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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세습이라는 어이없는 발상부터 툭하면 지르고 보는 파업카드까지 현대차 노조의 무한도전은 예측불허다. 예측불허가 현대차 노조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예측불허는 세종시 논란을 시작으로 신공항 백지화에서 정점을 찍었다. 말많고 탈많던 한반도대운하는 4대강 사업으로 변질돼 이제 마지막 단장에 나서고 있지만 그래도 국가미래라는 수식어는 전가의 보도처럼 따라다닌다. 선진국과 G20, 현대가 부족해 첨단시대라는 수사까지 동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혼란의 한 가운데 머물고 있다. 한마디로 법치와 원칙의 실종이 만든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지는 문제의 근원은 절차의 합리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절차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자격을 갖추면 어떤 문제든 당당해진다. 코흘리개 반장선거부터 독도의 영토주장까지 절차의 합리성은 어디든 유효하다. 유효한 가치를 가진 절차의 합리성이 무시당하는 사회는 건전하지 못하다. 건전하지 못한 사회는 하수구 냄새가 진동을 하기 마련이다. 온갖 분칠을 하고 향수를 뿌리느라 요란을 떨어도 썩은 냄새는 사회의 골목골목을 어김없이 파고든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나 우리의 고리원전을 보면 '양치기 소년'과 빼 닮았다. 언제나 축소하고 은폐하는데 익숙한 원전측은 진실을 몇 겹의 콘크리트에 덮어둔채 문제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 한다. 고리원전이야 방사능 누출이 된 것도 아니고 폭발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일본발 방사능 위기에 고장사고가 발생해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것도 원죄적 업보쯤으로 여겨야 한다. 언제나 친환경 청정에너지를 강조한채 만약의 사태에 대한 경고를 뒷주머니에 감춰온 결과라는 말이다.

 일본 원전이 그렇다. 원전을 책임진 도쿄전력이라는 곳이 뭇매를 맞는 이유는 은폐와 뒷거래로 버텨온 세월 때문이다. 이번 사고 이후 밝혀진 것이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간부와 퇴직 임원들이 조직적으로 정치헌금을 해왔다고 한다. 특히 이 회사는 이같은 정치 헌금의 대가로 낙하산 인사로 조직을 흐려왔고 위기 상황이 되자 구조조정을 들고 나와 힘없는 일반 직원부터 목줄을 치고 있다고 한다. 합리적 절차에 따른 운영을 망각한 조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지난주 울산시가 울산공항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확정 단계가 아닌 논의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 대책이 가관이다. 고속철도 개통 이후 승객 감소로 어려움을 겼고 있는 울산공항에 응급주사를 놓겠다는 발상이다. 승객모집을 잘하는 여행사에 인센티브를 주고 적자에 허덕이는 항공사에 재정지원까지 하겠다는 안이다. 시민 혈세를 맘대로 쓰는 것이 아무래도 멋쩍은지 울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포항이나 양양, 청주 등도 하고 있다는 첨부자료까지 덧붙인다. 포항이든 청주든 남이 하면 정당할 수 있는지 낯간지러운 항변 같다. 이 정도 안을 착안한 당사자들은 아마도 공항이 도시의 격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모양이다.

 시민의 혈세를 지원하는 문제는 무엇보다 절차의 합리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지원이 필요하고 이를 추진해야 한다면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 그 정당성은 다름이 아니라 절차의 합리성에서 나온다. 울산공항의 적자 문제가 울산시의 걱정거리가 될 정도의 사안이라면 시민 다수의 걱정으로 자리해야 공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시민이 많아지고 항공수요가 줄어든다면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이동수단을 선택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항공편은 이제 매력적이지 않다. 매력이 줄어든 항공편에 립스틱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는 것은 항공사가 할 일이다. 독점 노선을 쥐고 불쾌한 손님 취급을 당한 시민들은 더 이상 항공기를 쳐다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항공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발상은 승객이 더 줄면 노선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항공사의 으름장에 놀아나는 일에 불과하다. 돈이 안 되면 떠나는 게 항공사의 논리지만 중소형 항공사까지 치고 올라오는 판에 대형 항공사가 상대적으로 여전히 탑승률이 높은 울산노선을 버릴 수는 없다. 상황 판단이 이쯤되면 지원부터 들고 나올 것이 아니라 항공사에 자구책 마련부터 주문하는게 순서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고용세습 이야기나 일본 원전의 썩은 조직 이야기, 울산공항 지원책 이야기 모두가 원칙을 무시한 결과의 산물이다. 원칙을 무시하면 정당할 수 없다. 정당하지 않은 조직의 말과 행동은 '양치기 소년'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비웃음의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보편적이고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를 살피되 그 근거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인지를 따져보는 자세가 조롱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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