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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만나러 암각화박물관으로 가는 길,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울적했다. 구름 사이에 숨은 눈치 없는 태양이 제 할 일을 다 해보겠다고 자꾸만 뜨거운 햇빛을 내리쬔다. 이도저도 아닌 날씨다. 곧 억수같은 비가 쏟아 질 것 같아 쉽게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릴 적 읽었던 순정만화가 생각났다.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설레임 가득한 그 순간. 그러나 엇갈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딱 그 마음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들어선 암각화박물관 오솔길엔 다행히도 그의 작품들이 행인의 방문을 반겼다. 삶 이야기, 고향 이야기, 사람의 모습을 가득 담은 그의 그림들을 보자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마침 구름 가득 했던 하늘도 그 모습을 감췄다.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 박 화백이 보인다.

검정색 티셔츠와 바지, 편하게 차려 입은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소탈'했다. '시사만화의 대부'라고 불리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정겹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모습을 더욱 수수하게 보이게 한 건 붓펜 하나로 '슥슥' 그려나가는 그림체다. 꾸밈하나 없는 솔직한 그림이다.
 긴 구간의 길을 걸으며 본 박 화백의 만화들은 재래시장 골목에서 들려오는 뻥튀기 장수의 외침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뻥이요~' 한마디에 '펑'하고 고소한 뻥튀기가 나오는 것처럼, 만화 한 컷에 담긴 가슴 찌릿한 한마디가 알 수 없는 마음속 응어리를 '펑'하고 터뜨리게 만들었다.

 '대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에게 느닷없이 뻥튀기 장수라니.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이지만 그에게는 분명 그런 구수한 매력이 있다. 그에게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시사만화가 박재동이 있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 박재동도 있다. 이날 기자가 만난 박재동은 후자의 인물이었다. 
 
   
▲ 박재동 화백은 까다로운 이번 전시를 적극적으로 나서 준비해 준 고향 울산에 감사를 표하며, 이처럼 문화를 기획하는 '열려있는 마음가짐'이 울산 문화예술을 발전 시킬 수 있는 저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 반구대 암각화 일대 4㎞구간에 800여점 선보여


기자가 무사히 박 화백을 만날 수 있었던 통로는 그가 모처럼 울산에서 마련한 전시 <박재동의 선사길 십리전>이었다. 지난 6일 반구대 암각화에서부터 천전리 각석까지 총 4km 구간에 걸쳐 선보인 이 전시는 '세상에서 가장 긴 전시회'라는 부제를 가지고 열렸다. 박 화백은 이 전시를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고향에 대한 보답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전시장소를 반구대암각화 일대로 정한 것은, 반구대암각화가 '그림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물에 잠겨있더라도 바람과 비에 견디며 역사를 지켜온 반구대암각화 앞에서 8여년의 역사를 가진 자신의 그림들도 전시하고 싶었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박 화백에게 있어 고향 '울산'은 들꽃과 칡 나무, 논고동과 어울리며 자연과 교우를 나눌 수 있었던 그의 예술세계의 밑바탕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항상 고향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에도 고향은 빠지지 않았다. 밭 매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삽화와 고향 풍경들이 그의 고향 사랑을 증명해 줬다.
 동네 아저씨의 모습으로 선보이는 전시인 만큼 이번 전시에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 풍경 , 삶 이야기, 찌라시아트 등 대중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소재들을 손바닥 만한 종이에 담아 약 800여점의 작품이 내걸렸다.

 '손바닥아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의 그림은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희망의 예술'로 통한다.
 박 화백은 시간이 없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꼭 손바닥아트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역시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은 꼭 큰 도화지에 그려야만 그림이다'라는 생각을 깨버려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면 낙서부터 시작해 어디에든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부터 해봐야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길가에 흩어진 작은 광고지를 주워 그 위에 만화를 새겨 넣은 '찌라시아트'도 그의 독특한 발상에서 나온 신선한 작품이다. 박 화백은 평소 '찌라시'를 모으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찌라시'에는 나뭇잎이 생존을 위해 땅 속 깊이 있는 물을 빨아들이듯이 생계를 이어나가려는 서민들의 생활모습이 담겨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박 화백은 그 위에 새로운 장면을 연출해 우리들 삶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 "울산은 문화예술도시 가능성 충분"

박 화백은 이번 전시를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게 해준 울주군과 울주문화예술회관의 노력에 감탄과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이 전시를 처음 구상할 때는 800여점이 아닌 1,000여점의 작품을 길게 내걸려 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기려 했던 울주군과 예술회관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실제로는 4km구간 800여점을 내걸었지만, 이것도 꽤 만만찮은 작업이다. 길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 사이, 바위 틈 위 등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은 그의 작품들은 전시를 준비해 온 실무진들의 땀과 노력이 있기에 더욱 빛나 보였다.

 박 화백은 적극적이고 성실한 이들의 모습에서 울산 문화예술의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울산이 비록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을 듣곤 했지만, 이들의 열정만큼 문화예술을 이끌어 나가려는 노력이 있다면 문화예술도시로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다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는 또 문화발전에 크게 힘이 되지 않아 보일 '울산의 산업구조'도 문화도시의 메카로 성장하기에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과 지자체, 기업이 한 마음으로 문화예술계와 연계해 발전시켜 나간다면 울산의 산업구조는 시민과 소통하는 새로운 대중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틀에 박히지 않는 자유로움이 그의 교육 철학

그는 만화가이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이기도 하다. 교육에 대한 열정도 만화 못지않게 크다. 그가 연재했던 만화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마지막 회의 제목은 '내가 학교를 만든다면' 이었다. 만화에는 학생들도 교사를 가르칠 수 있고, 동네 떡볶이 아줌마도 아이와 어른을 가르칠 수 있다'며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없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가르침에 대한 철학이다.

 전시 개막식 날에도 그는 아이들의 꿈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캐리커쳐 그려주기 이벤트'를 진행 할 때, 학생들이 앞에 앉으면 '꿈이 뭐니?'부터 물었다. 꿈에 대해 확실히 말하지 못한 아이에게는 '그래, 조금 더 있다 생각해도 되니 마음껏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풍요로운 꿈을 꾸는 아이들을 위해 그는 만화가를 꿈꾸는 아이들의 작품을 함께 내거는 가칭 '박재동과 친구들 전'도 생각하고 있다.
 
# 애니메이션 박물관 건립이 꿈

박 화백은 고향마을에서 현재진행형인 자신의 꿈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마을을 더욱 사랑하고 아이들은 풍성한 미래를 꿈꾸게 할 수 있는 곳,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박 화백이 항상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꿈이다. 주변에 논, 밭이 무성한 자신의 모교 '들꽃학습원'을 그대로 옮겨와 후손들이 그 마당과 방에서 놀기도 하고, 옛 물건과 사진, 글을 모아 역사박물관과 애니메이션 전시관을 만들면 그보다도 더 살기 좋은 마을은 없을 거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 <박재동의 선사길 십리전>은 고향을 알리는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는 1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오는 9월과 10월에 열릴 예정인 '외고산 옹기축제'에도 계속 연계해 개최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박재동의 선사길 십리전>, 그 곳에는 박 화백의 고향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꿈도 있다.
 4km의 긴 구간에 걸린 그림들은 고향에서의 기억부터 평범한 일상, 시사만화가와 교수로서의 삶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시사만화의 대부라고 불리는 그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오솔길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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