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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했다가 외래로 치료받는 여성 우울증환자가 있다. 외래로 치료받을  만큼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1주일에 한번씩은  방문했으면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그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환자가 버스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화장실에 가야하는 것이 불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이 2주에 한 번씩 차를 태워주어 병원에 오게 되는데 그러니까 부모님에게 의존하게 되는 문제뿐만 아니라 버스도 타고 걷기도 하게 되는 기회도 적어지는 것이다.
 결국 자율적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다. 우울증은 이런 식으로 악순환되는 점이 있다.


 환자에게 1주일에 한 번씩 오도록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2주에 한 번씩 오도록 '타협'하는 대신에 다른 연습을 해야 하는 과제(화장실 사용)와 더불어 자유에 대해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언제라도 자신이 가고 싶고 가야한다면 버스도 타고 걸어서라도 갈 수 있는 것이 자유(自由) 아니겠냐고 말해 주었다. 그러니 조금은 눈을 반짝이며 바라본다. 그래서 이어서 이야기했다. 그런 자유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탈북여성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자유를 위해 두만강을 넘어가는데 국경이니까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넘어서 중국에 다다르면 자기가 소망했던 자유대신 인신매매가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조금은 줄거리에서 벗어난 이야기까지 했다.
 어쨌든 자유란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살아가고 싶은 것들이다. 그리고 구속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이로제는 모순되게도 스스로 의존하며 자신을 묶는다. 아마도 '그렇게 스스로를 묶지 않았다면' 이 여성 환자도 버스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공포증이 버스를 타지 못하게 하며 버스를 타면 얻을 수 있을 여러 기쁨과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이 환자는 조만간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버스를 탈 수 없게 하는 그 두려움이라는 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게 되면 소변을 조절 못할 것이라던가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버스는 그런 것을 '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생각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암암리에 그렇게 느끼고 있지만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한번이라는 시도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증을 극화(damatize)해서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있었다. 밧줄을 자기 몸에 둥둥 감아놓고 자물쇠를 달아서 잠궈 놓았는데 그 열쇠는 본인이 들고 있는 의미심장한 그림이었다.
 신경증이라는 것이 또는 우울증이라는 것이 사실 스스로를 감금하는 점이 있다.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기분을 좋게 할 수 없으며 '나쁜 생각'이 계속 머리로 엄습을 하는 것이어서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고 '생각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자동사고'라고 하기도 한다. 자신이 의지로 하는 생각이 아니고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하게 되는 부정적 생각이기 때문에 자동사고라 하는 것이고 이런 생각은 자신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묶는 신경증적 생각일 것이다.


 이런 신경증적 생각에는 그것과 연결돼있는 정서적 바탕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모성 콤플렉스 같은 것들. 그래서 그렇게도 의존하고 있었으며 중독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 스스로 그 곳으로 숨어 들어가 있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란 실존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탈북'을 감행하는 것이 실존의 책임일 수 있다.
 그것이 '자기실현'일 때에는 안전은 지양돼야 할 가치이다. 하지만 노이로제의 극복은 탈북여성처럼 위험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길은 꼭 두만강을 넘는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길은 곳곳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꼭 거쳐야 하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자기의 두려움을 바라보는 일, 자신이 피하고 있는 것을 직면하면 자유로워지고 피하면 부자유스러워지는 것 같다.
 자유로운 삶을 살려면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는 삶이어야 하며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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