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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학교수, 문화예술인, 유명학원 강사 등의 학력위조 파문으로 전국이 시끄러운 가운데, 신정아씨 사건이 청와대 정책실장의 비호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우리 사회는 온통 '거짓말'의 통증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거짓을 사고팔고 거짓으로 대화하며 거짓을 가르치고 거짓을 배우면서 거짓을 권하는 사회! 미안하다는 말 대신 눈물과 함께 쏟아놓았던 해명조차도 거짓인 현실 앞에서 서로 불신의 벽만 높아가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TV에서 'Show를 하라'는 휴대폰 광고를 보면서도 거짓말을 미화하는 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엄마의 빠른 퇴근을 위해 아이가 아픈 연기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결국 부모라는 사람이 자기 편리를 위해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친 꼴이다. 아이의 연기에 속아 울먹였던 직장상사는 얼마나 배신감이 들까? 동료직원들은 야근하는데 혼자 일찍나가면서 미안한 기색도 없는 엄마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난감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거짓이 만연한 것은 개인의 도덕성 상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학생들은 약간의 과대포장이나 약속 어김, 변명 정도는 보통으로 생각하고 너무 쉽게 사용하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것이 나쁘다는 것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돈을 뺏고도 빌렸다고 하고, 숙제를 안 했으면서도 집에서 안 가지고 왔다고 하는 등 순간적 모면을 위해선 뭐든 뻔뻔해진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싸라기들이 뭉쳐져 나중엔 큰 눈덩이가 되는 것이다. 속담에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란 말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도 똑같다. 처음엔 별 것 아닌 사소한 몇 마디로 시작하겠지만 그것을 변명하기 위해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위선의 늪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위선은 가면을 쓰고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즉, 실제의 자신과 가면의 모습이 불일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역할 속에서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가면이란 개인이 밖으로 내놓는 공적인 얼굴을 뜻하는 것으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페르소나를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하면서 좋은 인상을 주거나 자신을 은폐시킨다. 그러나 이런 가면이 실제 자신과 너무 다르게 되면 표리부동한 괴리감을 느끼게 해 사회적 적응에 곤란을 겪게 만든다.


 신정아씨 또한 거짓 가면의 삶에 심리적 압박을 받아왔던 것 같다. 그녀의 칼럼 중 'Who are you? 라는 주제로 진정한 나의 이름을 찾아보는 과제를 주었다.'라는 부분이나 '과속하면 과열될 줄 알면서 왜 그토록 과속으로 달려왔을까?', '나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긴장상태 속에서 살아간다.' 등의 글에서 그런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과속을 왜 멈추진 못했던 것일까?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빛을 향해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나방처럼,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 과열의 고통쯤은 무시하고 가속 페달을 밟음으로써 남들을 추월하는 불법혜택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일대 박사라는 가면을 통해 자신을 근사하게 포장함으로써 후광효과(Halo Effect)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력위조로 만들어진 이카로스의 가짜 날개는 더 높이 날고자했던 욕심 탓에 결국 태양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거짓의 종말은 이렇게 허무한 것이다. 평생 쌓았던 화려한 왕국이 일순간에 모래성으로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자신이 아끼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잃었을 때의 상실감, 그것은 자기 정체성까지 뒤흔드는 큰 위기일 것이다.


 이런 위기와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도덕성 발달을 위한 생활지도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교통신호 지키기, 약속 잘 지키기, 거짓말 안 하기 등 생활주변의 사소한 문제들부터 실천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강요와 처벌보다는 양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법과 질서를 준수할 수 있도록 체험학습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할 것이다. 부모 또한 자녀와의 약속은 소중히 지키며, 먼저 모범을 보이고, 항상 진실한 자세로 자녀를 대해야 한다. 더불어 학교와 사회, 국가에서도 도덕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제학자 마샬이 당부했던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냉철한 이성과 올바른 판단력을 기초로 차가운 머리가 이 사회의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구분해주길 바라며, 양심의 밭에 뿌리를 내린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뜨거운 가슴이 거짓 없는 참세상의 싹을 움틔워주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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