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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상희 관장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통틀어 볼 수 있는 '한국미술 거장전'을 '놓치면 아까운 1등 전시'라고 자부한다. '한국미술 거장전'은 오는 18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미술 거장전>이라는 이름으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는 울산문화예술회관. 폭염 속에 찾은 전시관에서 곽상희 관장은 수줍은 미소를 띤다. 이 남자의 매력이다. 설핏 소년같은 분위기가 눈가를 맴돌다 희끗한 머리결 따라 날카로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묘한 중후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일제강점기~현대미술 울산에

기획전시의 과정을 취재하고 싶다며 차 한잔 하자는 말에 손사래부터 친다. 공직에 있기에 그저 공인의 직분을 다하고 있을 뿐인데 무슨 인터뷰냐는 몸짓이다. 맞다 공직에 있으면 직무를 탈없이 하면 그뿐이다. 문제는 우리 공직의 구조가 창의성을 누른다. 하지만 그 틀을 깨는 것이 시민의 행복과 함께 한다면 과감하게 깨야 한다. 그 시도가 바로 <한국미술 거장전>이다. 울산에서 흔하지 않은 기획전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그리고 한국전쟁의 시린 역사 속에서 꿋꿋하게 제 길을 걸어온 대한민국 현대 미술 작품들이 울산에서 숨 쉬고 있다.

 문화가 밥인 시대다. 문화가 밥 먹여주냐는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과 굴뚝에 검은 연기가 기쁨인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에서 문화는 이제 막 잠에서 깼다. 뉴욕이나 파리, 상하이나 서울이 철마다 색깔이 다른 문화의 옷을 입기에 세계도시로 자부한다. 아니, 가까운 부산이나 대구만해도 계절마다 모차르트도 다녀가고 모딜리아니도 차를 마시고 떠들다 간다. 스쳐 지나가는 자리마다 문화가 자국으로 도장을 찍기에 잠시 스치는 일도 그 도시의 사람들은 힘들게 기획하고 만들어간다.

 지난 겨울, 서울 덕수궁 옆 미술관에서 샤갈을 만났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그날, 덕수궁 돌담길은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함박눈처럼 이어졌다. 그 장면, 가만히 보는 기자는 샤갈보다 벅차게 울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문화는 눈처럼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노력이 농축될 때 문화는 비가되고 눈이되어 우리를 적신다.

 울산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미술 거장전>도 샤갈이나 고흐와는 또다른 맛을 가진 전시다. '거장'이라고 칭함은 한국 현대 미술의 시작에 첫 획을 그은 1세대 작가들, 한마디로 시대의 작가이다. 김종학, 김창열, 박서보, 서세옥, 윤명로, 윤형근, 이우환, 이응노, 정창섭, 하인두, 하종현 11인의 거장들은 1950년대의 작품부터 현재 작업하고 있는 그림들까지 모두 내보였다.

#김종학·김창열 화백 등 작품 57점 전시

설악산을 모티브로 힘찬 붓질과 화려한 색채로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럭을 화폭에 담은 김종학, 물방울 속에 모든 것을 용해시키고 무(無)로 돌려보내는 물방울의 작가 김창열,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무위자연의 상태를 추구하는 박서보,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추상성과 단순성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한국화를 발전시킨 서세옥, 다양한 안료와 재료를 통해 동양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윤명로, 자연의 섭리와 어울리는 회화를 표현한 윤형근, 점과 선, 여백을 이용해 긴장감 넘치는 동양적인 미를 보여주는 이우환, 수묵화의 전통과 서구의 추상미술을 절묘하게 화폭에 담은 이응노, 한지를 이용해 번짐효과 등 닥 시리즈로 민족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담은 한국적인 추상화를 그린 정창섭 화백 등 57점의 작품들이 울산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넘쳐 흘러나와 풍족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 이 전시를 통해 적극적으로 한국 고유의 조형성을 창조하고자 노력했던 그 때 그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는 대형 기획전시이기에 <한국미술 거장전>은 놓쳐서는 안 될 전시다. 그만큼 공도 많이 들였다. 한 명의 개인전시도 아니고 11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의뢰하고 일일이 다 모으는 일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들게 구하고 내거는 국보급(?)작품들인 만큼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전시환경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실내 리모델링을 하고 작품 보호대를 설치하며,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시장 온습도 기록계까지 구비해 놨다. 문화예술회관 직원들이 1년 치 일할 열정을 이 전시에 다 쏟았다는 후문도 있을 정도. 이러한 대형전시를 성황리에 개최하기까지 그 뒤에는 곽상희 관장이 후원이 있었다.

 곽 관장은 이번 전시를 울산에서는 보기 힘든 유명 작품들이 모였기 때문에 자신 있게 시민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1등 전시라고 자부했다.
 "전시를 개최하기까지 고생한 우리 직원들을 생각하면 이 전시의 가치는 환산 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그림을 볼 때마다 색다르게 다가오는 작품들입니다. 어제는 작가의 과거를 봤다면 오늘은 현재 작품세계를 발견할 수 있죠"

 곽 관장은 전시장에 자주 들린다. 시민들이 얼마나 발 도장을 찍었는지, 혹여나 전시에 부족함은 없는지 일일이 체크해 보기 위해서다. 작품을 비추고 있는 조명은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조명의 열 때문에 작품을 손상시킬 수 있다. 명작의 훼손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곽 관장은 조명과 전시장의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선보이는 전시는 이제 반을 달려왔다. 보름이 지났어도 전시장에는 작품에 대해 설명 해주는 해설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통상적으로는 매일 3회씩 해설이 진행되지만, 단체나 학교 같이 신청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자세한 설명이 가능하다.

 알이 꽉 찬 실속 전시인 <한국미술 거장전>에 곽 관장은 어느 정도 만족을 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완벽한 전시의 2%를 채우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11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기회는 울산에서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흔하지 않은데, 생각보다 시민들의 관심이 적네요. 오늘 아침에도 다녀간 몇 분이 있었는데, 한 분은 서울에서 보러 왔다고 하더라구요. 전국적으로 꽤 알려진 전시임에도 정작 울산시민은 누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 점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5천원의 행복' 18일까지

곽 관장의 바람은 검소하다. 울산 시민들이 <한국미술 거장전>을 통해 문화예술의 갈증을 해소 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고. 더욱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울산문화예술회관의 다양한 전시와 공연으로 시민들이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사실 행복이라는 건 가까이에 있습니다. 지금이 한창 더울 때 아닙니까. 계곡, 바닷가도 좋은 피서지로 꼽을 수 있지만, 저는 전시장이 최고의 피서지라고 생각합니다. 시원한 전시장 안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 아니겠습니까"

 한 여름 뜨거운 열기로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면, 이제는 더위로 메마른 마음을 문화 감성으로 식혀줄 차례다.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열리니 여유는 충분히 있다.
 한국 현대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데다 해설사들의 상세한 설명까지 더해 단돈 5,000원에 관람할 수 있는 <한국미술 거장전>. 울산지역에서 이 전시회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 김은혜기자 ryusor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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