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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집에선 새해가 되면 식구들이 돼지 저금통을 하나씩 장만하는 게 연례행사라고 한다. 새해 첫날부터 각자 그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기 시작해선 그 해 마지막 날에 개봉하는데, 그렇게 모아진 동전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가족끼리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특별히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한다는 것이다.
 동전 하나를 놓고 보면 하찮은 것 같지만 그것들이 모이고 모이면 꽤나 요긴한 자금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모아진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작은 것의 힘'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냇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고,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도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현실에서 피부로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푼 두 푼 모아서 저금통을 꽉 채운 동전들이야말로 그 진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옛날 형편이 어려울 때 우리 어머니들은 밥을 할 때마다 정량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내서 항아리에 따로 담았다. 그렇게 한 숟가락씩 모아진 쌀이 나중엔 식구들 생일 떡이 되고 명절이 되면 설빔이 되기도 했다. 절약하는 습관이 아름다운 건 이렇게 티 안 나게 조금씩 모은 것으로 큰 일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영어단어 천 개 이상을 외우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아마도 이런 얘길 들으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는 데까지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실제로 어떤 학생은 하루 3천개 이상의 단어를 외웠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동전 한 닢이 모이고 모이면 황금돼지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


 단돈 100원의 가치를 하찮게 보는 사람에겐 만원의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 마트에 갔다가 어떤 남학생이 100원짜리 동전을 떨어뜨리는 걸 보고 주워준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자기가 돈을 흘린 줄도 모르고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는데 내가 '학생!'하고 부르자 몹시 성가시다는 듯 뒤를 돌아보고는 한 마디 툭 내뱉는 것이었다.
 "그냥 가지세요."
 내 딴엔 혹시나 싶어서 챙겨주려고 했던 것인데 아마도 그 학생은 동전 떨어지는 소릴 듣고도 귀찮아서 줍질 않았던 모양이다. 순간 전에 동전이 없어서 곤욕을 치뤘다던 한 친구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 날은 마을버스를 타고 급히 갈 데가 있었는데 현관문을 나서다 그만 지갑을 떨어뜨린 거야. 와중에 동전 몇 개가 떨어졌지만 마음이 급해서 일단 집을 나섰는데 그런 황당한 일을 겪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요즘은 교통카드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현금이나 토큰을 주로 쓰던 때였다. 친구는 마침 토큰이 없어서 갈 땐 현금으로 버스비를 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그런데 막상 차비를 내려니 수중에 잔돈이 부족하더란 것이다. 어쩌다보니 지갑엔 그 흔한 천원짜리 한 장 없었다. 할 수 없이 만원짜리를 내밀었더니 버스 기사 아저씨 하는 말이 기가 막히더란다.
 "거스름돈이 없으니 손님이 탈 때마다 지켜 서 있다가 받을 만큼 챙겨 가지세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릴까 생각했지만 이미 만원짜리 지폐는 요금통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버스비라고 해봐야 고작 5백원인데 노선도 짧은 마을버스에서 어느 세월에 그 많은 거스름돈을 다 챙긴단 말인가. 결국 그 친구는 거스름돈의 3분의 1도 못 건진 채 내리고 말았다.
 "돈도 아깝지만 그 좁은 버스 입구에 서서 손 내밀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니까? 그때 집에서 흘린 동전만 주워가지고 나갔어도 그런 봉변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친구는 백원짜리 동전 한 개가 그렇게 요긴한 줄 몰랐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잔돈 아까운 줄 모르다 큰 돈 잃게 되는 수가 있다. 동전을 흘리고도 줍지 않은 그 학생도 언젠가는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당장이라도 동전을 모으기 시작하자. 그렇게 1년을 모아도 좋고 5년이나 10년쯤 모을 수 있다면 더 좋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언젠가는 몫돈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 한 푼 두 푼 모은 돈이 진가를 발휘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 뿌듯한 일인가. 황금돼지는 아무 노력도 없이 그냥 손에 쥐어지는 게 아니다. 10억이란 큰돈도 결국은 10원짜리 동전 한 닢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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