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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신 시인

서산자락으로 잡힐 듯 기우는 해가
얄밉기만 하다는 누이 등짝으로
석양이 사알짝 꽃물을 들이는가 싶더니
급기야 온 마을을 덮쳐오면 누이는 설자리를 잃을까봐
길모퉁이 깨금발을 세우다 지치면
신발 끄는 소리 잘박잘박 남겨놓고 있었지.
그보다 어머니 돌아오는 길목
황톳물 얄팍하게 삐져나오는 어머니 발소리가 잘도 들리는
누이보다 더 허기진 배 감춘 어머니
돌아오던 그 길목의 마을은 날마다 붉은 석양이 덮쳐왔지.
그리고 바알갛게 어머니 돌아올 시간의 그 노을이
쟁기날을 붉게 물들여 놓고 땅위의 질펀한 발목들을 삼키고
들일 나간 사람들 돌아올 길목을 터주었지.
그러면 그들은 흙내음 툴툴 털어 내면서
온몸 가득 노을을 걸치고 터벅터벅 돌아오고 있었지.

■ 시작노트
밤새 마을을 덮친 눈 때문에 토요일 아침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휴대폰 울림에 메시지에 이정도 쌓인 폭에 이렇게 일정들이 엉망이 되다니…. 이시간쯤 몇배나 더 쌓인 눈 때문에 고통스러울 산간지방을 떠올려봤다. 새하얀 눈위에 발자욱 한번 남겨봤다. 하얀눈 위에선 발자욱도 곱다. 해거름 아래에선 그림자도 표시할 수 없었는데 보이는 것들이 모습을 감추어도 훈훈함이 다시 살아와 가슴을 채워 주었다. 그것은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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