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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될 만한 필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나는 작가를 꿈꿨다. 그리고 그 삶이 나를 이끌어 강연자로 살아가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나의 운명은 아주 작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2009년 봄, 작은 그림 한 점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큰 사건과 나는 마주한다. 지인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어느 화가에게서 온 그림이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혹은 사람을 통해서 나를 채우는 버릇이 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사람과 숲'이 있는 그림을 보내온 것이다. 우연치고는 아주 고약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그림과의 동거를 시작한 얼마 후 자신을 스쳐 지나는 나에게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에게 눈을 돌리게 하는 그림과 만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림 속 작은 아우성에 나는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그들의 완전한 포로가 되어 버린 한 여인이 그들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를 무언가로  맞은 듯한 충격, 그 순간의 전율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저 보잘 것 없는 주부인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듯 내 속에 무겁게 들려 있던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면 옳을까? 그리고 맑고 가벼움으로 나를 채우는 정체, 그것은 바로 정신을 샤워한 느낌이었다. 순간의 놀라운 경험이 있은 후 평범하기 짝이 없던 나에게 내가 알지 못했던 비범함이 내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소리쳤다.
 "그래, 이 일이구나. 내가 느꼈던 이 기분을 많은 이들과 나누자"
 그렇게 나는 갤러리를 열기 위해 2년여를 공부하고 준비를 해, 올해 4월 울산 중구 성남동에 '갤러리 아리오소'의 문을 열었다. 첫 해부터 갤러리를 열기까지 서울은 물론 부산과 전국의 크고 작은 갤러리를 혼자서 다녔다. 그리고 지난해는 동아대 평생교육원에서 미술경영큐레이터과정을 마쳤다. 경영을 공부한 나에게 미술이란 부분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과정을 이어가며 작은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미술사적 식견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기획력'이라는 재능과 사람들과의 '친화력'이 갤러리를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거란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나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조건'으로 자신을 향한 강한 믿음, 즉 자기 확신을 꼽는다. 재능과 콘텐츠는 그 다음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용기로 이어진 나의 행보에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우연이 운명이 되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내가 준비 되었던 사람으로 우연이라는 운명을 만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알 수 없는 강한 신념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누군가 "운명이다" 라고 했던 것처럼 우연이라는 이름의 운명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그때 이미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마리츠버그 역에서 겪었던 하룻밤으로 시시한 변호사에서 정치지도가가 된 간디의 삶을 보라. 그 역시 우연이라는 운명의 힘에 이끌리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그의 삶과 같이 꿈의 실험과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일상은 행복을 찾기 위해 탈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행복을 실험하고 연습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갤러리 아리오소는 나의 일상을 실험하는 곳이 되리라. 그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만나리라"
 문화는 특정 계층이 누리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누구나가 하나될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살아있다는 삶의 작은 증거들이 되어 줄 것이다. 문화는 정신, 혼의 문제라는 나의 인식은 변함이 없다. 바른 정신이 바른 사람을 만들고 바른 사람이 바른 사회를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나를 이끌었을 것이다.
 갤러리 아리오소는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다". 그래서 밝고 아름답다.
 "대범하고 거리낌 없이"라는 아리오소의 의미처럼 그렇게 꽃이 하늘로 뽐내듯 나는 이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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