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십일월이다. 좋아하는 달이 몇 월이냐고 잠자고 있는 나한테 물으면 눈도 안 뜨고 대답할 십일월! 나무도 강물도 솔직히 야위어지는 때, 나도 덩달아 정직해져서 좋다.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즐겁고 슬픈 일들이 보낸 이별편지가 낙엽으로 쌓여, 내 안에 있는 쓸쓸함을 동무하자고 불러내는 십일월. 낙엽으로 얼굴을 덮고 다니는 것 같은 여자가 있었다.
입동이 지나고 아침 동천에 나가면 억새를 비집고 흐르는 강물에서 모락모락 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이 참 좋다. 저만치 떠나는 가을이 겨울을 손짓하고 있다. 괜스레 마음이 허해지는 날이다. 다방커피가 생각난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떠올리는 과거 다방 풍경은 엊그제 그린 수채화 같다. 아쉽지만 커피향이 물안개로 피어나던 과거 다방은 추억일 뿐이다. 다방 간판이
마트 앞 진열대가 유난히 환하여 가보니 감이다. 그 옆에는 배, 무화과, 귤, 사과…. 과일이 넘쳐나는 가을. 보기에 참 좋다. 비싸든 싸든 내가 가꾸지 않은 이것들이 무슨 수로 내 손에까지 왔나 한참을 들여다본다. 마치 임금님 수랏상을 받은 농부처럼 감개무량하다. 어렸을 적에는 과일이라 해봤자 감과 대추가 고작이었다. 감나무는 집을 빙 둘러
대청소를 하고 싶은데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럴 땐 손님을 초대한다. 집에 손님이 오니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바닥을 쓸고 먼지를 털게 된다. 내 생각이 아니다. 20여 년 전인가, '리더스 다이제스트'란 잡지에서 읽은 내용이다. 그 글의 제목이 '울타리 너머로 모자를 던져라' 였던 걸로 기억된다. 울타리 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에 열중해 있을 때 저쪽에서 왁자하니 웃음소리가 터졌다. 호기심이 발동해 동작을 멈추고 고개 드니 몇 분의 선생님과 학생 한 명이 이야기에 빠져 있다. 얼핏 알아들을 수 없는 '카톡친추' 란 말이 다시 날아온다. 카톡친추? 묻는 내게 '카카오 스토리 친구 추가'라는 말이란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줄임말을 의아해하다 설명을 듣고서
그대에게 수수께끼 하나 낼까요? 애들도 아니고 갑자기 웬 수수께끼냐고요? 그러게요. 옥상에 이불 빨래 널고 내려오는데 불쑥 수수께끼 하나가 만들어졌어요. '내가 울고 싶을 때 맘 놓고 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발로 꾹꾹 밟아 짜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이불 같은 울음을 펼쳐놓을 그런 장소 말예요. 진지하게 울음 장소를 찾아본 그대는 연암 박지원의
아버지 제사 때 다섯 자매가 다 모였다. 고향에서 우리 다섯 자매는 유쾌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제사 음식을 만들면서 우리는 그 동안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수다 주머니부터 풀었다. 그런데 부추전을 부치던 넷째 언니가 뜬금없이 어릴 적에 자기가 다섯 자매 중에 일을 제일 많이 했다며 뒤집개를 탁 놓는 것이었다. 더 웃기는 건, 나머지 세 언니들도 질세라 내가
나이가 들수록 문득 과거의 기억들로 유쾌해 질 때가 있다. 점잖게 초대받은 자리에서도 그런 기억들로 히죽히죽 웃어서 주변사람들을 난감하게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과거의 기억들은 하나같이 즐겁다. 나는 오래전부터 해가 떨어질 때쯤 산행을 한다. 이름 하여 야간 산행이다. 오늘도 일찌감치 무룡산 야간산행에 나섰다. 모처럼 따라나선 아내가 지난 주 토요일에 무
신문에서 반가운 기사를 봤다. 전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교수께서 향년 96세로, 아직도 건강하게 집필 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소식이다. 김형석 교수는 김태길, 안병욱 교수와 함께 1세대 철학자 3인방이라 불리던 분이시다. 세 분은 수필로도 유명한데, 지금의 5, 60대는 젊은 시절, 이분들의 수필을 읽으며 삶에 대해 고민하고 숙고하곤 했던 것이다. 김태길 교
올해 초인가 텔레비전을 보던 중 내 귀를 번쩍 치며 들어앉은 말이 하나 있다. '꼬집'이란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음식을 하면서 가장 막연했던 '적당'이란 값을 이렇게 절묘하게 조어했구나 싶어서였다. 맛내기에서 양념의 최소 단위가 '적당'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몇 십 년은 흘러왔을 것인데, 이렇게 반짝 하고
무화과를 먹는다. 식구들이 있지만 먹어보란 말도 없이 혼자서 다 먹는다. 이렇게 한 소쿠리를 줘도 나눠먹을 마음이 없을 정도로 나는 무화과를 좋아한다. 폭식하게 하는 이 무화과 사랑은 엉뚱한데서 시작되었다. 90년 초반에 김지애의 '몰래한 사랑'이 인기가 많았는데, 가사가 이러하다. '그대여, 이렇게 바람이 서글피 부는 날에는/ 그대여, 이렇게 무화과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새벽부터 기분이 살짝 들떴다. 새벽 5시를 알리는 알람시계의 죽는 듯 내지르는 비명에 비몽사몽 부스스 눈을 뜨자마자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희끄무레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아스팔트는 젖지 않았다. "아휴, 천만다행이다" 안심하고 커피를 내렸다. 악마의 눈물 같은
나는 사춘기 절정에 있는 중3 쌍둥이 엄마다. 할 짓 안 할 짓 다 하고, 속 썩일 짓 다 하고, 툭툭 욕 몇마디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요즘 눈에 띄게 변한 것이 제 방문 닫기이다. 봄부터 딸깍딸깍 문 닫는 소리를 내더니, 올 여름 혹서 속에서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수가 틀린 날에는 아예 안에서 잠긴다. 내가 터득한 사춘기 대처법은 모른 척하기이다
도시가 녹아내릴 것 같은 삼복염천에 하루 종일 시달리며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가 빠지고 날카로워진다. 해마다 여름나기가 더 힘겹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이 솟는 머리를 식히려고 건물 밖으로 나가본다. 용광로가 따로 없다. 가림막도 시원찮은 노점에서 오후 두 시의 잔인한 자외선에 맞서는 노점상들을 본다. 가끔 경험하는 일이지만 내가 가장 버겁다고 여기는 일이 나
어머니는 오랫동안 요양병원에 계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잠이 길어져서, 돌아가실 무렵에는 거의 종일 주무시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는 몸을 웅크리고 주무셨는데, 그게 꼭 뱃속의 태아나 갓난아기의 모습이다. 웅크린 자세로 보건데 삶의 시작과 끝은 같다. 자세 뿐 아니라 행동이나 사용하게 되는 물건도 비슷하다. 요양병원의 노인들은 턱받이를 하고 간병인이 떠먹여주
자동차를 운전한지 어언 8년. 당시 새 차를 샀지만 한 달을 주차장에 잠재우고 있었을 만큼 겁 났던 나는 굳게 결심했다. '나는 전사다! 이제부터 나는 전사 모드로 돌입한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몸도 마음도 굳혔다. 그러자 거울을 통해 본 내 두 눈은 형형하게 빛이 났고, 앙다문 입은 믿음직스러웠다. 자신 있었다. 자기 주문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
아동문학가 25년을 살았던 집인데도 친정에 가서 자고 오는 일이 잘 없다. 아파트 생활이 편한 데다, 오래된 시골집이 지저분하고 불편하다. 우리 집에서 안 자는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딸네집에 걸음해도 주무시고 가는 법이 없다. 갑갑한 아파트에서는 천금을 줘도 단 하룻밤을 못 주무시겠단다. 엄마와 딸. 세상에 이보다 더 말랑말랑한 관계가 어디 있겠
산딸기를 올해처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없다. 산딸기가 제철인 오월 초순부터 유월 중순 끝물 때까지 매장 치듯 새벽시장과 대형할인점을 찾아다니며 산딸기 바구니를 사다놓고 보약 먹듯 즐겼다. 때로는 산딸기를 바구니 채 들고 운동장을 걸으며 먹어대면 사람들은 곁눈질로 힐끗힐끗하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그러던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올 여름은 산딸기와의 밀담으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청바지는 질기고 튼튼할 뿐 아니라, 티셔츠나 자켓, 남방 등 어느 옷에나 잘 어울린다. 구김이 잘 가지 않아 세탁기에 돌린 다음 툭툭 털어 말리면, 굳이 다림질을 하지 않더라도 역시 툭툭 털어 입을 수 있다. 강변이나 숲길을 산책하다 쉬고 싶으면 근처의 어느 돌, 어느 나무 밑, 어느 풀밭에라도 특별히 깔개 없이도 앉아서 쉴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