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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 아파트 CCTV에 잡힌 용의자.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평소엔 집-직장에서 성실하고 원만한 인간관계 50대男
불·화재진화장면 보며 스트레스 해소 일종의 정신장애
경찰, 마골산 산불 발생 후 인근지역 CCTV 정밀 분석
휴대전화 통화 내역만 2만여건 분석 등 수 십여명 압축
방화도구 등 증거 수집 후 집중 추궁 결국 자백 받아내


서부경남이 고향인 김모씨(당시 36세)는 울산에 온 이후 자주 봉대산 언덕에 올랐다.
 두 아들과 아내를 책임지는 가장의 어깨가 무거웠지만 새롭게 시작한 울산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가고 싶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생산현장에서의 작업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무엇보다 힘들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봉대산에 올랐다. 가슴이 확 트였지만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을 때 가지고 있던 휴대용 라이트로 마른 풀에 불을 붙였다.

 불이 번지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불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온종일 짓눌린 직장에서의 억압감이나 목을 조여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너무나 우습게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김씨는 초기에는 주로 라이터만 사용해 불을 냈다. 그러다 점차 두루마리 화장지를 새끼처럼 꼬아 만들어 불을 지르거나, 너트에 성냥과 휴지를 묶은 뒤 불을 붙여 멀리 던지는 등 방화 수법이 다양해졌다.
 16년이나 계속된 그의 방화는 결국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막을 내렸다. 김씨의 회사 동료들은 그가 93건의 산불 방화를 자백했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1985년 울산지역 모 대기업에 고졸사원으로 입사해 26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했고 대인관계도 원만했다고 동료들은 입을 모았다.
 
#축구장 114개 면적 태워

울산동부경찰서는 지난 25일 동구 봉대산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산불을 낸 혐의(방화)로 김모(52)씨를 붙잡아 조사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995년부터 올해 3월까지 동구 일대 봉대산과 마골산에서 모두 93차례의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으며, 81.9㏊의 산림(축구장 114개 가량)소실, 피해액이 18억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산불을 낸 이유는 직장 내 스트레스나 금전문제에 따른 가정불화로 밝혀졌다.
 경찰관계자는 "김씨는 불을 내면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하다는 진술을 했다"면서 "특히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현장 주변에서 지켜보거나 산불진압 현장을 전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김씨의 상태에 대해 정신과전문의는 일종의 정신장애라고 설명했다.
 정신과전문의 문석호 박사는 "김씨의 정확한 상태확인이나 정신적 치료를 해봐야 하겠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충동조절장애'라고 본다"며 "방화같은 행위에 대해 쾌감을 느끼는 것은 단순불안이나 우울증보다는 다소 완치하기 어려운 일종의 정신장애라고 볼수 있다"고 말했다.
 
#CCTV가 검거에 결정적 역할

'봉대산 불다람쥐'를 잡는 데 CC(폐쇄회로)TV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울산시는 봉대산 일대의 연쇄 산불로 산림 소실은 물론 사회불안마저 고조되자, 지난 2009년 11월 기존의 방화범 신고 포상금 1억원을 3억원으로 올리면서까지 방화범 검거에 안간힘을 썼다.
 특히 관할 행정기관인 동구청은 산불을 지르고 종적을 감추는 방화범 검거를 위해 산불예방캠페인은 물론, 봉대산 등에 고화질의 줌 카메라와 열화상 카메라, 보안용 폐쇄회로 TV(CCTV), 파노라마 카메라 등으로 구성된 산불무인감시시스템을 설치했다.

 경찰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은 CCTV를 통해서였다.
 지난 13일 오후 7시께 봉대산과 맞닿은 마골산에서 산불이 났을 때 인근 아파트에 설치된 CCTV에 김씨가 찍힌 것이었다. 이 CCTV 영상에는 김씨가 인근 아파트단지를 통해 마골산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었으며, 약 2분후에 산불이 발생하는 광경을 볼수 있었다.

 경찰은 이 영상을 토대로 김씨의 나이를 40∼50대로 추정하고, 인근 10여개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이터 입구와 내부에 부착된 모든 CCTV를 샅샅이 조사했다. 산불이 난 이후 20분 이내에 각 아파트로 들어간 사람 가운데 해당 나이인 18명을 추려냈고, 여기에 김씨가 포함돼 있었다. 또 산불이 발생한 지점을 찍은 CCTV와 김씨 아파트의 거리는 500m에 불과했던 점, 지난 1년간 산불 발생 시각 전후로 봉대산 인근 기지국을 거친 휴대전화 통화내역 2만건을 집중분석해 김씨의 이름이 포함된 점을 확인해 검거에 성공했다.

 경찰은 김씨의 집과 직장내 사물함에서 라이터, 성냥 등의 인화성물질을 발견했고, 현장에서 신속히 빠져나가기 위해 불을 붙여 멀리 던질수 있는 '방화도구'까지 증거물로 확보하자 김씨가 끝내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 관계자는 "CCTV에 찍힌 김씨의 특이점을 알아내고 이를 토대로 각 CCTV에 찍힌 김씨의 모습을 이어붙여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일부 산불 부인 모방범죄 우려도

김씨의 방화는 끝났지만 최근 염포산에서 발생한 방화에 대해서는 끝까지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모방범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5시8분께 북구 염포동 마골산과 30분 뒤 이곳에서 1.5㎞ 가량 떨어진 염포동 성내주유소 뒤 염포산에서 각각 산불이 발생했다. 경찰 수사결과 김씨는 마골산의 경우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지만, 염포산 산불은 자신의 범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북구 무룡산에서도 올해 세번이나 산불이 연이어 발생한 점을 미뤄 모방범죄자가 있지 않겠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봉대산 불다람쥐'를 신고해 검거할 경우 최대 3억원의 포상금이 걸렸지만, 경찰이 산불 연쇄 방화범을 검거하면서 현상금과 포상 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승원기자 uss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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