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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를 이용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울산시민들은 코레일에 대해 불편한 심사를 갖고 있다. 점잖은 표현으로 불편한 심사지 사실은 불쾌하다. 첨단기법의 현대식 외관을 가진 울산역과 2시간 남짓한 속도감으로 서울까지 이동하는 편리성을 갖췄는데 뭐가 그리 불쾌하냐고 할지모르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휑한 역사는 빈소리만 나고 속도는 난삽하기까지 해 시선을 둘 곳이 없다. 선로 옆 대기실엔 그 흔한 의자도 인색하기 짝이없고 가락국수 정도를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도 울산역에서는 찾을 길이 없다. 이같은 불쾌함은 동대구나 대전을 지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지난해 KTX가 막 개통됐을 때만해도 참을 수 있었다. 이제 시작이니 조금 있으면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이 불편을 상쇄했다. 신설역이어서 수화물 이용이나 휴대용 기기의 대여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도 곧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선로 옆에 가락국수 집이나 편의점이 없어도 미리 챙겨먹고 미리미리 필요한 것을 역사내 편의점에서 사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곧 이런 정도는 코레일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기에 조금의 불편은 참을 수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개통 당시 지역 국회의원을 통해 울산시민의 불편한 점을 코레일에 전달했을 때 허준영 사장은 "신설역이라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있지만 곧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2구간 개통 이후 충성도가 가장 높은 역이 된 울산역은 코레일의 귀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여전히 울산역을 이용하는 울산시민들은 불쾌한 느낌을 휴지로 닦아버리고 역사를 빠져 나오고 있다. 이같은 사실을 증거할만한 두 가지 통계가 나왔다. 하나는 KTX 울산역 개통으로 시민들의 경제적 혜택이 증가했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KTX를 타고 울산으로 관광을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내용이다. 울산시가 울산발전연구원에 의뢰한 조사내용이다. 속도의 시대에 서울 가는 교통편이 고속화 됐으니 경제적 효과는 당연히 증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체 이용객 가운데 자발적으로 울산을 찾아 울산을 학습하려는 관광수요는 고작 6%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차는 이동수단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내포돼 있다. '칙칙폭폭'이 '쉬우웅'하는 첨단음으로 변했지만 표를 끊고 객차에 오르는 순간 철도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채 감성의 코드를 작동하게 한다. 그 감성의 코드에 이성의 옷을 입히는 것은 목적지로 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과 책자, 이정표와 안내방송, 역사에서 느끼는 안락함 따위라 할 수 있다.

 얼마전 기차 상품 배급업체 레일유럽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럽 여행지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나라로 천혜의 자연 경관을 느낄 수 있는 스위스가 32%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낭만이 있는 프랑스가 2위를 차지했으며, 이탈리아와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모두가 기차여행의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다. 유럽하면 떠오르는 것 역시 기차에서 시작된 로맨스를 그린 '비포 선라이즈'와 아일랜드에서 사랑을 찾아가는 '프로포즈 데이' 등이 선정됐다. 또 유럽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교통 수단을 묻는 질문에는 기차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 설문에서 주목할 것은 기차여행을 선택하는 이유다. 많은 이들이 기차를 여행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멋진 풍경과 여행의 낭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물론 그런류의 즐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차를 운영하는 기차회사의 지속적인 상품개발과 관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기차를 상품화하고 기차역을 관광코스화 하는 것은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중심의 정신에서 나온다. 일본이 기차 여행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승객 중심의 서비스 정신 때문이다. 일본의 기차는 초고속 신칸센부터 각 도시를 잇는 특급열차와 한 명의 기관사가 운전과 티켓검사를 겸하는 소도시의 원맨 열차, 각 지방의 특색을 살린 요괴 열차와 몇 백 년을 이어온 증기기관차,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노면 전차와 산악 지역을 운행하는 등산 열차까지 그 종류와 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열차에서 맛보는 각양각색의 에키벤까지 더한다면 일본 기차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끝이 없다.

 특색도 없고 성의도 없는 것은 짧은 역사라 돌려 넘어간다 해도 반구대암각화 지날 무렵 화면에 선화문화일번지 이야기 정도 소개하고 통도사 지날 때 천년고찰 이야기 정도 읊조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속도를 앞세우니 울산을 소개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고속열차에 가락국수 타령을 하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보다 울산역 한켠의 싸구려 암각화모형 조차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코레일의 의식수준이고 보면 이정도의 지적은 소귀에 경읽기로 밖에 들리지 않을 법하다. 하지만 승객이 늘어가는 만큼 서비스의 질도 높여가는 것이 속도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코레일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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