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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관계가 복잡할수록 시청률은 올라간다.
 시니컬하기로 이름 높았던 기자의 고교 은사는 소설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국내 공중파 드라마에 대해 난도질을 했던 기억이 난다.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이른바 안방소설을 빗대어 은사님은 우리 공중파의 막장드라마들을 저급한 하류문화로 규정했다.
 이미 10년 전의 일이지만 요즘 공중파 드라마도 그때의 사정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시청률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관을 뒤흔드는 일은 이미 오래된 고전이 돼버렸다.

#시청률 보장에 사극의 위험한 외출
문제는 애정행각을 부각시킨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대하역사물이다. 최근 공중파들은 경쟁하듯 역사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역사물의 드라마화는 몇가지 안전장치가 보장돼 있다. 소재의 선택이 시대상황과 맞아 떨어질 경우 40대 이상 시청자들의 충성도를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이순신이 그렇고 태조 이성계나 수양대군, 군왕의 질서를 파괴한 광해군과 연산군이 그렇다.
 재탕 삼탕도 마다하지 않고 이들 인물을 드라마로 만드는 일에 수백억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이유는 바로 안정적인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안전장치에 있다. 소재가 한정돼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극은 단숨에 공중파 드라마의 강자로 부상하는 매력이 숨어 있다. 문제는 소재의 한계다. '이순신'류의 드라마가 또다른 색깔로 재구성 되기 위해서는 또다른 '이순신'이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역사책을 아무리 뒤져도 '이순신'은 한 사람일 뿐이다.

#신격화와 사실과의 거리감
여기서 사극의 위험한 외출이 시작된다. 앞선 드라마와 또다른 시각을 드러내고 또다른 캐릭터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상상력이 적어도 역사적 사실과 지근거리를 유지하는 근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는 곧 상상이 아닌 공상화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험이다.
 바로 그 위험의 징후들이 지금 우리 안방극장에 도배질을 하고 있다. 우선 KBS가 야심차게 기획한 '광개토태왕'을 들여다보자. 요란한 출발로 시선을 끌었던 '광개토태왕'은 회를 거듭할수록 역사적 사실과의 거리감 때문에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먼저 훗날 광개토태왕에 오르는 담덕(이태곤)의 왕자시절 활동상이다. 영웅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서야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드라마적 시각이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논란거리다. 실존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태자 담망(정태우)이 담덕의 형으로 존재했는가의 논란부터 17살에 왕위에 오르는 담덕의 왕자시절이 너무나 과장된 드라마화로 역사적 사실을 허구화한다는 논란이다.

#개연성의 룰 깨는 재구성 불편
고구려의 왕자가 이상한 나라의 노예가 됐다가 권력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모략의 수렁에 깊은 발을 들여놓는 설정은 차라리 봐줄만 하다. 하지만 칼만 잡으면 목젖이 튀어나올 만큼 갈갈이 고함만 지르고 눈동자는 있는 대로 힘을 주며 씩씩거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광개토대왕과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과의 거리감도 극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우리 역사서가 비록 담덕이 고국양왕의 몇째 아들인지는 알려주고 있지만 '고구려본기'의 기록은 상당히 구체적인 사실들을 적고 있다. '고구려본기' 광개토대왕 편에는 "광개토대왕은 고국양왕 3년에 태자로 세워졌고, 9년에 왕이 죽으니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국양왕 3년은 서기로 치면 386년이다. 담덕이 374년에 태어났으므로, 그는 만 12세에 태자가 된다. 그리고 만 17세에 즉위한다. 담덕이 일찌감치 후계자가 된 것은 그를 중심으로 하는 후계구도의 형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드라마 '광개토태왕'처럼 담덕이 태자가 되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겪을 이유도, 왕위 계승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사실과 상상의 경계는 개연성이다. 그 개연성의 룰을 깨는 공중파의 사극 재구성은 아무래도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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