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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늘 일어나는 자연재해
모진 시련 이겨내고 내일 준비
끈기와 의지로 다시 일어서길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다. 1959년 8월 대보름 아침 8시경 차례를 지내려고 큰 방에 상을 차렸다. 촛대에 불을 붙이고 초헌을 올린 뒤 막  돌아서려는 순간 우르르 쾅! 쏴- 하는 굉음이 울리면서 거대한 바닷물보라가 집안을 덮쳤다. 집체보다 큰 파도는 이리떼 같은 허연 이빨을 들어낸 채 사정없이 마을로 달려들었다.

 해변가에 있던 나의 집은 항시 태풍이 오면 파도에 시달렸으므로 선친께서는 각별히 신경 쓰셔서 콘크리트와 바위로 높고 튼튼하게 담을 쌓았다. 웬만한 파도에는 꿈쩍 않을만큼 튼튼했다. 그런데 사라호 태풍이 몰고 온 해일 앞에선 무용지물로 초라한 지푸라기 담장 같았다.

 그래도 돌담이었고, 마당이 높고, 집이 채목 좋은 기와집이였기에 비, 바람, 파도(해일)에 견뎌냈다. 천재지변 앞에 천우신로로 살아남았다. 오후가 되자 태풍의 위력이 약화되면서 대밭으로, 동산에 피신했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자 마을은 초상집으로 변했다. "아이고, 우리집이 어디갔노? 인제 다 살았다. 하늘님도 무심하제"

 포구마을에는 집도, 배도, 백사장도 다 휩쓸려 가 버리고 온전히 남은 게 별로 없었다. 동남해안을 강타한 사라호 태풍은 인명피해는 물론 재산피해도 상상을 초월해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다. 무룡산도 무너져 내리고, 태화강도 범람했고, 도로도 끊기고, 농경지는 매몰 침수되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었다. 한마디로 '절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수산업을 하던 선친의 사업이 전패되고 대농가의 농토도 다 잃었으니 대학을 진학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의 찬란하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진학의 꿈도 사라졌다. 그 후 갯물 가까이 살던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기도 하고 높은 지대로 새집을 짓고 이사해갔다. 그러나 잃어버린 삶의 터전과 재산과 죽음의 상처 입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때의 사라호 태풍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11일 아침 일본 열도가 흔들리는 대지진이 바다 밑에서 일어나고 그 여파로 해일이 생겨나 일파만파 거대한 물기둥은 삽시간에 해안도시를 덮쳤다. 재산피해는 둘째이고 인명피해가 사상자 2만명에 이르니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은 거대한 힘을 가졌다. 누가 이 거대한 자연과 맞설 것인가?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한갓 미물 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지진은 지구상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이다. 역사적으로 1755년 11월 1일에 일어난 포르투칼 리스본 대지진은 한 도시를 바다 속에 수장시킨 대 참극이었다.  이후 다음을 대비한 지진학이 생겨나고 대비책을 강구해 나갔다. 모진 겨울을 이겨낸 땅 속의 여린 복수초는 두껍게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돋는다.

 끈기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일본인들이여, 좌절하지 말고 일어서라. 한국인들도 6·25 폐허에서 동남해를 휩쓴 사라호 태풍과 해일에도 살아남아 다시 재건의 삶을 꾸려 행복을 찾았다. 이웃 일본인들이여, 우리함께 다시 일어서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친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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