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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바다여행선 허문곤 선장은 승객들이 고래를 발견해 환호성을 지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장생포 선착장에는 한 낮 태양빛이 작렬했다. 뜨겁게 달궈진 갑판에서 만난 그는 환한 웃음과 옷매무새를 고치는 것으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잘 다듬어진 제복 차림이지만 검게 그을린 피부에는 파도와 싸운 지난 30년가까이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시원시원한 목청과 거침 없는 말투도 영락없는 뱃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풍긴 것은 날 것과 풍랑에 길들여진 투박함이 아니었다. 바다와 고래, 그리고 가족으로 마무리되는 그의 얘기에는 인간미와 소탈함이 진하게 뭍어있었다.
 파도에 일렁이는 고래바다여행선 위에서 허문곤 선장(53)의 고래 마중물을 자처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이젠 고래포인트까지 찾아냈어요"

파도가 잠잠할 때 바다는 배가 굴러가는 푸른 양탄자가 된다. 파도가 있을 땐 그 각도에 따라 구름과 하늘빛을 달리 품는 도화지로 바뀐다. 안개가 낄때면 산 정상 봉우리에서 산하를 내려다 보는 듯한 착각이 스친다.
 세계 어디어디에 있다는 거대한 몸집의 크루즈에 비할바 있겠냐만은 일렁이며 튀어 오르는 파도와 바다내음 서린 바람을 오감으로 느낄때의 운치만은 세계 제일이다.

 고래까지 본다면 금상첨화이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좋을 고래바다여행선이다.
 초대 선장인 허문곤씨가 배를 운항해온 지난 2년여간 바다로 다녀온 승객들은 그래서 행복했다.
 이를 위해 기관장, 항해사, 기관사, 사무장 등 나머지 7명의 직원과 그동안 209회를 운항하는 동안 생애 최고의 항해를 위해 하루도 빠짐 없이 머리를 맞댔다. 출항 전에 해상 일기는 물론 주위 수온 분포, 바람의 방향까지 잡아낸다.

 덕분에 그동안 36회의 고래발견 실적을 올렸다.
 그는 "이제는 갈매기떼가 먹이를 낚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포말만으로 멸치 등 어군의 이동을 짐작해냅니다"고 했다.
 실제로 수심 100m~120m 깊이에서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고래떼의 위치를 2km밖에서도 탐지기 없이 간파해 낸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울기등대 동방 80도에서 110도 사이 6~8마일 지점에서 고래발견 포인트도 찾아냈다.
 고래떼는 일본에서 시작된 해류를 타고 일단 수심과 먹이어장 등이 적합한 간절곶 등대쪽으로 몰려들었다가 묘박지에 왕래하는 어선을 피해 5~6마일 벗어나게 되는데 울기등대 일원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18년 마도로스 인생 '바닷사람 팔자'

'사주팔자가 바닷사람이다'. 바다에서 생의 절반을 살고 있으니 어릴적 조부가 던졌던 예언은 더이상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경북 포항 포구내 어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수산고등학교, 수산대학교를 졸업해 18년간 마도로스로 살았다. 당시 외항선을 타고 명태잡이를 위해 북태평양을 오갔고, 오징어배를 타고 포클랜드를 들락거렸다.

 이후 국립수산과학원 국가직 공무원으로 입사했고, 갑판장을 맡아 고래목시조사에서 그물을 다루는 트롤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고래바다여행선이 지난 2009년 3월 운항을 시작하면서 선장으로 발탁돼 지방직으로 이동해왔다. 당시 탐사선이었던 배도 함께 그를 따라 장생포로 왔다.
 3등 항해사에서 선장을 거쳐 연구원에 이르기까지 길게는 2년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 마음이 짠했기에 고민 없이 진로를 바꿨다.

 그런데 여행선이 주말에 운행되다보니 여전히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나누지는 못한다. 
 게다가 고래 발견율이 높아지면서 매 운항때마다 만석을 이루는 승객들의 설레임을 생각하면 단 하루도 쉴 수 없다.
 국립과학수산원 동기들이 벌써 몇차례 승진을 한 것과 달리 여전히 8급 공무원이고, 군생활을 하고 있는 첫째와 초등학교 4학년인 쌍둥이까지 슬하 3형제와 함께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지만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가족들이 그를 찾아 여행선에 함께 오른다.

 덕분에 승객들은 고래를 만나는 감격을 누린다.
 지난해에는 전국적인 입소문을 듣고 경남 진주산청 주민들이 단체로 연달아 3번이나 찾았고, 모두 고래를 목격하고 돌아가는 횡재를 누렸다. 선착장 바로 옆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돌고래를 길들이고 있는 직원들도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힘차게 유영하는 고래를 접한 것은 예상못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무한한 책임감이 가지게 됐다고.

 그래서 승객들이 고래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를 때 가장 감격스럽다.
 "얼마전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좋은 꿈을 꿨다는 지인으로 부터 그 꿈을 사기도 했어요. 그날 우연찮게도 그날 대기와 수온의 차이로 자욱하게 끼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면서 눈앞에 고래떼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지금도 그날 관람객들의 탄성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 이제 고래는 나의 또다른 인생

고래와 장생포는 이제 '인생'이다.
 과거 그저 배를 수리하거나 고래 탐사를 위해 들렀다 단지 소주 한잔 걸칠만한 곳이었던 장생포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처음 고래와 교감한 날부터다.
 고래바다여행선 시범 운항 기간이 채 끝나지 않은 2009년 4월13일 눈앞에서 마음껏 자맥질 치며 노니는 참돌고래 1,500여 마리를 목격하고 심장에서 시작되는 전율을 느꼈다.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환희였다.

 어릴적 고향에서 정치망에 걸린 고래를 처음봤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떨림이었다. 더구나 외항선원 시절 고래만 출몰했다치면 다음날은 곧잘 궂은 날씨가 찾아와 고생을 했던 탓에 고래를 원망했던 때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장생포에 대한 애정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다.
 때문에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이 들어서고 이와연계된 고래바다 여행이 알려지면서 과거 포경의 영화와 인적을 잃은 상실의 땅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할 때 무척이나 설레였다.

 그래서 더 어깨가 무겁다.
 무엇보다 승객들이 감항성이 커 흔들림이 적고, 성능이 개선된 여행선에서 안락한 관경을 즐길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 여행선은 과거 연구탐사선을 개조한 배이다보니 시속이 20㎞에 불과해 고래발견율이 낮고, 흔들림이 많아 멀미로 고생하는 승객들 볼 때마다 못내 미안했던 그였다.

 문 선장은 "울산은 일본에서 형성된 해류가 활성화되고 어장이 풍부한 기장군에서 포항 구간 중 길목에 해당해 고래의 여행의 최적지"라며 "울산이 공업도시 이미지를 벗고 전국 최고의 고래생태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할때까지 고래바다여행선에 몸을 싣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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