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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사회에는 '카나페 승진'이라는 속어가 있다. 우리에게 영화로 알려진 '소파승진'의 원형쯤으로 보면 된다. 시골뜨기 여자가 파리의 우체국에 근무하며 상사의 성적 유혹에 시달리는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어느새 촌티를 벗고 출세를 위해 소파를 다양하게 이용한다. 학력위조로 온 나라를 '위조공화국'으로 몰고 간 신정아 사건이 이제 노정권의 최대 '섹스스캔들'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권력 뒤엔 여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큐레이터인 신정아 스캔들에 걸려든 노정권 핵심인물들은 지금쯤 자신의 e메일과 휴대폰 내역을 지우느라 빠쁠 것 같아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여성이 특별한 배경 없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길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면 목숨을 걸지만 여자는 굳이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조선시대 정난정이 그랬고 희빈 장씨가 그랬다. 조선시대 여인 가운데 '카나페 승진'의 명수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인물은 정난정이다. 관비출신 어미와 양반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정난정은 미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기생이 되어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 윤형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윤씨의 첩이 된  난정은 본처를 죽이고 마침내 신분세탁에 성공했다.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해 도첩제를 부활시킨 난정의 기획력은 왕실의 금기까지 흔들 정도로 가히 놀라운 재주였다. 관비출신으로 외명부 최고지위인 '정경부인'에 오른 난정의 뒤에도 어김없이 권력이 있었고 스캔들이 사방에 매몰되어 있었다.


 사극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희빈 장씨는 난정보다 한수 위의 여성이었다. 궁녀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남자가 필요했다. 빼어난 외모라는 무기는 있었지만 천한 신분은 그녀의 속박이었고 정권탈환을 노리던 남인세력에게 장씨는 '미인계'의 훌륭한 미끼였다. 남인세력의 치밀한 기획으로 궁궐의 담을 넘은 장씨에게 숙종의 '간택'은 정해진 수순에 불과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장씨 스스로의 몫이었다. 숙원을 거쳐 내명부 정1품 '빈'에 올랐다가 급기야 인현왕후를 내몰고 중궁전의 안주인이 된 장씨의 '재주'는 뛰어난 미모와 화술뿐만 아니라 적재적소에 사람을 심어놓고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밤 문화를 기획한 궁중의 '큐레이터'라 할만 했다.


 미술관 큐레이터인 신정아씨의 e메일 아이디는 '신다르크'라고 한다. 100년 전쟁에서 조국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와 자신을 연결한 신씨의 야심은 놀라울 게 없지만  아무래도 '신다르크'보다는 '신카나페'가 더 어울릴 만하다. 다국적 디자이너들을 모아 기획전을 열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신씨의 기획력이 '카나페 승진'을 목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면 그에 놀아난 인사들은 신씨가 뉴욕으로 도피할 때부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 법하다. '깜'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언론을 성토하던 대통령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사실 확인은 뒤로한 채 '깜'도 안 되고 '소설 같다'며 대통령부터 대변인까지 '변실장 구하기'에 혈안이 된 청와대의 현주소에 있다. 툭하면 언론에 화살을 돌리고 이 시대 지식인들의 편가르기에 열중하는 청와대를 보면서 난정이나 옥정에게 휘둘린 조선조 궁중정치의 난맥상이 '클로즈 업'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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