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멋지다는 생각을 가끔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자존감 지수가 사정없이 올라가는 날이다. 그런 날은 나무와 꽃 색이 다르게 보인다. 일상이 투명하고 경쾌하게 다가와 그냥 신이 난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근사한 소우주로 보여 경배하고 싶다. 며칠 전 오랜만에 단골손님이 가게에 들렀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 워킹맘이라 늘 바쁜 사람이라는 게 말하지 않아도 훤히 보여 그녀가 오면 내가 먼저 서두르게 된다. 올해 막내까지 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더니 모처럼 여유가 있는지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청바지와 티셔츠에
살다 보면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식물에 거름을 많이 주어 말라 버린 때도 있고, 끼워 파는 상품을 잘못 골라 낭패를 보기도 하고, 쓸데없는 대용량을 사서 다 쓰지 못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일을 경험하면서 적정 수준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업료를 과하게 치르는 상황을 맞으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계륵鷄肋이 되어버린 서산 간척지 땅이 내게는 바로 그런 경우다. 서산 간척지 개발 이야기가 한동안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물의 빠른 유속과 심한 조수간만의 차로 물막이 공사가 난관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한 잔을 마셨다가 이틀은 족히 고통을 받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나에게는 소주 두 병과 커피 한 잔 중에 택일을 하라면 나는 기꺼이 소주 두 병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만남에는 으레 커피 한잔합시다. 차라도 한 잔이란 말을 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커피를 두고 하는 말이고, 만남의 장소로 커피숍만큼 좋은 데도 별로 없다. 지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묻지도 않고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런 경우 미리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정
나비 한 마리 벽에 붙어있다. 바람 따라 팔랑팔랑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한다. 하얀 소매 펄럭이며 승무를 추는 것도 같고 합죽선摺扇을 접었다 펼치는 것 같기도 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비가 아니라 '주말농장 임대'라 적힌 종이쪽이었다. 일요일 아침, 산을 오르는 초입에서였다. 제각기 개성을 뽐내며 놓인 몇 개의 농막 중에서 그나마 반듯한 벽에서 발견하였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기록된 정보라고는 휴대폰 번호뿐이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정보를 읽으려 애쓰는 사이 붙임성 좋
태화강 십리대숲 산책길이다.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강에 시선을 준 채 웅숭그리고 서 있다. 무슨 일일까. 뛰어가 보니 꼬물거리는 수만 마리의 숭어 치어들이 강 가장자리를 까맣게 잠식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치어들이 어디서 몰려온 것일까. 짙은 암회색 생물이 스멀거리는 게 자연의 순환으로 보기에는 섬뜩하다. 이건 이변이다. 이렇게 단정 지은 데는 어젯밤 들은 최재천 교수의 강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환경 강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생물의 대멸종에 다다랐는데, 사람들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생태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마침 기차역이 아파트 단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 좋다. 시대와 문명의 속도에 맞춘 ktx가 아니라 도심을 벗어난 외곽 작은 역이다. 군청색 제복을 입은 역무원 두 세 명은 간간이 오고가는 승객들을 관리한다. 각종 일간지와 잡지가 꽂혀 있는 낡은 탁상용 책장과 나무 의자가 놓여 있는 대합실은 추억의 영화에 나오는 장면 그대로다. 모처럼 맞이한 한가로운 주말을 이용해 혼자만의 길을 떠나기로 했다.덕하역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 고향 안동역에 도
요즘 자주 소용돌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어떤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불교에 무상(無常)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항상 하는 것은 없다' 즉 변한다는 뜻이란다. 모든 존재는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주이멸 성주괴공 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노랗게 싹 튼 무를 잘라 접시에 놓고 물을 주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한 나절 지나면서부터 무 싹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수십 개 망울을 맺고 보라색 꽃을 피우고 꽃잎을 떨구고…이 무꽃은 곱고 설레지만, 요즘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작가는 자신의 공간을 만드는 창설자이며, 언어의 땅을 경작하는 옛 농부의 상속인이며, 우물을 파는 사람이며, 집 짓는 목수이다. 이와 반대로 독자는 여행객이다. 남의 땅을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자기가 쓰지 않은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며 밀렵하고, 이집트의 재산을 약탈하여 향유하는 유목민이다." '읽는다는 것의 역사' 머리말에 나오는 이 말은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작가는 재배하고 독자는 맛본다. 작가는 만들고 독자는 누린다. 누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다독, 정독, 계독, 남독 …. 모두 여러 가지
두 해 가까이 고객의 눈치를 살피며 지내고 있다. 눈만 내놓고 사는 세상이 되어 눈썰미가 없는 나에게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어지간히 친밀한 사이가 아니고 가끔 만나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다가올 때는 상대방의 특징을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없어 더욱 곤란을 겪는다.'마스크 여사' 두 분이 왔다. 전에도 우리 가게를 찾은 적이 있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얼굴 가리개에 가려 겨우 드러난 두 눈과 이마만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음성만으로 상대를 알아야 하는 상황
객석에 앉자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건반 위를 거침없이 누비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마치 발레리나의 춤사위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밝고 경쾌하던 곡이 카리스마 넘치는 묵직한 선율로 변하기도 하고, 깊은 시름을 토해내는 탄식이 되기도 했다. 종종걸음으로 숨차게 내달리다가는 어느 순간 느리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슴을 파고들었다. 전율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의 연주를 자세히 듣고 볼 수 있었던 것은 R석에 배정된 좌석 덕분이었다. 자리가 앞에서 네 번째 줄 중앙인데다 연주자와는 대각선 방향이라 섬세한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
영업을 재개하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했다. 코로나19로 휴업할 수밖에 없었고, 휴업을 오래 할 수 없다고 폐업을 시켰다. 만약 재등록할 경우는 간단하게 처리된다고 했다. 재신청서만 제출하고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동안 법이 바뀌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재등록도 새로운 법에 따라야만 한단다.친절한 담당자는 좋은 목적으로 만든 법이니 따라주는 것이 국민의 도리 아니겠냐며 바뀐 법규에 따른 새로운 구비 서류를 알려 줬다. 그 서류의 주요 내용은 칸막이에 사용하는 재료가 불연재이어야 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재료의 시험성적서
"저 할머니야!"남편은 회사 앞 녹색 그물을 뒤적거리는 할머니를 발견하자마자 차에서 내린다. 제대로 주차할 겨를도 없다. 엔진은 공회전하며 웽웽거리고 비상 깜박이는 요란하게 끔벅인다. 자동차 전조등은 이웃집 대문을 향해 두 눈을 치켜뜨고 감춰진 무언가를 찾는다. CCTV 속의 할머니였다. 낮에 찍혔던 자줏빛 경량 패딩이 분명하다. 등에는 세월의 자루 같은 등뼈가 튀어나왔다. 잿빛 털모자와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잔뜩 움츠러든 자세는 CCTV 속 그 한낮의 소요를 설명하기 충분하다.남편 회사는 실내 온도나 습도 따위의 공기 상태
헛간이 기지개를 켠다. 겨울잠에 들었던 땅이 천천히 깨어날 시간이다. 방울새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오고 공기 속에 연둣빛 봄의 알갱이들이 떠다니는 듯하다. 이맘 때면 아버지는 쟁기를 꺼내 지게에 얹고 소와 함께 밭으로 나갔다. 보내미는 예비 밭갈이를 말한다.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기 전, 겨우내 외양간에 웅크리고 있던 소가 건강한지, 작년에 쓰던 쟁기 줄은 삭지 않았는지 밭을 갈며 미리 점검해보는 것이다. 아버지의 보내미는 언제나 지난해의 묵은 흔적을 지우며 시작됐다. 말라버린 콩대와 들깻단을 거두어 밭 가운데 쌓아 올리고 불로 태웠
평소 불교공부를 좀 체계적으로 해 보고 싶어 이태 전 불교대학 기초반에 입문하였다. 이후로 경전대학, 행복학교 등을 거치며 수행과 마음공부를 해 나가는 중에 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주저 없이 신청했다. 소정의 과정을 수료하고 동북아 역사기행에도 참여해 유구한 역사의 현장과 민족의 얼을 새기며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동참하고 싶었다. 처음 통일의병이란 네 글자는 어색하고 생소하게만 다가왔다. 하지만 '새로운 100년을 연다'는 기치 아래 시작된 1강은 '남과 북을 잇다'
지난 9월 도산 안창호함에서 발사에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0월에 발사한 우주발사체 누리호 등 일련의 국가적 성과를 목격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먼저 스친 생각은 미·러와 같은 군사 강대국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리나라도 드디어 개발의 발판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제 북한의 핵실험과 같은 끊임없는 도발로 속수무책 떠안게 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해결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말로만 늘 듣던 자주국방의 실체가 비로소 피
도보여행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다. 이 한파에 높고 험한 산에 들자고 했다면 어찌했을까. 거절하기도 그렇고 떠나자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이제는 버겁게 오르는 산행보다는 체력에 맞게 천천히 자연을 즐기며 걷는 게 몸에 맞는 옷처럼 편하다.청년 시절, 짬만 나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고는 했다. 매일 직장 일에 시달리면서도 쉬는 날이면 산을 찾았고, 산에서 쉼을 누렸다. 교통수단이 원활하지 못했던 때라 다른 지역의 산을 오르려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산행을 하는 게 버겁다거나 피곤하다
겨울치고도 유난히 추운 날인데, 왜 복숭아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마 냉장고 과일 칸을 열다 몇 개 남지 않은 단감을 보고 단감 철도 다 지났군, 하며 아쉬워하다가 갑자기 올해는 복숭아 철에 복숭아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 같다. 며칠 전엔 집 근처 산기슭에 철모르고 핀 진달래 한 송이를 봤는데, 이상 기온으로 제철이 아닌데 꽃이 피는 거야 이젠 예삿일이 돼버려서 심상하게 지나치다 뜬금없이 복숭아 생각이 나기도 했다. 진달래꽃 빛이 복숭아꽃 색깔을 좀 닮았나, 아무튼 겨울 초입에 여름 과일인 복숭아가 떠오르니 철
나는 집을 세 채 가지고 있다. 집을 관리하는 일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산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 입을 댄다. 참 욕심이 많다느니, 고생을 사서 한다느니. 하나 정도는 처분하고 홀가분하게 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모르는 말씀.나의 집들은 모두 맞물려 있어 한 채를 포기하면 나머지도 힘없이 무너지게 된다. 그러니 하나도 포기할 수 없고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긴밀할 때 삶이 탄탄해지듯 나의 집들이 그렇다. 첫 번째 집은 지금 사는 아파트다. 이 아파트를 살 때 식구들은 걱정이 많았다. 응당 기뻐할
잠자리에 누운 늦은 시각이다. 아파트 어느 집에선가 무채 써는 도마질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다. 도마질 소리는 무심히 들으면 단순 소음이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그 속에 자잘한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 있다. 도마질하는 이의 연배라든가 기분이라든가 도마질 재료 같은 것들이다. 섬세하고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오는 소리는 칼끝에 흥이 실려 있고, 무 도막 자르듯 중간 중간 끊어지는 소리엔 무디고 서툰 솜씨가 보인다. 하지만 손에 익은 고수의 도마질 소리는 워낙 고와서 듣고 있으면 무르익은 장단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 장단
낮의 길이가 훌쩍 줄었다. 어둠은 점점 빨리 다가오고 달력은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의 계획과 다짐을 적었던 새해 첫날의 결의가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더 부지런해지고 더 상냥해지리라. 매번 반복되는 다짐 앞에 올해도 어김없이 고개 숙이며 초라하게 선다. 카푸아는 나폴리에서 북쪽으로 26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다. 이곳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군의 겨울 숙영지였다. 그들은 풍족한 이 땅에 머무르며 육체와 정신이 유약해져 결국 적에게 대패하고 만다. '카푸아적인 것'은 톨스토이가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