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수금의' 슬픈 이야기 깃든 비취빛 바다 갯마을
'녹수금의' 슬픈 이야기 깃든 비취빛 바다 갯마을
  • 서승원
  • 승인 2011.06.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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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구석구석] 8. 동구 전하동
▲ 울산조선소의 기공식이 1972년 3월 23일 동구 미포산 일대에서 열린 이후, 미포, 녹수, 구미 마을 등 현대중공업 부지로 매립된 해안에서 파일 정지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973년 12월 28일 현대조선중공업(주)로 출발했다. (1970년)

 

#조선산업도시 동구의 중심지

울산시 동구 전하동은 현재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공장이 들어서 있는 동구지형에 중심에 해당하는 곳으로, 본래는 아름다운 포구였다.
 전하동은 조선 현종 13년(1672년)에 '전하포'라고 불리다가 고종 31년(1894년)부터 전하동이라고 불렸다. 일제 시대인 1911년에도 전하동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화정동 일부를 포함시켜 전하리라 하였다. 현재 전하동은 1,2, 3동으로 다시 분동(分洞)되었으며 인구 밀도가 대단히 높다.

 본래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연취락이 형성돼 있던 곳이었다. 지난 1970년 초부터 대형의 조선소가 이곳에 입지하면서 바다를 면하고 있던 해안 마을과 해역에 따른 공간 대부분이 공장부지로 편입됐다. 또 공장 근로자들이 거주할 집을 짓기 위해 택지조성 사업이 잇따라 이뤄지면서 아파트단지와 주택, 상가, 병원, 학교, 백화점, 문화센터 등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지금의 도심지 모습을 갖췄다. 그런 면에서 전하동은 산업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지역이면서 동구에서 가장 발전한 곳이기도 하다.
 
#밭아래 마을이라는 뜻의 전하동

전하동의 옛 모습은 지명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전하동의 자연부락으로는 전하마을과 녹수마을, 명덕마을이 있었다. 전하(田下)마을은 말 그대로 '밭 아래 마을'이라는 뜻이다. 옛날 이 곳에는 산비탈에 밭이 많이 있었으며, 그 아래 바닷가로 촌락이 구성돼 있었다. 논이 없던 전하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다. 전하동에서는 '바드래'라는 지명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바드래는 밭아래를 발음이 나는대로 표기한 것이다. 바드래문화관이나 바드래공원 등도 전하동이라는 지명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녹수(綠水)마을은 전하동 동북쪽 포구에 자리잡고 있던 마을이다. '녹수'라는 지명이 생긴데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 마을 북쪽에 있던 낙화암에 유람을 왔던 처녀가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는데, 그 처녀가 입고 있던 녹색 비단저고리 소맷자락이 이곳으로 밀려와 녹수금의(綠袖錦衣)라 부르게 됐으며, 이것이 줄어 녹수가 됐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주민 200여명이 살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 이 일대가 모두 공장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전하동

전하마을과 녹수마을을 이어주던 곳이 바로 둘안산인데, 해발 41m의 나지막한 산이다. 이 산은 해풍으로부터 전하마을과 녹수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 산 밑 바닷가로는 검은불, 사태밑, 듬벙개, 진바람, 고래개안 등의 이름을 가진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널려 있었다. 산등성이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동쪽 언덕의 잔디밭은 놀이터와 휴식 공간으로 이용됐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의 달집 태우기는 이 고장의 이름난 행사였다. 또한 이 산 밑의 바닷가는 해산물이 풍부했으며, 특히 미역이 유명했다. 현재 이 산의 정상에는 현대중공업 영빈관이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다.

 지금의 울산대학교병원 바로 위에 있는 명덕 저수지 일대를 예전에는 돌안골 이라고 불리웠다. 이 골짜기로부터 시냇물이 시작돼 병원과 현대중공업 정문을 지나 바다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것을 명덕천이라 했다.
 명덕마을은 전하동에서 산쪽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명덕마을은 농업이 주로 이뤄졌는데 이 명덕마을을 지키던 당산나무가 현재 현대중공업 본관 앞의 곰솔이다. 현대중공업 사옥 조성당시 베어질 뻔 한 것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만류로 살아 남았으며, 지금은 직원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곧이어 현대중공업의 공업용수지로 사용되는 명덕저수지가 공원화돼 새롭게 도심휴식처로 거듭날 예정이라 주민들로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형적 특색에 따라 장터가 성행해

▲ 동구 전하동 일산 만세대지구.


전하동은 지리적으로 동구청에서 일산해수욕장으로 갈수록 내려가는 내려가는 형상을 취해 다양한 골짜기가 존재했다. 지금의 동부경찰서 일대를 말하며 이 골짜기에 있었던 성을 '진성골 산성'이라 불리웠다.

 진성골은 임진왜란 때 이 지방 의병들이 일본 침략군을 물리친 골짜기라해 '전승골(戰勝谷)', 후에 '진성골'로 바뀌었다.
 또 전하동에는 현재도 동울산시장 등 재래시장이 들어서있어 다양한 먹거리와 유흥시설이 어우러져 주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실제로 과거에도 이 지역은 시리이재, 장터걸로 불리며, 전하, 녹수, 명덕 마을 사람들이 울산장을 보러 다니던 고갯길이었다. '시리'는 '시루'의 사투리이고, 시장 보러 다니던 길이라해 '장터길'이라 했으며, 후에 '장터걸'로 변모됐다.
 이 밖에 전하동에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병들의 영령을 모신 사당도 건립됐는데, 현재 명덕에 있는 농협 방어진 지점 앞이며 이곳을 '순국실'이라 했고, '순구실'로 변음됐다.
 
#바닷가와 인접한 전하동,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
▲ 녹수마을 뜰.

또 전하동은 일산동과 마찬가지로 산지뿐만 아니라 바닷가를 끼고있어 다양한 바위가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뛰어난 경치를 자랑했다. 전하동 앞바다는 목섬(項島)이라 불리던 섬이 있었으며,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됐다. 이곳에는 멸치잡이 후리막과 노송(老松)이 있어 그네뛰기를 하기도 했던 곳으로 지금의 현대중공업 제1도크 자리이다.
 또 돔바위(혹돔방), 근방, 일곱덩거리(일곱덩어리의 바위), 진줄 바위(긴 줄같이 늘어선 바위), 까치듬(까치를 닮은 세 바위), 달바위(평평하게 넓은 달 모양의 바위) 등 여러 모양의 바위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터가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전하동은 선사시대 고래뼈 발견지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지난 l996년 동구 전하동 동부경찰서 남방 100m지점 해안으로부터 약 250m 지점에서 발견된 고래뼈는 과거 방어진이 고래 잡이로 전국에 명성을 날리던 시절을 증명하는 귀중한 유물이 되고 있다. 부산대학교 지질학과 김항묵 교수로부터 3,000년 전의 고래 유골이라는 학술적 고증을 거친 이 고래뼈는 흑색 점토층 지하 10m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 30m, 무게 30톤의 참고래 요골로 판명됐다. 동구청에서는 지역 문화 및 교육적 가치를 판단, 이 고래때를 민원실에 전시하고 있다.

 현재 전하동 지역에는 3만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많은데다 대기업에 들어서 있고 주민들의 단합도 잘돼, 선거철에는 항상 선거후보들이 표심잡기에 집중하는 주요지이다. 전하2동 지역은 최근 몇 년새 아파트 재개발 사업으로 적지않은 인구가 빠져나가 인근 상권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조만간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되면 입주민 등을 중심으로 다시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글=서승원기자 usssw@ 사진=울산신문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