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멋진 제주바다의 풍경과 어우러진 잘 가꿔진 올레길 8코스.


심규명(가지산 산악회)

이상 한파에 곳곳에 내리는 폭설. 이미 한달 전부터 한라산 눈꽃산행을 가기로 하였기에 김해에서 비행기로 출발은 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제주도에 도착할 때에도 눈발은 가늘게 날리고 있었다.

국립공원관리소에 전화를 하니 진달래대피소까지는 산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하고 내일의 산행을 기약하며 버스로 관광일정을 채워나갔다. 관광하는 동안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10분정도면 도착할 정도로 숙소를 지척에 두었지만 1시간이 지나도 길 위에서 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다시 국립공원관리소에 전화를 하니 한라산 등반은 전면통제란다. 버스 안에서 회의가 시작되었고 얼마 전 올레7코스를 다녀와 본 적이 있던 나는 올레길이 너무 멋지다면서 산행대신 올레코스를 걷자고 제의하자 모두가 좋다고 한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8코스를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가장 멋있다는 7코스를 다녀온 나로서는 8코스를 가고 싶은 욕심에 잠시 침묵을 지키자 자연스럽게 올레8코스를 답사하기로 결정이 났다.

 

 

   
▲ 제주 올레길을 다녀온 가지산 산악회원들이 8코스 시작점인 월평포구 인근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전날 내린 눈으로 빙판길이 되어버린 도로위로 계속 눈이 내리니 서귀포로 가는 길이 순탄할 리가 없다. 눈길위로 몇 번 미끌어지고 체인을 채우는 등 우여곡절 끝에 약천사에 도착하였다. 눈 속에 잠긴 고즈넉한 사찰에 둘러 오늘의 안전을 기원한 후 8코스를 시작하였다. 월평포구가 8코스의 시작점인데 약천사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이라는 버스기사의 말을 믿고 약천사를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월평포구는 약천사에서 약 5km 떨어져 있어 8코스를 완주했다고 하기에는 아쉬워 약간 속이 상하기도 했다.

 올레라는 말은 집마당에서 큰길에 이르는 골목길을 의미하는 제주방언이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자동차를 이용한 편한길을 찾다보니 옛적에 다니던 길은 그야말로 잡풀로 막혀버리게 된다. '산속의 작은 길도 자주 다나면 큰길이 되지만 한동안 다니지 않으면 띠풀로 막히게 된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 맹자의 진심편에 나오는 위 글귀는 오바마가 중국의 경제사절단 앞에서 인용하여 유명해졌는데 올레의 탄생과 소멸이 위 글귀와 너무나 흡사하다.

 새로운 길을 내면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되는데 8코스의 선궷내길과 해병대길이 그러하다. 선궷내길은 약천사 앞을 흐르는 작은 개천이다. 처음에는 선궷내가 아닌 논밭길 사이로 올레길을 열었는데 비포장이라 올레꾼들이 불편해 보였는지 마을주민들이 콘크리트 포장을 하였다. 그 후 비포장을 고집하는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의 지적을 받고 마을 청년들이 옛날에 해녀들이 다니던 길을 찾아 나무를 간벌하여 처음보다 더 훌륭한 바당(바다의 제주방언)올레로 업그레이드된 곳이다.

 

 

 

 

   
▲ 올레길 중간에 위치한 해안가.

 


 선궷내길은 10여미터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내리는 눈을 두껍게 뒤집어쓰고 있어 위험하게 보인다며 다른 길로 가자는 회원 몇 명을 설득하여 냇가로 내려왔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선궷내를 따라 100여미터를 내려가면 바로 바다로 이어지는데 멀리 8코스의 출발점인 월평포구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눈을 돌려 오른쪽으로 보니 하늘을 가리는 송림이 울창하게 서있고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눈 내리는 바다의 풍경은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산을 엄청 좋아하는 산사나이인 한 회원은 한라산도 좋지만 올레길이 너무 좋다고 감탄을 연발한다.

 그렇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즐겁게 걷다보니 어느 덧 주상절리대이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차가운 바깥공기와 접촉하여 수축하면서 사각형과 육각형의 기둥모양으로 형성된 바위를 말하는데 포대주상절리대와 갯깍주상절리대가 유명하다. 포대주상절리대는 육각형의 모양이 뚜렷하고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나 입장료를 받고 있어  불편한 마음을 갯깍주상절리대에 하소연하기로 하고 지나갔다. 중문해수욕장과 조근모살해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사이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갯깍주상절리다. 갯깍의 의미처럼 바닷가에 인접하여 높이 40-50m 상당의 주상절리가 1km정도 크다란 나무를 쌓아 둔 것처럼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돈을 내지않고 위로 쳐다보는 주상절리의 아름다움은 돈을 내고 위에서 내려보는 주상절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올레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 장대한 갯깍주상절리대.

 


 갯깍주상절리대를 막 지나면 보너스로 다람쥐궤가 나온다. 다람쥐궤(박쥐동굴의 제주방언)는 가파른 언덕의 중턱에 형성된 동굴로 높이가 3m, 폭이 5m, 깊이가 약 20m 정도이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깔데기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닥은 평평한데 이곳에서 선사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한번은 이곳에서 개를 잃어버렸는데 산중턱에서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 것으로 보아 아마 이 다람쥐궤는 만장굴처럼 길게 이어진 용암굴이었는데 중간에 막힌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아무리 선사시대이지만 해안가의 깍아지른 절벽 중턱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동굴이 이어져 있다면 바닷가에서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다 이곳 동굴을 통해 바닷가로 나와 어로활동을 하였을 것이라는 상상이 사실에 근접하는 것 같아 흐뭇하기 그지없다.

 시작점에서 내리던 눈발은 올레길이 끝나갈 때까지 때로는 함박눈으로, 때로는 세찬 눈보라로, 때로는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을 보여주는 등 심각한 조울증 환자처럼 오락가락했다. 모자를 쓰다 벗다를 몇 번 반복하는 사이 어느듯 해병대원의 도움으로 날카로운 해변이 둥글뭉실한 돌길로 변한 해병대길, 한라산에 내린 빗물이 해변가에서 솟아나는 논짓물을 지나 대평포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올레길은 올레길 자체로도 그 아름다움을 형용하기가 쉽지 않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해가 비치면 해가 비치는 대로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길, 이 올레야말로 다시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제주명품 중에 명품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고단하고 팍팍한 여정 속에서 삶의 고민과 걱정, 두려움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레지기 서명숙의 말처럼 그 길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지친 영혼을 치유하고 건강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제주올레길은 평화의 올레, 사랑의 올레, 대화의 올레 등등 여러 별칭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콘셉트는 치유의 올레이다. 속도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이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이에 어느 듯 치유된다는 뜻이다. 육체적인 병 또한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