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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태어나고 자란 동네의 과거와 만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박물관이 연일 만원사례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울산의 한 문화예술계 인사는 이같은 시민들의 박물관행에 대해 '목마른 대지에 비가 내린 격'이라며 그간의 척박한 문화사업 투자를 아쉬워했다. 맞는 말이다. 울산이 가진 역사적 가치나 문화적 자산이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가 바로 울산사람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다.
 흔히 박물관이라고 하면 고고학적 자료나 역사적 유물, 예술품 등을 수집·보존·진열하고 전시해 학술연구와 사회교육에 기여하기 위해 만든 시설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박물관의 가치는 사전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 우리 땅에 살았던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와 그들이 남긴 유물은 지금의 우리와 미래의 후손들에게 삶의 방향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박물관은 앞으로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하지만 후발주자이다 보니 앞선 박물관들의 경험이 오히려 좌표가 되는 이점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물론 과제도 많다. 우선은 울산박물관의 정체성이다. 울산박물관은 당초 역사박물관으로서의 출발을 기대하는 시민적 요구가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울산시가 시립박물관의 명칭을 선정하기 위해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울산역사박물관'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여기서 나타난 시민들의 뜻은 '역사'라는 단어에 있다. 울산박물관을 박물관답게 하기 위해서는 산발적인 테마관이 되기보다는 역사성을 부각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뜻이었다.
 문제는 이같은 시민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개관한 울산박물관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다는 느낌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산업사관이다. 산업도시 울산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산업사관에는 삼한시대 '달천철장'에서 현대산업사까지 망라해 국내최대 친환경 산업수도 울산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사관을 둘러보며 가슴 한쪽이 허전한 것은 공업센터 지정 50년의 역사와 대한민국 근대화의 일번지라는 명성에, 고작 이정도의 전시물로 채울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동차 산업 일번지인 울산에 첫 생산제품이 그림으로 전시되는 것도, 공업센터 기공식을 기념하는 물상 역시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것도 선택과 집중의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지금 울산박물관의 산업사관은 한정된 공간에 공업입국과 산업수도의 발전상을 한꺼번에 담다보니 더부살이 이상의 의미는 없는 상태다. 결국 좁은 곳에 여러 가지를 담아내려하니 담기는 하되, 상상력이 전시물과 어울려 새로운 이야기로 승화될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울산박물관은 산업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사관은 울산의 근대적 족적을 보여주기 위한 세트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울산의 근대적 발전상은 산업박물관에 별도로 기획 전시하는 것이 맞았지만 여건상 울산박물관의 한쪽에 더불살이 신세가 된 셈이다. 이미 펼쳐보고 느꼈겠지만 울산이 산업수도로서 대한민국 근대화의 산증인이라면 지금이라도 산업박물관을 별도로 건립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울산의 역사를 담아내는 역사관은 현재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울산 출토 유물을 역사관에 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시민들의 유물기증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보다 많은 울산의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이 시급하지만 이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진행한다면 잃어버린 울산의 과거사를 하나씩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지금부터 울산박물관이 해야 할 일은 흩어진 유물을 모으는 일과 함께 이를 어떻게 울산의 역사로 연결해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관객과 탐험대장의 만남이라는 기획을 통해 관객들이 탐험대가 되어 고구려의 어두운 고분을 더듬어 들어가기도 하고, 신라 서라벌로 시간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을 치러보기도 하면서 역사를 경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박물관의 이같은 노력은 현재의 사람들을 과거의 역사 속 사건과 장소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더 이상 역사가 이해하기 힘든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시키는 장치다. 이는 역사에 대한 흥미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헌강왕이 울산에 나들이 왔다가 처용을 만난 개운포 해변이나 갈문왕이 사랑하는 왕비를 못 잊어 추억을 되새기던 천전리 각석 계곡, 박상진 광복군 총사령관이 서울로 떠나던 모습과 외솔 선생이 한글연구에 몰두하던 병영의 촌집을 재현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다.
 관객이 과거의 유물과 대면하는 순간, 상상력이 작동되고 그 상상력이 과거의 울산과 오늘의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소름처럼 느낄 때 박물관은 비로소 전시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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