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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과학기술대학교 내 노천극장 인근에 위치한 200~300년생 울산의 최고령 왕버들. 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울산 5대 왕버들중 하나뿐인 200~300년생
껍질 깊게 갈라지며 이리 굽고 저리 휘는
특유의 꿈틀거림에 폭발적 에너지 느껴져


지난 겨울은 정말 혹독했다.
그래도 오는 봄을 어찌 막으랴.
볕 바른 곳에는 복수초가
벌써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매달고 있던
버드나무에도
연두색 싹이 솟아나고 있다.
봄이 조금씩 깊어가면
뿌리에서부터 몸통을 거쳐
줄기와 가지에까지
살금살금 물이 오르고
새잎이 하나씩 둘씩 돋아나리라.

   흔히 버드나무라고 하면 가지가 땅으로 길게 늘어지는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버드나무 종류에는 버들피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갯버들과 가지가 배배 꼬이며 솟아나는 용버들, 눈갯버들, 들버들, 키버들, 콩버들, 떡버들, 호랑버들, 섬버들, 털왕버들 등 40여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왕버들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르며 사방으로 넓게 퍼져 그늘을 만들기 때문에 선조들은 방풍용이나 풍치목 또는 정자나무로 많이 심었다.

 버드나무 종류의 나무들이 전국에 걸쳐 잘 자라는 반면에 왕버들은 주로 경기도 이남의 남부지방에서 자란다.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진만큼 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크고 아름다운 것이 많다. 왕의 기품을 갖춘 우리 나라의 대표 버드나무인 것이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 관리의 천연기념물 제193호 왕버들을 비롯해 곳곳에 왕버들 고목이 적잖다.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에는 200~300년생 왕버들 노거수 80여 그루가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연못에서도 잘 자란다. 경북 청송의 주산지(注山池)에는 조선 숙종 46년(1720년)에 못을 만들면서 심은 고목 왕버들 30여 그루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승경을 이루고 있다.

 왕버들은 독특한 이름을 갖고도 있다. 도깨비버들, 즉 귀류(鬼柳)라는 별칭이다. 대부분의 버드나무가 그렇듯이 물을 좋아해 늘 습하게 자라다 보니까 줄기가 썩어 커다란 구멍이 난다. 줄기가 굵어 구멍 또한 크다. 날벌레가 많은 여름이면 그 구멍에 들어가 죽은 날벌레에서 나오는 인(燐)이란 성분에서 빛이 나온다. 비가 내리거나 습한 날씨에 더욱 반짝이는 그 빛이 마치 도깨비가 내는 빛과 같다고 하여 옛 사람들은 도깨비불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왕버들을 '도깨비버들'이라고 했다.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갈잎 큰키나무로, 원산지는 우리 나라다. 버드나무류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게 자란다는 뜻에서 왕버들이라 한다. 잎이 새로 나올 때는 붉은 빛을 띄므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대부분의 버드나무가 속성수로 수명이 짧은데 비해 왕버들은 오래 살고 모양이 좋고, 특히 진분홍색의 촛불같은 새순이 올라올 때는 아름다워 도심의 공원수나 가로수로도 즐겨 심는다.

 

 

   
▲ 껍질이 깊게 갈라지며 힘차게 솟아오른 왕버들나무 밑둥치.

 


   키 10-20m, 지름 1m로 자라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깊게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거나 긴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뒷면은 흰색이 돌며 커다란 귀 모양의 턱잎이 있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잎과 함께 4월에 피며, 수꽃은 수술과 꿀샘이 6개씩이고 암꽃은 1개씩의 암술과 꿀샘이 있다. 열매는 달걀형으로 5월에 익고, 가벼운 종자는 솜털에 쌓여 날아 다닌다.

 나무에게 200-300년의 세월은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보다 오래 산 나무가 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1000년을 넘게 산 나무까지 적잖은 때문이다. 하지만 왕버들이라고 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른 나무와 달리 습한 곳을 좋아함으로 몸통이 섞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물론 줄기가 썩어 구멍이 생겼다고 하여 곧 바로 생명을 잃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줄기가 썩은 나무가 다른 나무만큼 오래 살기 어려운 건 분명한 이치다. 우리가 고목 왕버들을 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북 성주군이 펴고 있는 성밖숲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 제403호 300-500년생 왕버들숲의 후계목을 만드는 사업이다. 왕버들숲이 노령화로 고사목이 잇따르자 국내 최초로 후계목을 키워 항구적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지도 아래 왕버들 56그루에 대한 시료를 채취하여 유전자감식을 거쳐 우량목을 만들어 후계목으로 키우게 된다. 고목 왕버들숲의 식물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식한 조치다. 울산의 고목 왕버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과는 도저히 비교될 수 없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울산에는 100년생 이상의 고목 왕버들이 다섯 그루가 있다. 네 그루는 150-200년생이다.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 남명마을에 한 그루와 두동면 천전리 대현마을에 세 그루가 있다. 울산 최고(最古)의 왕버들은 200-300년생인데, 2년 전 2009년 3월 초에 문을 연 울산과학기술대학교 구내에 있다. 왕버들이 있던 곳은 지금은 옛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당시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까막골마을에 있었다. 흔적이라야 학술정보관 앞에 있는 새단장한 옛 가막골마을의 못과 뒤편 서북쪽에 있는 절과 뒷산 중턱에 있는 조선 임란공신 정무공 최진립 장군 부자의 묘소 등이다.

 왕버들을 만나려면 울산과학기술대학교 본부 건물(201호)의 왼쪽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자연과학관(102호)과 제1공학관(104호), 제2공학관(106호)의 앞에 나있는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지고, 근처에 작은 다리와 노천극장을 만난다. 그 다리 아래 서쪽 공터의 초록색 철제 울타리 안에 왕버들이 자리잡고 있다. 왕버들 곁 남쪽에는 뒤편의 산에서 흘러 내려와 학술정보관 앞 호수로 들어가는 물길이 지난다. 물길 위 남쪽은 대학 구내의 길이다. 길에서는 울주군이 까막골마을이 있을 때에 세운 왕버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의 내용을 볼 수가 없다. 왕버들쪽인 북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건립하면서 새로 세운 안내판 역시 북쪽을 향하고 있어 길에서는 그 내용을 볼 수가 없다.

   길에서 내려가 물길을 건너 울주군이 세운 안내판을 봤다. <고유번호; 7-5-2-1. (보호수)지정일자; 1982년 11월 10일. 품격; 면나무. 수종; 왕버들. 수령; 4령 200년. 수고; 9m. 나무둘레; 4.1m. 관리자; 반연마을 주민. 소재지;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346번지>로 돼 있다. 내용이 부실하다. 고유번호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또 수령에 4령은 무엇인지, 보호수라고 하면 될 것을 면나무로 해놓은 것과 마을이 통째로 없어지고 대학이 들어섰는데도 관리자와 소재지를 옛 그대로 두었다. 울주군의 노거수 행정의 허술함을 엿보게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미래세움주식회사의 명의로 된 안내판에는 <이 수목은 울주군청에서 지정한 보호수 '왕버들보호수'로서 관계자 외 출입 및 훼손행위를 금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 이리로 굽어지고 저리로 휘어지는 왕버들 특유의 꿈틀거림으로 거침없는 선을 그리며 뻗은 줄기.

 


   지난 2003년 11월 울산생명의숲이 만든 '울산의 노거수'책에는 이 왕버들에 대해 <추정수령 200-300년. 수고(키); 4.8m. 수관폭 11.6m. 가슴높이 둘레; 4.22m. 뿌리부분 둘레; 5.9m. 용도; 당산나무>로 기록하고 있다. 울주군이 밝힌 안내판의 내용과는 나이와 수고(키)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왕버들은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줄기의 예술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밑둥치가 빚어내는 기묘한 꿈틀거림은 다른 버드나무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또 껍질이 깊게 갈라지는 왕버들의 특징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란 여름보다는 잎을 모두 떨구고 있는 겨울철이나 이맘 때가 몸통과 줄기의 거침 없는 힘찬 선(線)을 볼 수가 있어 더 아름답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왕버들은 10도 가량 기운 몸통이 1.7m 높이에서 동쪽으로 큰 줄기를 내뻗쳤다. 그 줄기는 1m 가량 직립한 뒤에 남북으로 두 개의 가지로 나뉜 뒤에 다시 많은 작은 가지를 내놓았다. 몸통은 동향한 줄기로부터 다시 30Cm 쯤 치솟은 뒤에 서향과 남향한 두 개의 큰 줄기를 내질렀다. 이리로 굽어지고 저리로 휘어지는 왕버들 특유의 모습을 보이며 솟아올랐다. 서향한 줄기는 북쪽으로 한 차례 휜 뒤, 서쪽으로 꺾인 뒤에 치솟았다. 치솟은 지점의 가지는 잘려졌고, 그곳에 철제 받침대가 받쳐져 있다. 남향한 줄기 아래에는 나무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역'V'자형 철제 받침대가 세워져 있다. 또 줄기가 찢어지는 것을 막느라 동향한 줄기와 철사줄로 묶어놓았다.

 왕버들은 고난의 세월을 견뎌오느라 기력이 쇠진해진 듯 몸통 곳곳이 썩어 구멍이 나있다. 또 몸통 아래에서부터 큰 줄기가 세 가닥으로 갈라지는 곳까지에 걸쳐 마치 구렁이가 온몸을 휘감고 있는 듯한 외과수술한 흔적이 크게 남아 있다. 또 가지가 마르거나 부러지려는 곳도 눈에 띄고 있다.
 세계 최고(最高)의 인재산실을 지향하는 울산과학기술대학교 구내에 나라 안에서도 손꼽힐만한 왕버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경사스런 일이자, 널리 알릴만한 일이 아닐까? 역사가 짧은 신생 대학으로서는 식물문화재로서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노거수를 결코 소홀하게 취급할 일이 아니다. 울주군과 협의해 노거수 왕버들의 보호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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