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박 사장'은 아들이 제대하고 난 후 스스로 붙여 준 감투 아닌 감투였다. 아들은 자신의 포부를 대신해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닉네임부터 만들어 자신을 채찍질하는 도구인 양 아는 사람들에게 날려댔다. 제대한 아들은 일부러 대학복학 시기에 맞춰 제대 날을 계산해 입대 날짜를 잡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군대서 몹쓸 물이 들어왔다며 타박도 했다. 도대체 군에서 무슨 계획을 세워 저렇게도 돈 타령을 할까 싶어 공연히 아들의 군대 생활에 궁금증과 원망이 일기도 했다. 한집에 살면서도 얼굴 보기 힘들 만큼 아르바이트를 하느
무슨 일을 하든지 자유로울 때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요즘 두 발과 손이 묶인 느낌으로 책을 읽고 있다. 내 안에 도무지 상상이란 게 일어나지 않는다. 독서의 맛은 밋밋하고 감흥이 없다. 마치 마음에 쏙 드는 멋진 이성을 만났지만 감정에 변화가 없는 것과 같다. 불이 붙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나 스스로 이런 상황을 자초했으니 할 말이 없긴 하다.얼마 전에 아들에게 갔을 때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천재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생애와 작품이 실린 『모딜리아니, 열정의 보엠』이었다. 그의 친구 앙드레 살몽이 쓴 책이다.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현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안방으로 끌어당겼다. 어린애마냥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장롱에서 액자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액자 속 사진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영정사진이었다. 조금은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 한참은 젊어 보였다. 깊게 패인 주름은 어디로 갔으며 약간 흐려진 눈빛을 또 어찌 이만큼이나 해맑게 처리하였을까. 아버진 마냥 천진한 아이가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때처럼 자랑을 하였는데, 팔십 년 지나오는 사이사이로 끼어들었을 파란한 궤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꼭 그림
눈물은 슬플 때도,기쁠 때도 흘리지만,응어리진 무엇을 풀어내는데는이만한 치료제가 없다 눈물과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그 중에 특히 좋은 것은 망각이다. 사람에게 망각이 없다면 얼마나 짐스러울까. 기억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갖는 생각이다.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어머니를 볼 때면 기억하고 사는 것보다 잊고 사는 것이 더 많으니 다행이라 여겨질 때도 많다. 물론 잊는다고 잊고 싶은 것이 다 잊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억할 일이라고 해서 다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지나간 것은 조금씩 잊을 수
얼마 전, 목화솜 같은 포근함 시새움 하듯 봄비가 왔다. 아침에는 겨우내 멀리 물러나 옹색하던 앞산이 청신하고 싱그러운 향기 풍기며 이마 닿을 듯 다가앉았다. 얼핏 달력 보니 우수 경칩도 지나 청명 곡우 빤히 보인다. 그야말로 봄이다. 봄은 새봄, 늦봄 없이 다 좋다. 세상 만물이 무채색 정적인 삶에서 생기발랄한 동적 삶으로 변화 재생하기 때문이다.주지하다시피 재생은 반복이 아니라 거듭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방식이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함을 뜻한다. 그래서 새로움 혹은 새로운 시작은 가능성과 희망이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지난겨울에 지인의 집 제라늄 화분 한쪽에 돋아난 작은 싹을 캐서 가져왔다. 에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앉아 있는 예쁜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제라늄은 유럽의 창틀에 흔히 놓여있는, 꽃 색깔도 하양, 분홍, 주황, 빨강 등으로 다채로운 예쁜 꽃이다. 나는 꽃도 꽃이지만 그저 키우기 쉽다는 말에 조심조심 뿌리를 뽑아 들고 왔다. 사실 난 식물을 키우는 데 젬병이다. 많은 식물들이 내 손에서 시들거나 뿌리가 썩어서 죽어갔다. 안스리움, 고무나무, 크로톤은 물론
지난해 겨울 불교 대학에서 수계식이 있었다. 이왕 불자가 되기로 한 이상 하루빨리 수계를 받을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감정의 기복이 생겼다. 수계의 의미를 알고 나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졌다.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믿고 싶은 마음 사이에 흔들리다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라 여겨져 예정대로 받기로 했다. 말씀에 따르면, "무릇, 계라고 하는 것은 악을 없애고 선을 드러내는 기본이 되며 범부를 벗어나 성인이 되는 씨앗이다"라고 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몇 해 전, 이슬같이 살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나라의 주인이라도 잃은 양 슬퍼했다. 죽음의 앞두고 자신의 어떤 것도 남기지 마라며 작은 비석 하나도 사양한다던 분이었다. 나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그분이 쓴 책 한 권을 접하고 그의 행적을 쫓고 기거하는 산사가 어딘지 궁금해하며 청춘을 보냈다. 어른이 돼서도 언행이 일치되는 삶을 사는 산부처를 알고 있는 양 든든해 하며 그분이 쓴 책을 모으고는 했다. 임종을 앞둔 그분께서 마지막까지 무소유를 당부했다는 말을 듣고 세인들은 그분의 뜻에 따라 온전
정월의 날씨지만 푸근하다. 마침 쉬는 날인데다 동곡 오일장이라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아홉 시 좀 지나 청도 계곡을 따라 운문면을 지나 금천면 동곡 오일장에 갔다. 이런 일정이 잡히는 날은 설레고 행복하다. 비어있는 겨울의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주변 풍경은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의 화려했던 전설을 재해석하고 있다. 계곡의 돌과 곡선의 나목이 주는 얼음장 같은 부드러움의 역설 또한 굳어 있던 내 심미안에 균열을 준다. 아름다움을 뒤집으면 시린 아픔이 보인다는 것을 알겠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고 나면 곧 곤두박질이라도 칠 것 같은 운문
그날따라 오전 강의는 피를 토하듯 했다. 도서관에 지원금이 줄어들어 더 이상 내가 맡은 강좌를 진행시킬 수 없다는 통고를 받고 알퐁스도데의 '마지막 수업'처럼 마음이 탔다. 아직 첫돌도 되지 못한 수강생들에게 강제로 젖을 떼고 떠밀려나야 하는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십리사탕 같은 뭐라도 하나 입에 물려서 보내고 싶은 마음에 열강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치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수강생들에겐 간식거리일지도 모를 이 수업이 나에겐 주식이며 삶이다. 주식이지만 때론 대충 때울 때도 있고 때론 온갖 정성을 들이기도
집안에 책들이 쌓여간다. 특히 지난 한 해의 끝자락과 새해에 들어서면서 책 더미 속에서 지냈다. 가끔은 복 받은 생활이라 여긴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던가? 배가 부르다 못해 차고 넘친다. 세상에 책 선물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책이 내 손에 오는 속도와 읽어내는 속도가 비례하지 못하니 문제다. 그러니 미처 읽지도 못한 책들이 쌓이게 마련이다. 반가운 지인들의 책이 있는가 하면, 이름만 들었던 작가들도 있다. 개중에는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이름들이 보내온 책들도 제법 많다. 너무 많은 책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세모의 아쉬움과 새해맞이로 새콤달콤 부풀던 거품이 빠듯한 일상으로 잦아들고 보니 문득 세이레가 지나 있다. 지인 중 한 분은 새해 벽두엔 으레 신수를 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잘 맞지도 않는데 왜 자꾸 가시냐니까 자신이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들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좋은 것은 그렇게 되도록 좀 더 노력하고, 나쁜 것은 미리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안 되도록 애쓰면 되지 않겠냐고 한다. 매사에 낙관론적 지혜로 사는 태도다. 그래 그런지 그분은 늘 웃는 얼굴이다. 평소 표정이 딱딱하단 말을 자주 듣는 나는 그게 부러워 은근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사전이 한 권 있었다. 앞뒤 표지가 떨어져나갔지만 아무튼 우리말을 모아놓은 국어사전이었다. 아버지는 풍년초란 가루담배를 사전에 말아 피우셨다. 사전 종이는 얇고 질겨서 담배를 마는 데 제격이다. 사전을 알맞게 찢어 담배가루를 올려놓은 다음 꼭꼭 말아 혀끝으로 붙여놓으면 궐련 한 개비가 되었다. 나는 언니, 오빠들 어깨너머로 배우고 아버지도 막내라고 손수 가르쳐주셔서 한글을 좀 일찍 뗀 편이다. 글자는 익혔는데 딱히 읽을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 공짜로 배달되어 오는 서울신문과 농민신문, 그리고 예의 그 사전
정초 기도가 끝나고 회향하는 날이었다. 법회를 마친 스님이 깜짝 선물을 내어놓았다. 자녀들이 지니고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면서 벽조목으로 새긴 부적을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 수보다 턱없이 모자라는 부적을 받기 위해 신도들이 올챙이 떼처럼 몰려들었다. 나 또한 뒤질세라 줄을 섰지만, 천손을 연상케 하는 팔들 사이에 밀려 행운의 부적은 그림에 떡으로 남았다. 먼저 선 사람들이 몇 개씩 챙기는 동안, 뒤에 선 사람은 틈을 비집고 다가설 수가 없었다. 본래 계획에 없던 깜짝 선물 앞에서, 막상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았다
황금돼지 띠 해인 올해, 유난히 막힘없이 걸림 없이 잘 살라고 미리 아픔을 주는 걸까, 내 안에 든 황금돼지는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기가 그다지도 버거웠을까, 지난 연말부터 시작한 병원 출입이 유난히 잦다. 앓다 보니 한 해의 끝맺음도, 시작도 없이 구렁이 담 넘듯 어물쩍하게 황금돼지해인 새해로 넘어와 있다. 지난해, 마지막 달이었다. 긴 몸살 끝에 잠시 편안해지나 싶던 그 날 저녁, 오른쪽 가슴 위가 담 결린 듯 뜨끔거렸다. 반대편인 등 뒤쪽도 결려서 파스를 붙이고 잤다. 밤이 깊어질수록 통증이 심해 응급실로 가야 하나 마나 망설
해가 산 끝에 걸쳐있다. 포근한 햇살 몇 번만 품고 나면 한 해의 무거웠던 시간들도 꽃잎처럼 사라지리라.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것들과 하루하루를 우연인 듯 조우하다 보면 따듯한 사람들과 일들이 편안한 옷처럼 다가올 것이라 여긴다.지인들과의 약속 시간을 길게 남겨 두고 집을 나섰다. 초행길은 아니지만 오래전의 토막난 짧은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어느 한 모퉁이에서 거짓말 같이 생각의 길이 툭 끊기고 만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번잡한 삶의 후유증이라고 위로하면 좀 나은 듯하다. 서툴고 모르는 먼 길은 발품을 좀 더 팔면 된다. 평소
라틴 아메리카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100년 동안의 고독』을 관통하는 고갱이는 인간존재는 고독이 본질이란 것이다. 소설을 일별하면, 마콘도―4년 동안이나 줄곧 비가 내리고, 노동자 수만 명이 학살돼 나가기도 하는 가상 도시로 중남미 현대사를 상징하는 공간―을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 부부로부터 시작하여 6대에 걸쳐 세대를 거듭하며 마콘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시·공을 넘나들며 환상적 사실주의로 서술한다. 그런 속에 서서히 드러나는 윤곽은 인간 존재는 모두 본질적으로 고독하다는 것이다.
눈이 자주 내리지 않는 곳에 살다보니 눈 소식을 들을 때마다 눈이 그리워진다. 오늘도 추적추적 겨울비가 오는데, 안동 사는 지인이 거기엔 눈이 온다며 붉은 남천 잎 위에 내린 눈 사진을 보내왔다. 눈 내린 들판처럼 삽시간에 눈에 관한 생각이 가득 찬다. 지금 눈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눈의 나라에 있다면. 예컨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처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면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 눈의 나라에는 고등학교 때 읽은 박용래 시인의 '저녁 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니 하나를 품고 있다. 발바닥에 티눈 하나 빼듯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을 쉬 외면하지 못한다. 열여덟 꽃띠에 만나 여태껏 친구처럼 지내 왔으니 미운 정도 적지 않나보다. 사랑니가 날 무렵, 놀기를 좋아해서인지 친구들이 많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꿈 많았던 시절이 아닌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 문학에 빠진 친구, 그림을 그리는 친구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무리 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나의 잠재된 끼나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는 친구들과 열을
홍고추가 필요한데 한 바구니는 너무 많다. 담아 둔 소쿠리의 반 만 달라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할머니는 귀만 열어 둔 채 쳐다보지도 않고 마수란다. 나는 얼른 옆에 있던 쪽파 한 단을 더 사기로 한다. 할머니의 마수걸이에 훼방꾼 됨을 피하는 방법이다.학창시절, 등교하는 길에 어머니의 장 보따리를 들어 드리거나 머리에 인 짐을 내려드리느라 장터까지 따라 들어가곤 했다. 장터에 도착한 어머니가 적당한 자리를 골라 짐을 내려놓으려 할 때였다. 해운대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올라온 장꾼들이 어머니의 함지박을 뺏다시피 내렸다. 어머니가 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