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이름 외며 걷다보면 어느새 마골산 정상
바위이름 외며 걷다보면 어느새 마골산 정상
  • 강정원
  • 승인 2011.06.2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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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길] 동구 동축사 가는 길
▲ 동축사 산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거대한 바위.

갑자기 한여름을 연상케 하는 무더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태풍 소식에 더위가 주춤하긴 하지만, 여름 더위를 집안에서 견디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럴 때 시원한 숲길을 거닐며 기분전환을 하는 것은 어떨까. 어떤 숲길을 걸을까 고민하지 말고, 동네산으로 가보자. 산들이 푸른 것을 넘어서 짙푸른 색으로 변하고 있다. 두꺼워진 나뭇잎이 햇빛을 가려주고, 오르막 중간 중간 땀을 식혀주는 바람은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여기에 이야기가 덤으로 있는 숲길이면 아이들과 함께 할 수도 있다. 그런 곳이 동구 남목의 주산인 마골산 동축사 가는 길이다. 그 곳엔 형형색색 '바위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옥류천에서 첫발 내딛다

동축사를 품은 마골산은 높이가 불과 297m에 불과하다. 정상까지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지만 오솔길은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염포산을 통해 양정, 효문쪽으로  갈 수 있고, 동·북쪽으로 새평마을과 봉대산, 주전과 정자 쪽으로도 연결된다. 그래서 마골산 골짜기를 흐르는 옥류천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오솔길만 16.5km에 이른다.

 동축사로 가는 길은 남목초등학교 동편의 복개천(옥류천) 끝에서 시작된다. 길은 가파르지만 절 턱밑까지 도로가 나 있다. '빨리' 절에 올라야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일지는 몰라도 '여유'롭게 걸을 만한 길은 아니다. 그래서 남목초등학교 남쪽으로 들어가 '남장사'를 출발지로 잡았다. 남장사는 절 뒤편에 빌라가 들어서면서 세속에 잠겨버린 절이다. 여기서(큰골) 동축사 오르는 길은 옛 사람들은 '솔두배기' 또는 절재라고 불렀다.

#마골산 지명도 바위에서 유래

▲ 두꺼비를 쏙 빼닮은 '두꺼방'.
여느 산길과 마찬가지로 초입은 가파르다. 키 작은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실록을 자랑하고 있지만, 울창하지는 않다. 마골산은 그야말로 돌산이다. 흙은 대부분 마사토로 수목들이 자라기엔 여러모로 척박한 땅이다. 사람들은 바위같이 딱딱한 땅을 깎아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듬성한 수목들 사이로 내리는 6월의 햇살이 만만치 않다. 10여분을 걷고 나니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져 버렸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자 벌써 남목 시가지가 눈 아래다.

    아파트단지 너머로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크레인이 보이고, 동해 바다까지 보인다. 
 울산지명사에 따르면 마골산(麻骨山)은 삼(麻)을 벗기고 남은 줄기(骨)처럼 산 곳곳에 흰 돌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때문에 산 곳곳에는 사람 덩치의 몇 배가 될 만한 거대하고 둥그스름한 바위들이 만나게 된다. 옛 사람들은 이 바위들 마다에 이름을 붙이고, 그네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다양한 이야기 품은 알바위들

▲ 해골바위
오솔길 중턱에서 처음 만난 바위는 두꺼방이다. 큰 바위에 올라탄 바위의 모양이 두꺼비를 쏙 닮았다. 옛 사람들은 남목을 내려보고 있는 이 바위를 통해 다산과 마을의 번영을 빌었다고 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솥두방'이라 이름이 붙은 바위를 만난다. '솥'은 좁다는 의미고, '두'는 높다는 의미니, 이 바위는 '좁고 높은 곳에 있는 바위'다. 솥두방은 땅을 의지하고 있는 하부 면적이 좁아 마치 '흔들바위'를 연상하게 한다.

 마골산 오솔길에는 이들 바위 외에도 옛날 장군이 살구놀이를 했다는 바위 5개가 나란히 있는 '족적암(일명 장군 살구 받이)', 장수 투구 모양의 '투구바위', 옛날 어느 장군이 갑옷을 벗어 바위뚜껑을 덮었다는 '갑옷바위'등이 있다.

 또 다듬잇돌에 옷을 다리는 어머니 형상의 '침석암'과 그 옆에 엎드려 공부하는 아들의 모습을 닮은 '공부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지성으로 빌면 아이를 낳게 해 주었다는 '짱구바위(일명 아이 업은 바위)', 바위 꼭대기에 왼손으로 돌을 던져 올리면 아들을 낳고, 오른손으로 돌은 던져 올리면 딸을 낳는다는 전설을 가진 '메뚜깔돌(장군바위)', 해골처럼 생긴 '해골바위' 등 이름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바위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 세속에 잠겨버린 절 '남장사'.

#홍세태의 글 새긴 안내판

30분 가량 쉬엄쉬엄 오르면 어느덧 산 정상부에 다다른다. 정상부는 오히려 가파르지 않고 평평한 느낌이 들 정도다.
 정상부 쉼터에서 동축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7세기 울산감목관으로 근무했던 홍세태의 글을 새긴 안내판이 반긴다.
 
 서축에서 날아와 어느 봉우리에 내렸나
 천리길을 용암 앞 가듯 달려왔구나
 산 꼭대기에 걸려있는 신라탑 그림자
 숲속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범종소리
 황금을 땅에 깔아 참 세계가 열렸구나
 하늘에 걸린 달은 부처님 얼굴이라
 긴 밤 창가에서 잠 못 이루는데
 성난 파도소리가 솔바람에 뒤섞이네
  - 홍세태(1653-1725)작 울산감목감 시인
 
 산문으로 가는 길 역시 큰 바위를 지난다. 그런데 아뿔사, 누군가 바위 옆 소나무 가지에 목줄을 메달아 놓았다. 동그란 매듭이 소름을 돋게 한다. 장난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실제 무엇인가 마음먹고 만든 것인지, 산문에 이르는 좁은 길을 걷는 동안 내내 다리가 흔들렸다.

#인도서 온 불상 모시려고 지은 절

동축사(東竺寺)는 신라때 창건된 울산에서도 손꼽히는 고찰이다. 삼국유사에는 동축사 창건설화가 전해지는데, 신라 진흥왕 34년(573년) 3월 지금의 울산인 하곡현(河曲懸) 사포(絲浦)에 서역에서 온 큰 배가 닿았다. 이 배에는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편지와 황금 3만 푼, 황철 5만 7천근과 함께 석가삼존불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황금과 황철을 배에 실어 보내니, 인연 있는 국토에 가서 장륙존상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배에는 모형 불상도 함께 실려 있었는데 이 모형 불상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절이 동축사라고 한다.

 동축사는 바로 위쪽은 지역의 대표적인 해맞이 장소인 관일대(觀日臺)다. 동축사의 종소리와 함께 해뜨는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곳으로 유명하다. 시계가 좋은 날 관일대에 서면 동쪽 남목마성 봉대산 너머 동해를 볼 수 있다. 눈을 남쪽으로 돌리면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한눈에 들어 온다. 북쪽으로는 옥류천 상류의 마골산 자락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발밑으로는 '송급암'이 앉아있다, 바위 위에 솥뚜껑 같은 바위가 하나 더 얹혀 있어 마치 솥에 밥을 짓는 모양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동축사 전경.

#아름다운 풍광…고즈넉한 목탁소리

동축사에서 목탁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관일대의 6월 햇살은 따가웠지만, 머릿속 세상 시름 한 조각 한조각 목탁소리에 실려나가는 느낌이다.
 동축사에서 옥류천으로 가기위해 주차장 쪽으로 곧장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젊은 연인 한쌍이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고 있다. 계단길 옆 물이 없는 계곡에서 산새 한쌍이 나무를 쪼고 있다. 계단길은 주차장에서 끝나고, 이후부터는 도로를 따라 내려갈 수 밖에 없다.

    가파른 콘크리트 도로를 내려오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무릎에 이상신호가 왔다. 좀 멀더라도 돌아서 오솔길로 내려왔으면 좋았을 것 이라는 뒤늦은 후회가 생겼다. 주차장에서 옥류천을 따라 다시 올라가다 통증이 더해져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옥류천 변의 알바위 이야기와 쇠평재, 주전 봉수대로 이어지는 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글·사진=강정원기자 mikang@ulsanpres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