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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우리는 '너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다.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지나친 것을 의미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는 네가 너무 좋아"라고 하면 좀 이상해진다. 대개 '너무'는 부정적인 문맥에 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겨서 너무 좋아"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말이다. 그냥 "이겨서 좋아"하던지 좋은 것을 강조하고 싶으면 "이겨서 정말 좋아" "이겨서 아주 좋아"하면 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새로운 은어나 비속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 폐해가 극심하여 나라말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어린아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내용은 별로 없고 욕설이 태반이다. 가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참으로 걱정스러울 뿐이다. 언어는 인간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또한 언어는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간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는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한 개인에게 있어서는 인격, 집단에 있어서는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근간인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가지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언어를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바람직하게 이용하고 있을까?

요즘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고등학생들의 대화는 알아듣기가 힘든 현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 중에서는 비속어나 은어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들만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알기 위하여 '은어사전'이 생기고 PC 통신상에 은어에 관한 전문 사이트가 생기기도 한다. 은어란 사전적 의미로는 '동아리끼리 저희들만 알도록 특정한 뜻을 숨겨 붙인 말'이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의 은어는 최근 들어 단순한 은어의 범위를 넘어 일상 용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은어가 암호화 부호화 되면서 국적불명의 속어들이 양산되어 일상용어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말 겨루기'와 같은 교양프로그램이 있어서 잊혀 가는 우리말을 알리고 배우는 기회가 되고 있고, 잘못 쓰이는 우리말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들이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은어, 비속어, 욕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지만, 심히 잘못 쓰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닌 '같다'인데, 어른 아이를 가릴 것도 없이 온통 '…같아요'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아나운서, 사회자, 외부 출연자,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개중에는 국어 선생님으로 소개되는 이들까지도 '…같아요'다.

 '같다'는 서로 다르지 않다거나 '다르다'의 반대말로 서로 딴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쓰이고,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을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추측이나 불확실한 단정의 의미로 '같다'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행하여 진 과거의 일이나 현재 행하고 있는 것까지도 '…같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청룡열차를 타고 내린 사람에게
 "기분이 어땠습니까?"
 "무서웠던 것 같아요."(무서웠습니다.)
 사과를 먹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과 맛있습니까?"
 "맛있는 것 같아요."(맛있습니다.)
 "시원합니까?" "예, 시원한 것 같아요."(시원합니다.)
 "기분이 어때요?" "좋은 것 같아요."(좋습니다.)
 "힘듭니까?" "예, 힘든 것 같아요."(힘듭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온통 '…같아요.'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린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사에 자신 없는 소리 '같아요'뿐일 수가 있는가?
 우리는 외국인들이 말하는 아주 특별한 DNA를 가진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불과 반세기만에 전쟁의 참화가 남긴 폐허에서, 먹을 것이 없어 식량 걱정하던 나라에서, 식량의 자급자족을 넘어 천문학적인 보관비용을 걱정하는 나라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던 나라에서 기적에 가까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요, 2010년도 기준 7대 수출국이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지구상에서 유일한 나라다.

   한마디로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다. 겸손은 항상 필요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말 한마디에도 당당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긍정의 힘을 일깨워 더 크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가정에서 학교에서 우리사회 모두에게 숙제라도 부여 해야겠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긍정의 힘과 용기를 갖게 하기 위하여 바른말을 가르치고 사용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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