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태화강 물축제 있은 날, 개막식 직전에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복원부문 최우수상 수상 표지석' 제막식이 있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태화강이 선정되고, 또한 복원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국토해양부 및 한국하천협회가 전국의 하천, 호소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전에서 태화강이 선정된 것이다. 전국에는 하천만
불현듯 식물인간 상태 소생 불가능한 환자 두고 인공호흡기 당기며 법정에 선 세상 기구한 저승 가는 길목… 인간존엄 누릴 죽음도 인간이 만든 잣대로 얽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생명 경시의 안락사 내 고통 보다 더 어둔 늘어진 식솔들의 슬픈 그늘… 환자의 자율성 존중?〈保?斷趾) 없게 의식 있을 때 '자연스러운 죽음을…' 유언장에 꼭 써넣어야겠다. < 시작노
윤해모 현대차지부장이 25일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집행부 사퇴에 따른 현대차 노조 내부 갈등이 노동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하급단체 지부장이 상급단체 수장을 고소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으로 노동계에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윤 지부장은 "정 위원장이 지난 22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현대차지부의 정상화 방안과 관
지난 주말, 긴 가뭄 끝에 비다운 비가 내린 이후 울산에도 연일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갑자기 닥친 더위 탓인지 현장근로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이 한낮이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서만 생활을 하고 있다. 시내 가전제품 가게에는 에어컨과 선풍기 등 여름 성수품이 동이 났는가 하면, 수리업소를 찾는 시민들의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는 유럽의 70개 도시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미니픽쳐 형태로 전시된 공원이 있다. 런던의 버킹검궁이나 파리의 에펠탑 등이 실제모습으로 재현된 공간은 많은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도시의 상징물은 바로 도시 그 자체를 연상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 도시들은 앞을 다투어 자신들의 정체성에 걸맞는 상징물을 도심에 세우거나
북한 선박 '강남호'가 미군의 추적을 받고 있다. 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WMD)의 수송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단거리 또는 중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도 포착됐다. 북한은 원산 해안으로부터 110㎞ 내에 있는 북동쪽 해역에서 25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군사사격 훈련을 실시한다며 항해금지 구역을 통보했다. 남북관계도 개성공단을 둘러싼 대립이 해소되지
중소기업의 부장인 48세 김모씨는 만성허리통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해왔지만, 예전에 찍은 X-ray와 CT 사진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또한 증상도 비교적 참을만했기에 가끔씩 허리가 아플 때에는 물리치료와 침을 맞으며 견뎌왔다. 하지만, 얼마 전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무리를 해서인지 허리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특히 아침에는 매우 심한 통증으로 잠
태화강이 생태도시 울산의 상징이 되고 있다. 한때 산업화시대 개발과정에서 죽음의 강으로 전국에 각인됐던 태화강이 생태의 강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사라졌던 각종 물고기들이 되돌아오는 등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명의 강으로 다시 탄생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태화강 물 축제를 꼽을 수 있다. 숨쉬는 강으로 새롭게 부활 올해도 태화강 물 축제가 전국적인 관심 속에 성공적으로 열렸다. 이제 물 축제는 울산인들만의 축제가 아닌 전국적인 축제의 하나로 자라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태화강이 명실상부한 울산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고충신으로 추앙을 받는 박제상은 신라 초기에 울산에서도 활약한 최초의 실명(實名) 인물이다. 그는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가있던 왕의 동생 복호를 구해온다. 왜국에 가서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해 신라로 돌려보내지만, 자신은 붙잡혀 죽임을 당한다. 그가 왜국으로 떠날 때 배를 탄 곳이 북구 강동 앞 바다였다. '신라충신 박제상공 사왜시발선처(使倭時發
톰행크스와 맥라이언 주연의 영화 '유브 갓 메일'을 인터넷을 통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지역 시민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인 뉴욕의 명물 '길모퉁이 서점'이 길 건너편에 프랜차이즈 서점이 들어서면서 문닫을 위기에 처하자, 사연을 전해들은 뉴욕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대형서점 때문에 고사
울산경제가 예사롭지 않다. 지금껏 나타났던 일시적인 침체와 달리 장기화 국면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지난 90년대 겪었던 10년 장기침체가 울산에 본격 상륙한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24일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울산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 89억2천3백만 달러에
다시 6.25전쟁 기념일이 돌아왔다. 59년의 세월이 흐른 올해의 6.25는 그 어느 때보다 남북의 긴장상태가 팽배해 있다. 북한은 대남도발 망언을 넘어 이제 세계를 향해 응징운운하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최근에는 강원도 깃대령에서 북동쪽 해상으로 항해금지구역을 선포해 스커드 미사일 또는 지대함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이
울산은 관용을 넘어 이제는 세계화시대의 아이콘으로까지 불려지는 '처용'을 제대로 세운 적이 있었던가. 처용설화의 발상지라고 목소리만 높였을 뿐, 그동안 처용문화를 바로 세우는 데에는 너무나 소홀했다. 물론 마흔 해가 넘게 처용문화제를 치룬 것이 바로 처용문화를 제대로 이어온 게 아니냐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해마다 속빈 강정 꼴의 처용문화제를
드니가 세상을 버린지 벌써 몇년이 훌쩍 지났다. 그가 떠나고 나서 왠지 그의 와인을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것 같다. 얼마전 쥬브레 마을을 지나다 그가 쉬고 있는 묘지에 들렀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두고온 잔이 보이질 않는다. 작년까진 있었는데.... 미안한 마음에 그의 이름이 붙은 와인을 몇 병 사왔다. 그 사람 살아당시에 만들었던 와인들(96~2003)은
지금 동구 주전지역에서는 오랫동안 쓰지 않는 군시설을 지역민을 위한 생태쉼터로 조성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군 연병장으로 쓰던 곳과 군 초소로 쓰이던 곳 등 각각 두 곳에서 공사가 진행중인데 이 가운데 한 곳은 빠르면 이번 여름 휴가 시즌에 맞춰 개방될 예정이다. 승용차가 보급된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주전
이란인들이 2009년 6월 22일 아랍 에미리트 연합(UAE) 수도 두바이에서 이틀전 테헤란에서 대선 항의 데모중 총탄에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진 젊은 이란 여성 네다 아가 솔탄의 사진 앞에 애도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반발하는 시위에서 가슴에 총격을 입고 피를 흘리며 죽은 젊은 여성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
최근 울산지역에 갤러리가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경기 침체 등으로 전시시장이 많이 위축된 상황에서 시민들 가까이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예술향유의 기회가 늘어나 반가운 소식이다. 울산지역에는 10여개의 갤러리가 운영 중에 있는데 울산문화예술회관과 현대예술관 전시장에서는 규모가 제법 큰 전시가 주로 열리고 소규모 갤러리는 작가 개인전이나 2~3인이 뜻을 모은
울주군이 이미 결정한 사업을 놓고 하니 못하니, 티격태격하고 있다. 군은 서생면 명산리에 울주 영어마을 건립에 따른 부지 매입을 완료하고 현재 문화재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특히 군은 2012년 2월 개원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기까지 했다. 더 이상 물릴 수도 없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대(對)군민 약속이자 신뢰의 문제가 걸려 있다. 그런데
자전거가 화두다. 녹색에너지시대, 친환경이라는 이름에는 언제든지 자전거가 정책의 기둥으로 따라다닌다. 울산시도 팔을 걷었다. 자전로 생태환경도시 울산 만들기를 비전으로 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 세부 추진계획'이 확정됐다. 자전거 도로도 대폭 늘어난다. 현재 175㎞에서 2012년까지 350㎞로, 2012년까지 558㎞로 도로망이 갖춰진다. 이렇게
지난 5월 29일 울산에서 사시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윤두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울산에 그런 분이 사셨는지 조차 몰랐던 필자로선 아주 놀라운 사건이었다. 울산의 한 여성단체에서 그동안 드러내지 않고 윤두이 할머니를 돌봐왔었고, 할머니의 슬픈 소식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 하며 상주의 심정으로 소박하나마 추모식을 마련했다. 여성이라 겪었던 위안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