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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가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한 모임에서 '울산 토박이'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다. 오늘의 울산을 만든 주역들이 60년대부터 울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근로자들이라면 이들은 이미 2세와 3세까지 둔 새로운 울산토박이라는 이야기부터 토박이나 객지라는 용어를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얼굴이 붉어졌다. 무심결에 토박이나 객지라는 단어를 신문용어로 사용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랬다. 울산은 이미 객지라는 말이 필요 없는 새로운 울산으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이다. 

 읍 단위의 작은 어촌에서 반세기만에 소득 1위의 거대광역시로 변모한 울산은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혹은 생계를 위해, 혹은 대망을 안고 울산을 찾은 젊은이들은 1세대가 이미 할아버지가 됐고 2세대도 어엿한 중년의 아버지로 자리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울산이 태어난 곳이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미래를 설계하는 자신의 뿌리가 됐다. 결국 1세대는 대부분 타지에서 모여들었지만 반세기 만에 울산은 시민 대부분의 고향이 된 셈이다. 그들의 뿌리가 바로 울산이 됐고 그들이 외지로 나가 울산인으로 이름을 높이는 것은 물론, 오늘의 울산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처럼 세월따라 변해버린 토박이 개념과는 달리 왜 여전히 울산이라는 도시에서는 토박이니, 객지니 하는 말들이 뿌리없이 떠다니고 있다는데 있다. 여기에 대한 해답도 그 모임에서 나왔다. 역사학을 전공한 한 인사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울산이 외형적인 급성장을 이루다보니 미처 도시가 가진 정체성을 제대로 살려내는 데는 무관심했다는 진단이었다. 도시라는 것이 인구가 늘고 경제규모가 커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결국 도시는 구성원의 내공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로 자리하는 것이기에 모든 도시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달리한다는 부연설명도 있었다.   

 도시의 성장과 발달은 산업의 성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흔히 도시국가로 세상에 명함을 내민 그리스 로마인들은 서남아시아의 정신적 문화유산과 기술을 전수받기 전까지 야만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야만적 기질을 가진 그들의 공동체는 짝짓기와 먹을거리 찾기에 급급해 종족을 늘이고 부는 축적했지만 문화를 만나지 못했기에 무질서와 혼란이 판을 쳤다. 그들이 만난 도시는 웅장한 건축의 공공시설이었고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야만적 행위가 계속될 수 없었다.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도덕적 공공질서였고 그 공공질서의 기반이 문화의 힘이었다. 도시의 성장이 문화적 파워와 연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문화적 기반이 부족한 도시는 천박하다. 도시의 구성원들이 천박해서가 아니라 도시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이 문화적 소양이 부족하기에 그렇다. 파리가 유명한 것은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강해서가 아니다. 수백년 이어온 선조들의 문화가 혈관처럼 얽혀 도시의 틀을 잡고 그 정신이 혈맥처럼 흘러 세느강의 강심을 펄떡이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온갖 인종이 모여든 뉴욕이 세계의 도시가 된 이유는 객것들이라는 천박한 배척이 아니라 다양성의 조화와 융합이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대체로 세계인이 모여드는 도시는 개방성과 다양성이 씨줄과 날줄로 얽힌 곳이다. 그 가로 세로의 얽힘이 빚어내는 오만가지 문양이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그 일원이 되기를 희망하게 한다.

 부산이 그렇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은 생선 비린내와 신발 밑창의 고무틀에서 진동하는 야릇한 고무냄새가 후각을 유린하는 왁자하고 번잡하기만 한 그저그런 도시였다. 하지만 끼 있는 젊은 예술가와 문화적 소양을 갖춘 리더가 소줏잔을 마주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부산하면 누구나 '영화의 바다'를 떠올린다. 세계 7대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쟁이의 꿈과 부산시, 그리고 시민들의 사랑이 어우러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고개 숙인 날들도 많았다. 초기에는 예산 확보하기 위해 여러 지자체를 찾아다니며 구걸도 했고 당시 집행위원들이 카드깡, 대출까지 했다는 일화도 있지만 그들의 숨은 노력이 오늘의 영광을 만들었다.

 울산은 가능성의 도시다. 천년전 국제무역항이었던 울산이 눈앞의 50년 역사로 평가되는 일은 불행하다. 50년 역사가 비록 대한민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산업수도를 이끈 영광의 시간이었다 해도 그것이 울산의 전부는 아니다. 이제 울산은 대부분의 시민이 토박이가 된 튼튼한 내공을 가진 도시다. 반구대암각화로부터 현대자동차와 중공업에 이르는 7천년 세월이 강을 따라 흐르는 도시가 울산이다. 그 강에 어떤 문화의 꽃을 피울지를 놓고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야 진정한 세계도시 울산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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