을 잘랐는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는 묻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말을 해보시오. 저게 뭣이오?. 국법에 양물을 자르는 일도 있습니까?" 한명청이 이보흠을 다그치자 김장복이 설움에 복받쳐 엉엉 소리내 울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요.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