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없던 버릇이 생겼다. 폐품 수거장에 가면 쓸모없어 버리는 물건들을 눈으로 스캔하는 일이다. 윗집이 이사하면서 버린, 바퀴 달린 화분 받침 셋을 주워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베란다 화초들이 바퀴 달린 받침을 사용하고부터 물 빠짐이 좋아 잎에서 윤이 나고 개화기의 수명도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에 건져 올린 가재도구가 늘어났다. 안방 경대 옆에 얌전히 서 있는 베이지 톤의 미니 책장과 소량의 김치를 버무릴 때 쓰고 있는 큼지막한 스틸 대야도 들고 온 것이다. 생각잖게 건져 올린 습득물을 요긴하게 쓰고 있으니 '보물
세상의 빛이 돼 희망을 꿈꾸는 특별한 학교가 있다. 북구 양정동에 자리한 동광학교는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야학(野學)으로 배우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누구나 와서 공부할 수 있는, 시민들이 세우고 운영하는 열린 공간의 학습장이다. 내가 동광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수필문학회 동료인 육종숙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둘은 10여 년을 함께 하면서 지금까지 각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선생님이 동광학교에서 자원봉사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얘기를 듣고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다.작년 늦가을로 기억되는데 우리 문학회 소통
반세기 전 까까머리 중학 시절 국어를 가르치시던 스승께서 어느 날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무엇인줄 아느냐?" 물으셨다. 까까머리들은 "귀신, 아버지, 공동묘지" 등 저마다 떠오르는 대로 나열하자 가만 귀 기울이고 계시던 국어 선생님은 '공짜'라는 말이라고 하셨다. 바쁘고 정신없는 성장기엔 진학과 취업 등으로 선생님의 그 말씀을 잊고 살다가, 생의 여러 아리랑 굽이 때마다 '공짜'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함을 체득하고 스승의 저 말씀을 실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둘
졸업을 어떤 상황의 종료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거쳐 가는 또 하나의 관문 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졸업이라는 말은 등록한 학교나 학원의 과정을 마칠 때 쓰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현재를 매듭지을 때 쓰이기도 한다. 어린 시절, 기대와 설렘보다 허전함과 아쉬움으로 나를 풀 죽게 했던 졸업이 있었다. 외딴집에 살았던 나는 등하굣길을 항상 언니와 함께했다. 늘 붙어 다니던 언니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졸업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가난으로 중학교 입학도 하지 못한 채 맞았던 내 초등학
초가을 밤에 재킷 한 장 걸치고 마을 길을 나선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빛이 어둠을 더욱 강조한다. 벌레들의 사랑가에서 배어나는 간절함의 농도가 걸쭉하다. 하룻밤의 인연을 찾으려는 노래가 풀숲이나 계곡, 습지와 돌 밑에서 뭉글뭉글 밀려 나오고 있다. 마을 끝자락에 이르자 올봄 홀아비가 된 남자의 집에는 거실에 불을 켜둔 채 자동차만이 밖에 덩그러니 있다. 나는 가던 길을 더 가지 못하고 돌아서 걷는다. 홀로된 남자의 외로움이 전염될까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생명체가 겪는 혼자만의 길을 그 남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걷고 있다
중고마켓에 화초장 매물이 올라왔다. 40여 년 전에 재벌가에서나 살 수 있던 고급 가구였다고 소개된 화초장은 문갑까지 곁들여 그때보다 4배 가까운 금액으로 값이 매겨졌다. 물가상승을 감안했겠지만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유지되거나 더 올라간다. 색색의 옥돌을 정교하게 깎아 화조나 과일 문양을 만들어 붙인 화초장은 40년 세월이 무색하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한테서 괜히 화초장을 탐낸 것이 아니었다."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아이고 아니로구나. 초장화, 초장화, 초장화, 장화초, 장화초 아이고, 이것
어느 중학교에 수업을 갔다가 쉬는 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마스크를 살짝 걷어내었다. 나는 순간 신이 막 빚어서 내놓은 태초의 사람을 보는 듯했다. 과연 사람의 얼굴이구나 싶었다. 콧등은 산등성처럼 뻗어 내리고 어둡고 작은 동굴 두 개가 들숨날숨을 찾아 벌름거렸다. 불그스름하고 보드랍고 도톰한 살로 마주한 입술. 그 입술 속에는 상상 속으로 들어가 버린 하얀 이들이 가지런할 것이었다. 약간 각이 진 턱선을 중심으로 해서 위로는 작은 볼이 대칭을 이루고 있는 얼굴. 과연 사람이었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 제각각 다
살다보면 무릎 칠 정도의 감탄하는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선조들이 남긴 속담이나 동서양의 금언 격언 같은 것에 맞춤처럼 들어맞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그런 속담 하나가 기막히게 들어맞는 일을 겪었다.내게는 고향 친구 네 명이 만나는 작은 모임이 하나 있다. 그간 제 살림 일구느라 만나지 못하다가 십 수 년 전부터 갖게 된 모임이다. 처음 만났을 때 한 친구는 붓글씨에 매진하여 지역의 셀럽인사가 되어 있었고, 두 친구는 살림 9단이라는 흔한 것 같지만 쉽지 않은 별명을 헌사했을 정도로 똑 부러지는 살림꾼으로 살고
문경은 일년에 한 번 방문한다. 이곳은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곳이지만 살기가 팍팍해 식구들과 야반도주하듯 떠난 애증의 고토라 들었다. 결혼이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바탕나무라면 남편을 빚어낸 가족문화가 접붙어져 새로운 길로 뻗어나가는 삶이 아닐까. 나와 연고가 없던 문경이 백중(百中)을 지나 풀들도 더 이상 웃자라지 않는 주말이면 벌초 여행을 가는 중요한 정기 순례지가 됐으니 말이다.오래전, 남편과 시어머니는 예초기와 낫을 들고 직접 벌초를 했었다. 돌봐야 하는 묘가 여러 개이다 보니 후유증이 컸다. 익숙지 않는 장비로 고
비어버린 잔이 아쉬워 샷을 추가한다. 첫 잔은 나른한 오후를 깨우느라 허겁지겁 마셔버렸다. 급한 갈증이 가시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겨 그제야 가만히 향을 맡는다. 나르시스처럼 에스프레소에 빨려 들어간다. 커피를 추출할 때 마치 총구에 달린 레버를 당기는 것과 흡사하다고 샷이라 부른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서 한 번을 당기므로 1샷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싱글, 이탈리아에서는 솔로라 한다. 커피는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로 중동지역을 통해 유럽에 전래 되었다. '빈 포위전'에서 패배한 무슬림 군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망설였다. 우등 고속버스와 일반 고속버스 차이는 만원이었다. 구태여 걸리는 시간이 같은데 우등 고속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일반 고속을 탔다. 삶이 고단해 쉬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업주부다 보니 잠에 취해 시체 놀이로 시간을 버릴 만큼 일상이 피곤한 것도 아니다. 시집에 일하러 가는 데도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여행이다. 평일 일반 고속은 한 사람이 두 자리를 차지하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오늘은 형편이 달랐다. 옆자리에 내 또래의 우아한 차림의 여자 손님이 앉
늦은 오후, 태화강 국가 정원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처음 대면한 행복시민모임 여섯 회원은 서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온라인 화상방에서 수업을 진행해 오다가 오늘은 오프에서 하는 실천으로 미리 정해 놓은 날이었다.이번 주는 평화와 환경을 위한 걸음, '한라에서 백두까지 고고고'라는 주제 아래 우리 지역 태화강에서 시민들과 만나고,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실천 활동이었다. 전국의 행복 시민들이 4주간에 걸쳐 지역망을 연결해 걷고, 줍고, 만나면서 마침내 백두에 이르는 날, 그동
예전 홍콩과 대만에서 만든 중국무협영화가 스크린을 휩쓴 적 있다. 주제가 단순 소박해서 그만큼 흑백과 선악이 분명하고 강렬한 재미에 인기도 높았다. 악인에게 파멸한 가문이나 집단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어리고 선한 주인공은 고생 끝에 혈육의 원수 곧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지원수를 끝내 찾아내어 처단하는 내용이 거개의 얼개였다.그런데 삼국지에는 합종연횡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해관계에 따라 각종 세력이 이합집산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의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는 철석같은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자유진영의 주적세력은 격
삶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게 사람 목숨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고래 힘줄보다 더 모질고도 질긴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고도 한다. 삶과 죽음이 어떤 것이라고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불안이 엄습했다. 백신을 맞은 후 돌연사한 사람, 뇌사 상태가 된 사람,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 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같은 연령대가 맞아야 하는 백신은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 논란이 있어 불안함이 더 컸다. 백신 접종과
일 년 전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던 날 자정의 굉음을 잊을 수 없다. 그 전해에 경주 지진의 공포를 경험한 탓인지 이번에는 아예 집이 두 동강 나는 줄 알고, 서재에 있던 나는 몸이 굳어져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바람만 세차게 불 뿐 집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듯했다.날이 밝을 무렵 정원에 나가보았더니 북쪽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직경이 58센티미터나 되는 거목의 밑동이 싹둑 자른 듯이 부러져 있었다. 집이 아니라 느티나무가 넘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아녜스 바르다의 라는 다큐를 보았다. 거두고 남은 이삭, 그러니까 일종의 부스러기를 주워 생활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엔 다양한 종류의 이삭들이 나온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유통기한이 지난 빵, 소세지, 피자들. 야채시장 한쪽에 모아둔 시든 오이, 양배추 등. 가난한 사람들이 이것을 거두어 간다. 물론 바르다의 다큐는 끊임없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현대의 소비 행태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 양산되는 쓰레기를 주워서 생계에 보태고 삶을 유지해가는 쓰레기의 순환에도 관심을 보인다. 아니, 오히려 그 순환의
그립다는 이 흔하고 익숙한 단어가 이제는 입에 착 달라붙는 말이 되었다. 이전까지 살던 내 평범한 일상이 모두 그리운 것이 되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무엇보다 내 생활을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무료하고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잃고 나서야 비로소 얼마나 소중한가 알게 되었으니 나는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나는 칠십대다. 나이가 많아지니 어려움이 많아졌다. 눈앞에 선한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새로운 용어 하나 익히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나마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 다반사
광복절 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다. 파란색 줄무늬 옷을 입은 남편과 야자수가 그려진 원피스를 입은 나는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인파 속에 합류했다. 결혼이라는 큰 행사 뒤에 다가올 일들은 알 길이 없었고 함께 부대낄 수많은 여름도 이제 시작이었다. 종려나무 잎이 바람에 하느작대며 우리를 맞았다. 렌터카를 빌려 애월 해수욕장에 갔다. 비취색이었다. 깊지도 않고 잔잔해 물속을 걸어만 다녔는데도 좋았다. 서로를 향한 작은 말소리도 놓치지 않을 새라 붙어 다녔다. 호텔의 여름밤은 쉬이 잠들지 않았다. 용이
종종걸음 치며 사람들이 고사장 안으로 걸어온다. 이리저리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눈빛에선 일말의 긴장감과 결연함이 함께 느껴진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응시자의 연령층이 다양하다. 지난 4월, 초중등학교 졸업학력검정 고시가 있었다. 시험 당일인 토요일에 응원차 시험장으로 나갔다. 봄인데도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문득 입시한파란 단어가 떠올랐다.응시자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일주일에 한 번 재능 기부하러 다니는 울산 동광학교 학생들이었다. 합격을 기원하며 물과 도시락을 들려 보냈다. 합격은 못하더라도 몇 과목은
비대면 강의 수업 중이었다. "사진 찍겠습니다, 얼굴 좀 보여주세요." 출석 체크를 하겠다는 주문이다. 집행부에서 인증샷이 필요하다고 하니 피할 수도 없다. 이 일을 어쩌나, 얼굴을 내보이기는 정말 싫은데. 내가 사진 찍기 싫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일전에 가스레인지 사용 부주의로 머리를 태워 버렸다. 불을 켜 놓고 엎드려 물건을 꺼내는 틈에 머리에 불이 옮겨붙었다. 옆 지기가 쫓아와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이미 머리는 밑동만 남긴 채 타버린 뒤였다. 진짜 이유는 또 있다. 첫 수업 때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부터다. 젊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