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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물이 졌다. 어미댐인 대곡댐이 어깨 위까지 차올랐다. 지난 2005년 대곡댐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대곡댐의 만수위는 120m지만 이번 태풍으로 110m가 차올랐다. 큰물이지면 무엇보다 반구대암각화는 숨이 막힌다. 턱까지 차오른 물길이 이번 비로 머리꼭지까지 덮었으니 당분간은 고래그림들이 수면 아래 세상과 만나야할 모양이다.

 울산을 처음 찾는 이들이 반구대암각화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KTX 울산역이다. 울산역에 가면 역사 정 중앙홀에 반구대암각화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다. 시원한 물줄기와 대리석 치장이 세련된 공간구조를 갖춘 곳이다. 친절하게 안내판도 만들어 뒀다. 반구대암각화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작품이라는 설명과 만든이와 새긴이가 차례로 동판에 번쩍거린다.

 그 대리석 그림을 가만히 보면 참 유치하다. 고매한 디자인 달인이 만든 예술작품을 두고 유치하다는 말을 불경스럽게 뱉아내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 따위 돌문양에 7,000년의 문화유산을 연결하는 코레일이 우습다. 아니 천박해 보인다. 벌써 수차례 KTX를 타고 서울을 다녀왔다. 오갈 때마다 불쾌한 내 발길은 그 공간 앞에서 머뭇거린다. 가끔씩 발가락 끝이 살아 움직이며 욕지거리도 뱉는다. 어디 '돈지랄'을 할 게 없어 울산역에 저런 걸 만들었나 싶지만 그래도 예술이란다. 미국놈 아이스크림이나 빨아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이스크림은 이미 빨아먹는 게 아니라 떠먹는 게 대세다.

 원형을 바탕으로 디자인화한 그 조형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울산역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이든 예술회관이든 관공서 로비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울산역은 다르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제일 먼저 암각화와 만나는 곳이 울산역이다. 그 곳에서 우는 듯, 웃는듯, 헤집히고 뒤틀리며 세월을 견뎌온 낡고 오래된 바위그림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용대에 향수 뿌리고 말간 낯빛으로 성형까지 한 미끌한 반구대암각화는 첫 만남을 왜곡한다. 그 왜곡이 현장으로 향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그저그런 돌그림 하나로 반구대를 폄하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빨리 들어내야 한다. 맘 같아서는 불도저 하나 빌려 몽땅 밀어버리거나 무슬림 자살폭탄조처럼 온몸에 폭탄 두르고 돌진하고 싶지만 도시락 폭탄 하나 없는 마당에 그저 이 따위 글이나 쓰고 있는 모양이 한심하다.

 두 번째와 세번째로 만나는 반구대암각화는 암각화박물관과 울산박물관에 있는 모형이다. 미세한 긁힘조차 재현한 모형은 물에 잠긴 반구대암각화에 미련이 남은 이들에게 참 반갑다. 세월이 떨림으로 살아난 모형은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숨결을 느낌 수 있다. 저 선 하나, 새김질 하나에 몇 번의 숨을 참았으리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바로 그 호흡이 반구대암각화다. 대곡천 풀섶에 움집을 짓고 한 살이를 시작한 무리들이 왜 바위에 몸을 맡겨 바다를 꿈꾸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숨막히는 새김질은 바로 오늘까지 이어지는 우리네 삶의 근원과 닿아 있다. 이 땅이 한반도 인류의 시원이자 해양문화와 북방문화의 접지임을 밝히는 중대한 단서가 숨은그림처럼 새겨져 있다는 증좌다.
 이제 마지막으로 현장으로 가자. 디자인화한 울산역의 반구대도 아닌, 모형으로 불쑥 다가서는 박물관의 반구대도 아닌, 바로 현장으로 가보자. 초입부터 알 수 없는 웅혼한 기운이 이마부터 스며드는 그곳은 바로 한반도 선사문화의 출발점이다. 그저 바위그림 하나 있어 가치를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라 아홉구비 물줄기와 영겁처럼 켜켜히 쌓인 세월이 가슴 한 쪽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가 웅성거리는 곳이다.

 모두 그 현장에 서면 어쩔 수 없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암각화와 만나야 한다. 그 거리가 만든 묘한 시간의 문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가 바로 이 땅의 사람들이 터잡고 살기 시작한 곳이다. 그 출발점에서 반구대암각화는 암호처럼 마주한 이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 현장이 다시 뜨겁다. 보존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현장을 찾는다고 한다. 장관들도 오고 문화재청장도 온다는 소식이다. 책임 있는 이들의 방문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장을 찾는다니 반갑다.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아도 자주 찾는다면 그저 반가울 뿐이다. 찾아와서 보고 다시 또 보면 꿈에라도 바위그림 무너지는 가위눌림 있으리라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은 아마 헛소리가 아니지 싶다.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허우적거리는 고래와 눈길이 마주친다면 반드시 꿈자리 어디쯤 땀을 뻘뻘 흘리며 모골이 송연해 질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분들이 오시면 사진이나 찍고 돌아서지 말고 꼭 고래그림 하나쯤 눈길로 더듬기를 바라기에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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