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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는 끔찍했다. 일본 원전의 방사능 누출에 동남권신공항까지 뒤숭숭한 뉴스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경제는 바닥을 기고 서민들은 기름값부터 반찬값까지 어디 하나 만만한 구석이 없다. 사과하고 반성해야할 쪽이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일본 정부도 우리정부도 하나같이 철판이다. 지역발전위원장이라는 인사가 동남권신공항 문제를 두고 '억지'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엄청난 방사능 오염물질을 바다에 흘리면서 일본정부는 '문제없다'고 한다. 억지나 문제없다는 두 가지 단어가 한국과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길 바라지만 양쪽에서 터져 나오는 또 다른 목소리들은 사과나 반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두가지 사안에 대한 언론의 보도행태도 문제다. 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언론은 하나같이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을 찬양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일명 '메이와쿠 문화'를 일본의 전통으로 소개하며 다양한 사례부터 과거의 예까지 언급했다. 얼마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문제가 되자 중계방송과 심층보도로 원전문제를 우리 사회의 핫이슈로 올려놓았다. 그 때도 체르노빌 사태와의 비교분석에 우리에게 미칠 영향 등을 입체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언제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과연 그럴까. 일본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배려의 나라라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은 남에게 폐를 끼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다. 자신을 위해 주인의 목을 따고 배를 가르는 것은 물론, 배신과 음모, 모략과 학대를 서슴지 않는 민족이 일본이다.
 생수를 사기 위해 줄을 늘어선 모습을 화면으로 보여주고 '메이와쿠 문화'를 외치는 언론은 냄비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왜구들의 노략질과 조일전쟁의 참상, 일제강점기의 만행 등 모든 과거사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결과물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친 김에 역사 이야기를 해야겠다. 독도에 매몰돼 간과했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내용이 쏟아지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몇몇 교과서에 기술됐던 종군위안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한제국의 병합을 조선반도의 근대화 추진으로 미화했다. 특히 한일병합의 계기를 안중근 장군이 이토를 저격한 거사에 근거를 두고, 안 장군의 거사가 마치 병합의 원인인 것처럼 일본의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일본의 과거사에서 한반도는 언제나 자신들이 지배했던 땅으로 기술하고 이를 근거로 한반도에서 건네받은 문명의 산물을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양 거짓 교육을 하고 있다.

 역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보태자면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는 '메이와쿠 문화'라는 것의 뿌리를 들춰보자. 기모노의 화려한 문양에 일본 하류문화가 분칠하고 있듯 메이와쿠의 뿌리도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이 본격적인 통일국가를 이룬 것은 한세기에 걸친 살벌하고 참혹한 내전의 결과다. 흔히 센고쿠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일본 열도의 민초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그 참혹한 한세기의 삶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바로 메이와쿠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칼 든 자의 말을 들어야 했고 항명이나 배신, 불복종은 바로 할복과 따돌림으로 이어졌다. 군웅할거에 종지부를 찍은 오다 노부가나 이후 노부가나 심복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가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르는 막부의 질서가 그랬다.

 유독 거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일본인들의 습성도 바로 스스로를 지키려는 삐뚤어진 자만과 상대를 얕보면 한없이 멸시하는 사무라이 문화가 낳은 산물이다. 자기네들끼리 천황이라 부르는 일왕의 이야기도 그렇다. 일왕 히로히토가 1946년 1월 신격(神格)을 부인하고 인간임을 선언했지만 아직도 일본인들 상당수는 일왕을 막연한 신적 존재로 생각하려고 신화와의 연결고리에 목숨을 걸고 있다. 우리네 아버지 세대에는 자신들만의 신격화가 모자라 천황의 시조는 하늘에서 강림했다고 가르쳤고 이에 대한 비판은 곧 삶을 포기하는 일로 여겨졌다.

 그런 문화를 깔고 앉은 민족이다 보니 역사왜곡은 자연스럽고 방사능 누출이나 오염수 유출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상대가 한국이라면 무시해도 좋다는 태도다.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 주장하는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의 지도자들, 오늘의 일본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의 유전인자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메이와쿠에 열광하고 배워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우리가 일본과 같은 대재앙을 맞았다면 아비규환 생지옥일 거라고 너무나 쉽게 단정한다. 자기를 멸시하게 만든 일제강점기의 왜놈식 교육이 약발을 받고 있는 듯하다. 조일전쟁 때의 의병이나 한일강제병합 때의 자립자강 운동, 천재지변 때마다 함께한 국민들의 성금과 2002년 보여준 질서와 열광의 하모니는 다 잊어버리고 말이다. 아니 잊는 것에 멈추지 않고 일본돕기에 열을 올린다. 왜 우리는 우리를 믿지 않고 남의 것만 부러워하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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