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하고 웅자하다. 땅에서 밀어올린 몸통은 짧지만 굵다. 소나무는 곡선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곰솔은 직선적 성격이라 했던가. 하지만 이 곰솔은 제 기질 대로 뻗대지 않고 슬기롭게 공간을 장악했다. 튼실하게 뻗어낸 가지들을 멋들어지게 휘어서 하늘로 올리고 굽은 듯 나아가게 했다. 여한 없이 뽑아 올린 가지를 허공에 내놓으며 생각하고 사유한 흔적 역력하다. 그리
이모를 만나러 이종 동생네에 갔다. 고령에 몸이 불편한 이모는 몇 년 전부터 막내 딸 집에 머물고 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일에 쫓겨 허둥대다 보니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변명이 빈약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현관에서부터 장아찌 냄새가 진동한다. 이미 집 곳곳에 배여 있다. 고만고만한 장아찌 통이 대리석 식탁 위에 몇 개 놓여 있다. 웬
삼복더위에 허덕일 때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 납량특집이 있다. 공포에 몸이 오싹해지고 소름 돋는 동안 체감 온도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니 더위를 잠시 잊으라는 배려의 프로그램이라 믿고 싶다. 울산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태화강 대숲 납량축제가 곧 열릴 것이란다. 우리는 왜 공포물에 깊이 매료되는 것일까? 무서움에 눈을 반쯤 가리고도 보고 싶어 하는 심리
김영남 시인의 '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글게 잠재운다' 는 시를 읽었다. "깎아주고 덤이 있는 골목 / 그 골목은 좌판 사과가 둥글고, / 리어카의 손잡이가 둥글고, / 그리고 그 흥정이 둥그네 / 거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 순이, 철이, 용호네 아줌마들이 / 골목에서 둥글게 모여드네 / 구불구불 세상을 돌아서 골목이 / 하늘로 올라가고, 밤
간밤의 이슬비가 온 산과 들을 분단장을 시켰다. 차창 밖의 산야가 곱디고운 새색시의 자태와 흡사하다. 실바람이 봄을 한껏 몰고 와 그 향기에 진취해질 때 동해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산봉우리는 하늘을 따라잡을 듯 구름 위에 솟아있다. 크나큰 바위는 어느 큰 회사에 파업할 때 쭉 늘어선 노조원들의 모습같이 일렬로 빙 둘러섰다. 녹음방초는 기지개를 켜면서 저마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았다. 홀연히 우편배달 되어 온 화사한 여성잡지다. 이 가뭄의 무더위를 뚫고 달려온 빗줄기 같이 싱그럽다. 남편의 직장동료였던 K씨가 보낸 것이다. 삼십 몇 년 전의 푸르렀던 우리의 세월도 청아한 샘물처럼 담겨와 찰랑인다. 결혼 2년 만에 내 집 마련을 한 연립주택 단지에서 만난 K씨 부부다. 4년쯤 이웃으로 살며 두 가족이 곧잘 모여
밭으로 가는 입구에는 오래된 자귀나무가 있다. 아름다운 분홍빛이 전야제의 불꽃놀이처럼 높은 언덕배기에 하늘을 떠받들고 뭉글뭉글 펼쳐져 있다. 구불거리는 오솔길을 오르면 밭 가까이 고샅 같은 굽은 등을 가진 소나무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그동안 애를 태우다 만난 곳이다. 이처럼 끼워 맞춰진 아름다운 자연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번 흡족하다. 가끔은 이 텃
하지를 지나고 며칠 상간에 윤오월로 들어섰다. 귀하게 찾아온 윤오월 덕분에 올 여름 더위는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 무덥고 긴 여름을 견뎌낼 여러 가지 궁리 중 가장 우선은 음식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준비 시간이 짧은 국수가 으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국수류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 국수는 다른 음식에 비해 밀려나 있다. 가끔
홍제동에서 자취를 할 때니 스물 대여섯 살 무렵의 일이다. 나는 일반 주택의 방 한 칸에 세를 들었는데, 어느 날 퇴근을 하고서 방문을 열었다가 거의 기절할 상황에 내몰렸다. 웬 물방개가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거짓말 안보태고 엄지손가락 마디만 한 시커먼 갑충이 요란하게 내 얼굴을 스치고 날다가 창문에 붙었다 다시 날아다니곤 했다. 비명을 지르며
부산 벡스코에서 2017 부산 아트페어가 있었다. 모처럼 많은 예술인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넘실거리는 공간을 기웃거리는 즐거움이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부스마다 생경한 미술작품들이 저마다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무엇보다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작품의 완성을 독자에게 맡기는 사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느 부스에는
외고산 옹기 마을의 옹기 박물관에 들렀다. 일상생활 속에 살림살이로 끼어 있던 옹기들이 그 시대를 떠올리는 예술작품으로 빛나고 있다. 물독, 콩나물시루, 물동이, 초병, 소줏고리 등 옹기로 만든 갖가지 부엌용품과 생활도구였던 제 역량을 한껏 나타낸다. 공모수상작 '옹기 달항아리'는 손잡이까지 달린 뚜껑을 얹고 자리해 있다. 허리통이 풍요롭게 풍만한 항아
창으로 투과된 볕살에 눈이 부신다. 잠깐씩 베고 누운 낮잠 속에 고향집 실개천이 흐르고, 텃밭에서 뜯어온 푸성귀를 집 옆 도랑물로 씻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물 묻은 손등에 물비늘이 돋아나고 아지랑이도 실개천을 따라 흘러가곤 했다. 도시의 외곽에 있는 작은 병원에 나는 한 달째 누워 있다. 이 한 달은 바쁘게만 스쳐온 지나간 긴 시간보다 내게 오히려 더
오랜만에 찾은 방어진 대왕암 공원은 입구부터 낯설었다. 훤히 뚫린 길. 자연과 인공 사이에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소나무들 사이 바다가 보이고 보랏빛 무꽃이 언뜻언뜻 숲과 바다를 밝히기 시작했다. 오월 숲이 더욱 투명해지고 새잎들이 반짝거리며 팔랑거렸다. 군데군데 찔레꽃과 산딸기 꽃이 피어있는 소로가 오롯이 드러났다. 조금 내려가자
울타리와 담벼락마다 덩굴장미가 한창이다. 붉은 꽃은 보색인 초록 잎과 대비되어 더욱 순수하게 붉다. 맑고 깨끗한 얼굴. 오월이다. 피천득 시인은 '오월'이란 수필에서 오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라고 표현하였다. 하고 많은 나이 중 왜 하필 스물한 살일까. 이른 봄의 꽃샘추위와
푸른 보리밭이 보인다. 길게 펼쳐지는 보리밭 위로 내 유년의 생활이 스케치 된다. 보리는 아직 덜 익었는데, 쌀은 바닥이 나고 먹을 것이 없어 살아가기가 가장 어려웠던 때가 이맘때였다. 그때는 한국전쟁을 겪은 뒤라 식량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 즘에 우리 집 부뚜막 맨 구석진 자리에는 까만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아침저녁
막걸리 다섯 잔이 빙 둘러 놓여졌다. 가운데는 안주로 두부김치와 과자봉지가 펼쳐져 있다. 이제 곧 여든 고개를 넘을 갈색 모자를 쓴 분과 여든 초반의 푸른색 트레이닝복 입은 분, 빨강 셔츠 입은 분과 슈퍼의 주인 할매와 둘러앉았다. 미소가 번진 표정들이 흐뭇해 보인다. 울산 외곽의 산 중턱쯤에 전원주택을 마련한 친구의 초대를 받고 차를 몰고 올라가다 시멘트
그날 햇살은 참 맑고 눈부시었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그치질 않더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는 그치고 일시에 무르녹는 봄 날씨로 변하였다. 시계는 투명하고 한강변 수양버들은 연두주렴을 내려놓은 듯 하늘거렸다. 나무들은 더욱 선명해지고 개나리 진달래꽃은 빗방울을 매달고 반짝거렸다. 선계가 따로 있을까 싶었다. 조금 일찍 나서 마음에 두었던 전시회에 들렀다 가
엉개나무(엄나무) 잎이 알맞게 피었으니 와서 따가라는 형님의 전화를 받고 지난 일요일엔 시댁엘 다녀왔다. 설에 다녀왔으니 삼 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인데, 시댁 마을은 그새 또 변해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도로를 경계로 앞쪽이 모두 파헤쳐져 공장부지 조성이 거의 끝나고, 건물도 여러 채 들어섰다. 머지않아, 벌겋게 드러난 땅 위로 공장들이 빽빽하게 세워지
졸지에 조카를 떠나보내고 처음 나선 아침 산책길에 딱새를 만났다. 참 말이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참았던 수다쟁이처럼 지저귀는 소리가 소란스럽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평소와 다른 친밀감이 들어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되도록 짧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침밥 먹었니? 왜 혼자야?" 마치 딱새의 말을 이해
쇼핑몰에서 젊은 부부가 앞서 가고 있다. 청춘의 아이 아빠는 두 살배기 아기를 어깨 위로 쑥 올려 안은 채 아내와 얘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앙증맞은 모자를 쓰고 따뜻하게 옷을 입은 아기는 아빠의 어깨에 가슴을 대고 뒤에 따라오는 풍경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구경하고 있다. 아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웃으니 아기도 방긋방긋 답을 해준다. 지금 아기에겐 아빠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