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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에 무심한 남자는 없다. 오죽하면 손무가 병법의 하나로 미인계를 거론할 정도였으니 미인을 이용한 계략은 쉽게 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바로 그 미인계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시작된 '한국판 색계'는 파문이 갈수록 커져 MB의 위인설관까지 거론되는 양상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중국 여성 덩신밍이 정말 색계의 마력을 가진 미인이었는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현재까지 거론된 '덩의 남자'들은 적어도 그녀에게 매혹됐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파견된 한국 영사들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국가기밀 유출로 이어진 이 사건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외교가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미인계의 역사는 오래됐다. 후한 말엽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동탁에게, 사도 왕윤(王允)은 가기(歌妓) 초선을 보내어 여포(呂布)와 동탁을 이간질했다. 초선의 잠자리 솜씨에 매혹된 여포는 자신이 섬기던 동탁의 사지를 갈랐다. 유명한 '연환지계(連環之計)' 이야기다. 진(秦)나라 목공(穆公) 때의 일화도 있다. 이민족인 융(戎)이 강대해지자, 위협을 느낀 목공은 융 왕실에 아름다운 무희(舞姬) 여럿과 함께 솜씨 좋은 요리사를 보내 융왕을 주색잡기에 빠뜨렸다. 미인에 취한 융왕은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춤과 좋은 음식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들어갔고 때를 기다리던 진은 손쉽게 융을 제압했다.


 오래된 중국 이야기만이 아니다. 근대로부터 최근까지 미인계는 여전히 약발이 있다. 지난 1948년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총살형을 당한 일본판 '마타하리' 가와시마 요시코는 일본에서 드라마나 만화소재로 자주 인용된다. 우윳빛 인형 같은 미모를 가진 그녀는 청나라 황족 출신으로 여섯 살 때인 1912년 일본에 양녀로 보내진 뒤 일본 간첩으로 활동하며 만주에 일본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녀의 무기는 역시 뽀얀 몸뚱이였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미모의 러시아 스파이 안나 채프먼이 화제였다. 스물여덟 살의 이혼녀인 채프먼은 온라인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면서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미모로 뉴욕의 고급 클럽과 레스토랑을 드나들며 사교계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미국 정부 관리들과 사업가들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러시아에 넘기다 체포돼 지난해 러시아로 추방됐다.


 이번 상하이 발 영사 추문과 함께 회자되는 이야기 가운데 일본 영사관 전신관이던 인사의 자살사건이 있다. 지난 2004년 상하이 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외교 전문 송·발신 업무를 맡고 있던 이 인사는 가라오케 주점을 드나들면서 중국 여종업원을 사귀게 됐다. 미모의 종업원과 깊은 관계에 빠진 그를 중국 공안이 영사관 기밀과 불륜을 맞바꾸자고 제안했다. 중국 공안의 협박에 시달린 그는 "국가를 팔 수는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일부 언론은 이 사건을 빗대 이번 한국 영사들의 사건과 함께 "일본은 목을 맸고 한국은 멱살을 잡았다"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공직의 도덕성을 저울질하기도 했다.
 미인계 이야기를 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여인이 바로 마타하리다. 국내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주말 밤마다 전 국민을 TV 앞으로 모이게 할 만큼 흡인력을 가졌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여옥은 마타하리처럼 굴곡의 삶을 살았다. 전설적인 마타하리의 행적에 대해 여전히 스파이다, 아니다의 공방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미인계를 통해 연합군의 정보를 얻으려는 독일에 이용당한 것은 사실이다.


 파리의 사교무대의 매혹적인 댄서가 독일군 스파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자신의 손짓과 몸짓 하나에 비틀거리는 권력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만족감이다. 몸뚱이 하나만 가진 자신에게 매달리는 군부의 실세들의 흐트러진 하체가 있는 한 그녀에게 군사기밀이나 국가기밀 서류는 화장지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녀의 몸이 아니라 그녀에게 휘둘린 시스템이다.
 이번 상하이발 외교추문의 중심에 있는 덩신밍도 한국 외교가의 시스템을 교란했다.
 대체로 추문이 추문이상도 이하도 아니려면 일대일의 관계일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일대 다수의 관계가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그 속성을 제대로 간파했던 모양이다. 총영사와 부총영사, 그리고 전문 영사들까지 그녀의 그물망에 허우적이게 했던 것이 그녀의 미모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 그물망과 그를 이용한 그녀의 전횡이 상하이 외교를 진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논공행상으로 외교문외한인 인사를 총영사로 임명한 MB정부의 실책은 두고두고 우리 외교의 치부가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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