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이 창살에 스며든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거실 창가로 갔다. 겨우내 앙상하던 재스민 나무에 눈길이 닿는 순간 오밀조밀하게 파릇한 무엇인가가 꽂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깨알 같은 새순들이 뾰족뾰족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우와!" 탄성과 함께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출근 준비도 잊은 채 이 상서로운 기운 앞에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디자인 광고업을 하던 동생이 이태 전 봄에 가게를 정리하고 서울로 가면서 주고 간 것이었다. 꽃이 특별하고 향이 오래가니 잘 키우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봄
얼마 전 동네 천마산 등산로 초입에서 안면 있는 어른을 만났다. 늘 애창곡을 작게 틀고 다녀 약간은 민폐인 분이었다. 주로 트로트였다. 그런데 그땐 블랙핑크의 노래를 듣고 있어 '참 젊게 사시네요.' 하니까 손녀가 줬다며 블랙핑크 제니의 인스타가 '캐치미이프유캔(Catch me if you can)'이라는 것까지 적어주었다고 자랑하셨다. 사실 그 문장은 '나 잡아 봐-라!'는 재미있는 구절로, 유명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범죄 스릴러물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그 영화 속 대사 중에 &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뉴스로 조용한 날이 없다. 고즈넉한 길을 산책하는 게 망설여지고 밤길을 다니는 것도 불안하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생명을 앗아가고 묻지 마 폭력과 살인, 보복 범죄, 성폭력 등이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세상이 무섭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다.퇴근 후 해가 한참이나 남아 산길을 걷기로 했다. 염포산 임도를 따라 걷는 이 길은 오래전부터 출퇴근할 때 걸어 다녀 낯설지 않다. 성내에서 오르막을 잠시 걸으면 산을 찾을 때마다 갈증을 해소해 주던 정든 약수터가 나온다. 물 좋기로 소문난 약수터는 늘 붐비던 곳이었는데
들꽃 한 다발을 아침 식탁에 올렸다. 세상의 색을 모두 모아 식사를 마련한 듯 밝고 따듯하다. 커튼을 걷자 곱고 얇은 햇살이 보글거리는 된장 뚝배기에 내려앉는다. 맑은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는 마주 앉은 남자가 반가워할 상차림인 듯싶다. 우리 부부가 한 달에 두 번 가질 수 있는 여유롭고, 귀한 시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일 중독자처럼 쉬는 날이면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하느라 주변의 변화에 눈길조차 주지 못하고 하루를 소진했다. 최근엔 좀 느긋해졌다. 풀을 뽑다가도 새로운 녀석을 만나면 인사가 길어지고, 기념촬영도 잊지 않는다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여행을 꼽는 사람이 많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니, 그저 비행기만 타고 하늘을 돌다 내려오는 상품도 순식간에 매진된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세계 테마 기행'이니 '걸어서 세계 속으로'니 하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 나오면 눈을 떼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다. 얼마 전엔 '그 섬에 가고 싶다'란 프로그램을 보다가 스무 살 때의 남해 여행을 떠올리고 한참 추억에 잠겨서 서성거렸다. 그해 여름, 친하게 지내는 언니와 함께 남해도에
아파트 복도에 철로 레일이 뻗어있다. 집집마다 현관은 닫혀있고 달리는 차도 없는 적막한 기찻길이다. 옆집까지 천리만리길. 오늘날 이웃과의 거리를 뜻하는 어느 포스터 내용이었다. 우리 집 현관 밖에도 레일이 깔렸다. 나의 잘못이 아닌 전적 내 이웃의 잘못으로 치부했다. 아파트 복도에는 무심하고 무정한 시베리아 바람만 불어쳤다. 오른편 옆집에는 노부부가 산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야아!'이다. 지옥의 염라대왕이 벌벌 떨고 있는 사람에게 오달지게 한방 먹이는 소리 같아 할아버지께 아무 잘못 없는 나조차 사시
국가정원에 수레국이 지천으로 피었다. 아련한 색을 가진 수레국 구경 갔다가 강종거리며 가는 하얀 강아지를 보았다. 키가 꽃에 닿는 것도 아닐 텐데 만면에 웃음이다. 개가 웃다니. 무슨 개가 웃을 소리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에게도 기쁨, 슬픔, 울음, 웃음 등 감정이 있다는 것을 재복이를 통해 배웠다. 내게 비타민 같은 재복이는 딸이 키우는 강아지다. 견종은 포메라니안이고 두 살이다. 고관절 수술 후 아직도 치료 받는 자그마한 개다. 파양 직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입양하게 되었다는 것은 딸이 마련한 변명이다. 아이 한 명 키울
새 학기를 앞두고 있었다. 안방 문 안쪽 손잡이가 떨어졌다. 흉물스러운데다 떨어진 손잡이는 깨져 있었다. 손잡이가 있던 자리에는 검은색 윤활유가 묻은 링과 손잡이가 맞물려 돌아가는 가느다란 각축이 드러났다. 문 손잡이 교체를 차일피일 미뤘다. 떨어진 손잡이를 각축 부분에 갖다 대어 돌리면 문이 열렸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문 옆에 엄지손가락 크기로 튀어나온 렛지머리도 느슨하게 움직여서 꽉 닫히지 않았다. 손잡이를 갖다 대는 일은 점점 번거로워졌다. 슬쩍 스치기만 해도 문이 열렸다. 깊은 밤이었다. 숙면하지 못하고 괭이잠을 자
비어있던 위층에 새사람이 이사 왔다. 여름 내내 보수하느라 쿵쾅거리더니 오늘은 사람이 뛰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짓궂은 개구쟁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 속에는 은근히 그동안 불편했던 심기도 깔려있다. 사과는 아니더라도 미안했다는 인사 정도는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며칠 지나도 감감한 것으로 보아 그런 인정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다. 이럴 때 이사 떡을 돌리며 웃는 얼굴로 퉁 치면 봐줄 수도 있는데…. 아니지. 내가 덜떨어진 인간이다. 바랄 걸 바라야지 지금이 감히 어
봄이다. 모두가 목을 빼고 내다보던 봄날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숲속 풀, 나무며, 벌, 나비까지 살아 숨 쉬는 것들은 죄다 계절의 혹독한 서슬에 가슴 오그리고 꽁꽁 옥죄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쓰나미까지 연중무휴로 맹위를 떨치니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모두가 목을 있는 대로 빼고 기다렸다. 기적의 백신 같은 막연한 그 무엇인가가 번쩍 나타나 저 무기력했던 나날들을 싹 다 갈아엎어줄 것 같은 절대의 힘을.그러나 막상 봄은 도둑고양이처럼 와서 내 거친 볼을 비비는 아침햇살처럼 주변을 서성이고, 딱히 할 말은 없다는 표정이다
얼마 전,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을 보았다. '서울 배리어프리 영화제 in 울산'에 올려진 작품이었다. 코로나19로 공연은 대부분 취소되고 외식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때여서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3차 유행이 한고비를 넘기고 방역이 느슨해진 덕에 영화 관람이 가능했다.배리어프리라는 말은 장벽을 없앤다는 뜻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구나 편의시설, 설비 등을 이용해 장벽을 없애는 것을 배리어프리 운동이라고 한
동산의 등성이에 차오르는 아침 기운이 서재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스민다. 이런 순간을 느껴본 지가 오래전 일 같다. 힘이 넘치는 듯한 능선의 모습은 산이 맞고 보낸 서사의 형상이다. 오늘 아침에서야 그 곡절에 마음을 기울인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부지리로 얻은 사흘간의 완벽한 여유 덕분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행으로 숨이 찬 시간을 사람들은 험한 길 탓이라며 편한 길을 찾아 걷기도 하지만 난삽하고 거친 능선의 매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등산을 즐기지 않지만 고된 산타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산과 사람의 행
오디오북으로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듣다가 오네긴의 나이를 알고 조금 놀랐다. 오네긴이 친구 렌스키를 결투 끝에 죽이고 방랑길에 올랐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러니까 온갖 풍상과 애환을 맛보고 쉴 곳을 찾아 돌아온 나이가 스물여섯이라는 것. 스물여섯이라니, 스물여섯이면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거나 내디딜 준비를 하는 희망에 부푼 나이 아닌가. 그런데 푸시킨은 그 나이를 '지금은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은' 나이로 묘사를 했다.푸시킨이 살았던 19세기 초에 유럽의 평균 수명이 45세 정도였
잘 나가던 국숫집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 비상시국 일 년 만에 국수 가락 끊어지듯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어져갔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다. 바이러스 틈으로 업종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발버둥을 칠 때 하종 씨도 앞에 하던 건축 일을 접고 이 문 닫힌 국숫집을 인수했다. 국수 대신 만두로 종목을 바꾸었다. 배달하기 좋고 테이크아웃하기도 쉽게. 코로나가 어서 사라지길 기대하며 마음 푸근하게 앉아있고 싶은 식탁도 몇 개 놓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이라 그동안 진 빚을 금방 갚을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하며. 하종 씨가
눈부시게 맑은 하늘에 공기는 달다. 햇살은 투명하고 코끝이 아릴만치 차갑다. 아침나절 햇살 아래 나서니 익숙한 느낌이 훅 다가온다. 고향의 겨울 풍경이 스쳐간다.설이 며칠 지났다. 어른이 된 후 명절을 맞는 마음은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흩어졌던 식구들이 모여 북적이니 좋고 하나라도 더 준비하여 즐겁게 먹을 생각에 힘을 내고 움직인다. 그런데 신축년 올 설은 눈도 코도 본 적 없는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흐트러졌다. 주소지 다른 식구는 5인 이상은 모이지도 말아야 한다니 서운하고 당혹스러웠다. 설 전 오일장은 작년만
"여보, 차박 가자. 얼른 준비 해."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주말 오후, 집에 있는 먹거리만 간단하게 챙겨서 밖으로 나간다. 평일 내내 쨍쨍한 날씨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따라 날씨가 심술궂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나온 지 5분도 채 안 돼 차 앞 유리 와이퍼가 심드렁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빗방울이 굵어진다. 바람까지 가세한다. 알레르기 비염을 앓고 있는 아이가 연신 재채기를 한다. 차박을 위해 침구를 챙긴다고 차 안을 들썩거렸더니 더 심해졌나 보다. 휴대용 공기청정기도 틀었건만 효과가 없다.터널을 두어 개 지나 외
흙썰매를 탄다. 끙게를 매단 소가 느릿느릿 움직인다. 울퉁불퉁한 이랑이 앞장서고 매끈한 밭이 뒷걸음친다. 소가 속력을 내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줄잡은 손에 힘을 준다. 끙게가 지나가면 고운 흙이 솜이불처럼 보리씨를 덮어준다. 끙게는 씨를 뿌리고 나서 그 위에 흙을 덮는데 쓰는 도구이다. 방망이 굵기의 나무를 발처럼 엮어 사람이나 소가 끈다. 보리씨를 덮고 땅을 다지는 끙게는 농기구일 뿐만 아니라 좋은 놀잇감이기도 했다. 이랴! 이랴! 아버지는 소를 끌며 보리를 갈고 어린 우리는 끙게 위에 앉아 호시를 탄다. 웃음소리가 흙먼지처럼 날
엄청 무더운 날씨다. 누가 말을 걸지 않아도 짜증이 날 만한 날씨다. 부축을 받아야 운신하시는 어머님은 오늘도 소파에 누워 가만 계시질 않는다. 몇 분 간격으로 에어컨 켜라. 꺼라 선풍기 켜라 꺼라 하시며 "얘야"를 불러 젖힌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화장실 불은 왜 끄지 않니, 사람도 없는 방에 왜 선풍기가 돌아간다니, 젊은 사람이 왜 저럴꼬 끌끌." 그놈의 왜, 왜, 왜…. 노모의 지청구는 결국 나의 건망증으로 귀결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속에선 '좀 켜 놓으면 어때서'라는 볼멘소리를 내지른다. 저 연세에 기
이런저런 연유로 해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30년 정든 집을 떠나 새 거처로 옮기는 일은 무척 성가셨다. 이사한 동네는 모든 게 낯설었다. 이삿짐은 몇 날 며칠을 정리해도 끝이 없었다. 경황없는 동안 아파트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저녁 퇴근길에 입구를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마침 폭우까지 쏟아져서 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을 불러내어 에스코트를 부탁했다. 어이없다는 남편의 실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나님이 타고난 길치라는 걸 여태껏 몰랐단 말인가. 부산함을 잠재운 후,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머리로는 다 털어낸 미움이 가슴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미혹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나를 꺼내고 싶었다. 혼자 산길을 걸으면서 거미줄처럼 얽힌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늘이 잔뜩 낮게 내려앉은 날, 지리산 자락을 걷기 위해 마천으로 차를 몰았다. 늦은 시간에 혼자 떠나기가 망설여졌지만 용기를 냈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지워버리고 싶은 한 사람의 모습이 잠을 훔쳐 달아났다. 뒤척이며 새벽을 맞았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배낭을 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