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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화된 피의자 인권보호 장치인 '미란다 원칙'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다. 이 원칙이 확립된 것은 1966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일어난 '어네스터 미란다'의 납치강간 사건 이후이다. 미란다는 재판을 받으면서 경찰에서의 자백을 번복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애리조나 주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미란다는 연방대법원에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권리와 수정헌법 제6조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며 상고청원서를 냈다. 연방대법원은 미란다의 상고에 대해 미란다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은 연방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진술거부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을 피의자에게 반드시 고지하도록 했고, 결국 '미란다 원칙'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됐다. 미란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애리조나 주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았지만, 그가 교도소에 복역 중일때 면회 온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범인이라고 고백했던 것이 들통 나 결국 유죄가 확정됐다.
 법조인들이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고 유병진 판사가 있다. 유 판사의 판결 일화로 유명한 것이 6.25 남북전쟁 중에 치러진 소위 부역자 재판이다. 부역자 재판이란 당시 인민군 치하에 있던 시민들을 기소하여 인민군에 대한 부역의 정도에 따라 처벌을 한다는 취지의 재판이다. 당시 유 판사는 "적 수중에 떨어진 시민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총 한 자루 없이 항거하다 죽으라고 할 수는 없다"는 판결문을 남기며 대부분의 시민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하나의 일화는 이승만 정권 때 조봉암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다. 서슬 퍼런 이승만정권의 일당독재 시절 이념과 사상을 다루는 재판에서 유 판사는 철저하게 원칙과 신념을 기준으로 권력이라는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주범을 제외하고 대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유병진은 이 일로 인해 법관 연임심사에서 탈락했다.
 신정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김정중 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가 화제의 인물이 되고 있다. 영장기각 소식이 알려진 후 언론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김 판사의 약력과 함께 '평소 원칙을 지키고 소신 있는 판결을 하는 판사'라는 주위의 인물평까지 소개되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씨가 유명인이 아니고, 이번 사건이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과연 영장이 발부될 수 있었겠느냐"며 "판단할 수 있는 기록에 없는 혐의를 두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는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란다의 사례를 보듯 피의자의 인권을 법리적 원칙으로 판결한 김 판사의 법률적 행위가 언론에 밝힌 자신의 말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법관은 오직 판결로 말 한다. 판결은 법리의 적용과 그에 따른 법적 판단만으로 행하는 존엄한 법률행위이다.
 문제는 법관이 판결로 말하지 않고 말로써 판결을 해설할 때이다. 말은 상황에 따라 오류를 범할 수 있고 뱉고 나면 다시 주워 담기 어렵다. 판결은 재판부가 몇날며칠을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말은 언제나 감정의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병진 판사가 원칙을 지킨 판사로 남는 것은 그의 말 때문이 아니라 판결문 때문이다. 신정아씨에 대한 영장기각이 톱뉴스가 되는 것도 이미 그녀가 일반인 '신정아'가 아니라는 이유이다. 이미 일반인이 아닌 신씨를 "일반인이라면~"식의 가정법을 동원해서 전 국민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김 판사의 질문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법관이 말로써 자신의 판결을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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