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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웅촌 석천리 석계정사 100년생 '무궁화'
 

▲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석계서원 경내의 석계정사 무궁화는 강릉 사촌면 방동리 강릉박씨 제실, 홍천군 고양산 등산로 무궁화나무와 더불어 전국에서 몇그루 안되는 노거수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봄의 소리가 천지간에 조금씩 울려퍼지고 있다. 바다 건너 큰 섬 제주에서부터 화신(花信)이 전해지고 있다. 냉기가 아직은 우리 곁에 머물고 있지만, 양지쪽 꽃나무에는 하루가 다르게 하나씩 둘씩 꽃망울이 도톰히 맺히고 있다. 설 다음날인 지난 4일이 입춘(立春)이었고, 오는 19일이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이고 보면 봄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째 냉기가 주춤하다. 햇살이 살살 간지럼을 태우며 주위를 맴돌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버들가지에 물이 오를 날도 바싹 다가섰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봄날이 오는 기척에 울산에서 하나 뿐인 고목(古木) 무궁화도 새움을 틔울 차비를 하고 있다. 나라 안 곳곳에서 무수히 많은 무궁화를 볼 수가 있지만, 노거수 무궁화는 손을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나라꽃으로 불려왔지만, 일제가 나라를 빼앗은 뒤에 무수히 베어버린 탓이다. 나라를 되찾은 뒤에도 나라꽃이라고 하면서도 보호의 손길을 제대로 펼치지도 않았으니, 아름드리 무궁화를 볼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그래도 근래에 들어와 무궁화를 심고 가꾸는데 정성을 쏟고 있음이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 사방으로 고루 뻗친 가지에 지난해에 피었다 말라 버린 꽃봉오리가 그대로 매달려 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학명(學名)이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인 점에서 중동의 시리아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현재 시리아에서는 무궁화를 찾아 볼 수가 없어 한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지역일 것으로 여겼다. 그 뒤 시리아와 이웃한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 전 25년경의 무궁화 꽃을 새긴 은전(銀錢)이 발견됨으로서 원산지가 시리아인 것으로 굳어졌다.
 무궁화는 고대에 환화(桓花)라고도, 근화(菫華)라고도 불렸다. 환화는 '태양과 같이 밝은 꽃'이라는 뜻이다. 환인(桓因)이 세운 배달국의 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근화는 '쉼없이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무궁화는 그러므로 단군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 나라의 가장 두드러지고 아름다운 꽃이다. 신라는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자기 나라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의 나라'라고 적었다. 무궁화가 나라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화랑도가 쓰고 다녔던 모자에 달렸던 꽃도 무궁화였다고 한다. 무궁화는 정부가 법률이나 제도로서 정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 민족과 수천년간 애환을 함께 해왔기에 나라꽃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100일 동안 화려한 꽃

 무궁화의 강인한 생명력에서 나라꽃으로서 근본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어 같은 곳에서 피어나고 번식한다. 그런 끈질긴 자생력이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괴어 있는 맥과 얼에 상통한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100일간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낱낱의 꽃은 이른 새벽에 피고 저녁에 지기 때문에 날마다 청순함을 느끼게 한다. 며칠이 지나면 먼저 핀 꽃은 떨어지고 새로운 꽃이 그 뒤를 이어 피어난다. 꽃과 꽃이 이어지면서 끊임 없이 피는 꽃이란 뜻에서 무궁화다. 그 강건함과 순수한 아름다움이 우리 민족정서와 맞아떨어져 나라꽃으로 귀염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여기면서도 무궁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무궁화의 모든 품종을 나라꽃으로 알고 있다. 부용과 황근 등 무궁화속의 식물도 나라꽃으로 혼동하고 있다. 그동안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데다, 체계를 세운 뒤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무궁화 육종학자 울산 출신 심경구 박사(71)는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체계를 세우고 일반에 널리 알리고 있다.

 

 

 

 

   심경구 박사의 체계표에 따르면 나라꽃 무궁화는 우리 나라 재래종이거나 국내에서 연구개발된 홑꽃의 홍단심계 또는 홀꽃의 백단심계 품종을 말한다. 일반계 품종이나 파랑새와 배달꽃, 아사달 계통은 나라꽃 무궁화가 아닌 관상용 무궁화라고 한다. 하와이 무궁화와 부용은 아예 무궁화가 아니라고 한다. 홍단심계 가운데 나라꽃 무궁화의 대표적인 품종은 삼천리와 영광, 새마을, 광명 네 종류다. 백단심계 가운데에는 백단심과 심산, 선덕, 화합 네 종류가 대표적이다.

일제시대 '겨례꽃' 타박 수없이 잘려나가
 

 무궁화는 아욱과의 잎 지는 키 작은 나무다. 우리 나라에서는 깊은 산을 제외한 전국에 걸쳐 자란다. 키는 2~4m이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어린 가지에는 털이 있으나 자라면서 점점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며 달걀 모양 또는 마름모상 달걀 모양이고 위쪽이 얕게 갈라진다. 잎몸은 길이 4~8㎝, 너비 2~5㎝로 앞면에는 털이 없으며 3개의 큰 맥이 있다. 뒷면에는 맥 위에 털이 있으며 잎자루의 길이는 5~15㎜다. 꽃은 7월에 피어 10월까지 오랫동안 피어 있고, 새로 자란 잎겨드랑이에서 하나씩 달린다. 지름이 6~10㎝로 꽃잎은 5개로 갈라진다. 꽃이 아름답고 꽃피는 기간이 길어서 정원이나 학교, 도로변, 공원 등의 조경용과 분재용 또는 울타리로 널리 이용된다. 열매는 긴타원형으로 10월에 성숙해 벌어지면 털이 달린 씨가 나온다.

 무궁화는 세계적으로 250여종이 있으며, 무궁화속 식물은 7개 군(群)으로 분류되고 있다. 세계 44개 나라에서 정원수와 분재용, 가로수로 이용하고 있고, 우리 나라는 무궁화와 황근, 부용 세 가지 수종이 주로 정원수와 분재용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27개 나라가 무궁화를 연구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1850년대에 이미 품종을 명명해 시판했고, 일본은 1930년대부터 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1947년부터 연구를 시작했으며, 육성품종은 100여개 품종에 이른다. 일본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100여개 품종을 길러내 모두 200여개 품종을 육성했다.

 우리나라에서 길러낸 품종 가운데 심경구 박사가 새로 만든 품종만도 60여종이나 된다. '삼천리'와 '화합'이 대표적이다. 모목이 우리의 순수 재래종으로 국운부흥과 동서화합을 상징하고 있다. 경북 안동의 예안향교에 있는 100년생 무궁화를 어머니로, 전북 남원시 산동면에 있는 직경 6.4m의 무궁화를 아버지로 하여 지난 2002년 8월 1일 홍단심 '삼천리'와 백단심 '화합'을 만들어냈다.

100년생 넘는 고목 전국서 2~3그루 불과

 

 

▲ 1.7m 높이에서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줄기가 수십개의 가지로 뻗어있다.

   그 외에도 독도를 상징하는 신품종으로, 바탕이 청색인 청단심 '동해'도 만들었다. 특히 새로 만든 다섯 품종에는 고향 울산을 나타내는 이름을 붙였다. '태화강'과 '문수봉', '학성', '처용', '여천'이다. 울산 남구 선암동에 있는 선암호수공원에는 심경구 박사가 개발한 무궁화 품종을 심어 조성한 무궁화동산이 자리잡고 있다.

 무궁화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노거수가 흔치 않다. 수명이 30~40년 정도로 짧은 것이 주된 원인이라지만, 한동안 일제가 강압적으로 베어낸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전국에 100년생이 넘는 노거수 무궁화라야 두, 세 그루에 불과하다. 가장 오래된 것은 강원 강릉시 사촌면 방동리 강릉박씨 제실에 있다. 나이는 80~110년으로 추정한다. 키 4m, 밑동 둘레 150㎝, 수관은 6m에 이른다.

 

   여름날 수백 송이의 꽃이 한꺼번에 피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한다. 강원 홍천군 고양산 등산로 중간쯤에서 자라는 무궁화는 가장 큰 키를 자랑한다. 키 6.5m에 밑동둘레는 100㎝. 그밖에 전남 남원시 산동면과 경북 안동 예안향교의 무궁화 등 50년을 넘긴 무궁화도 40여 그루에 이른다. 가깝게는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장안초등학교에도 있다. 나이 60년, 키 4m, 밑동둘레 40㎝.

 울산의 고목(古木) 무궁화는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석계서원 경내의 석계정사(石溪精舍)에 있다. 지난해 여름 울산의 몇몇 신문이 소개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공식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나이라든가 키와 둘레 등을 어림잡아 퍼뜨렸다. 나이는 100년. 키 4.5m. 뿌리부분 둘레 40㎝. 수관폭 5m로 추정된다. 몸통이 곧게 뻗어 올라 1.7m 높이에서 동서남북 네 가닥으로 갈라졌다. 동쪽 것이 가장 가늘고, 남쪽 것이 가장 굵다.

 몸통은 전체적으로 동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다. 몸통 아랫 부분에는 삼각형 모양의 썩은 부분이 남아 있다. 몸통을 온통 둘러싸고 청태가 잔뜩 끼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꽤 오랜 세월을 지나왔음을 알 수 있다. 사방으로 고루 뻗친 가지에는 지난해에 피었다 말라 버린 꽃봉오리가 떨어지지 않은채 그대로 매달려 있다.

보존가치 높은 노거수 '보호수 지정'해야

 동쪽 것은 다시 40㎝ 높이에서 두 줄기로 나뉘었다. 그리고는 작은 가지를 내질렀다. 남쪽 것은 다시 30㎝ 높이에서 네 줄기로 나뉜 뒤에 8개로 갈라졌다. 줄기가 잘라나간 흔적도 두 군데에 남아 있다. 북쪽 것은 20㎝ 높이에서 다섯 줄기로 나뉜 뒤에 다시 9개로 갈라졌다. 줄기가 잘린 흔적도 있다. 서쪽 것은 30㎝ 높이에서 네 줄기로 갈라진 뒤에 가장 많은 10개로 또 다시 나뉘었다. 가지가 썩어 떨어져 나간 흔적도 남았다.

 울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흔치 않은 석계정사의 고목 무궁화에 대해 보호의 손길이 뒤따라야 한다. 울주군은 하루빨리 공식적인 조사를 실시한 뒤, 보호수로 지정해야 한다. 무궁화가 나라꽃이 아니던가. <꽃 중의 꽃 무궁화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 위에/ 민족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 별 중의 별 창공의 별/삼천만의 가슴에/ 빛나네 빛나네 영원히 빛나네/ 인왕산 봉우리에 조국의 하늘 위에/ 민족의 꽃이 되어 아름답게 빛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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