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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입맛이다. 다음달이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입추 (立秋)도 지난만큼 사실상 가을이 시작됐다고 봐야된다. 가을 바람이 솔솔 불면 어느새 여름 동안 그렇게 사랑했던 얼음 동동 띄운 냉면이 차갑게 느껴지고, 조금은 따뜻한 음식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가을철 제철 재료로 만든 가을 별미 요리라면 더욱 그렇다. 가을 전어, 가을 자연버섯 요리 등 다양한 음식이있지만, 그중 가을 추어탕이 으뜸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자가 합쳐져서 미꾸라지'추(鰍)'자가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어로 만든 추어탕은 가을철의 대표적인 보양식이다. 

고려 말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 처음으로 추어탕의 유래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나오지만 미꾸라지는 강이나 논에 흔하므로 서민들이 그 이전부터 먹어왔으리라 추측된다.
 이렇듯 옛 문헌에도 추어탕에 대한 효능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동의보감에는 미꾸라지 맛이 달며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어 비위를 주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했다. 또 본초강목에는 뱃속을 따뜻이 덥혀 주며 원기를 돋우고 술을 빨리 깨게 할 뿐 아니라 발기불능에도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 미꾸라지는 칼슘, 단백질, 필수 아미노산, 각종 무기질 등이 풍부해 오래전부터 기력이 없을 때 추어탕이나, 추어죽을 만들어 먹어왔다. 특히 여름 개장국, 가을 추어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초가을에 먹으면 더위로 잃은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특히 내장을 따로 제거하지 않고 모두 먹기 때문에 알과 난소에 들어 있는 비타민A·D까지 동시에 섭취할 수 있다. 또 양질의 단백질이 주성분이어서 피부를 튼튼하게 보호하고 세균 저항력을 높여주며 고혈압과 동맥경화, 비만증 환자에게도 좋다.

 

   
▲ 진장동 이정표 추어탕

#우거지에 된장국물

울산에서도 수십년동안 추어탕 하나만을 고집하며 장사를 해온 숨은 맛집들이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북구 진장동 '이정표 원조추어탕(☎287-6766)'집이다.

 이집의 추어탕은 우거지를 넣고 된장 국물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남도식 추어탕이다. 첫맛이 진한 국물이 근사하다. 채소와 부재료도 듬뿍 들어간다. 조미료를 대신해 고춧가루, 대파, 마늘, 소금, 후추 등 다양한 재료가 적재적소에서 맛을 낸다.

 조리법은 한결같다. 예전 방식 그대로 미꾸라지를 직접 손질해 갈고 모든 재료도 국내산만 고집한다. 또 일반적인 맹물이 아닌 이집만의 특유의 육수에 채소를 넣고 끓인 뒤 한번 쪄낸 미꾸라지를 나중에 넣는다. 미꾸라지가 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조리법이 한결같으니 맛도 저절로 따라온다.
 '이정표 원조추어탕'에서 맛본 미꾸라지는 입안에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고루 갈았기에, 먹기에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안에 넣자 깊은 국물 맛과 함께 시래기가 입 속에 녹아 들었다. 먹을수록 고소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 진장동 이정표 추어탕

곱게갈아 먹기에 불편함 없어
깊은 국물맛·시래기 식욕자극
소문난 맛에 영부인도 발걸음


 또 멸치와 함께 나온 마늘 밑밭찬도 미꾸라지의 비린내를 잡아 주고 풍미를 더했다.
 원래 이정표원조추어탕은 성남동에서 수십년간 추어탕 매니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집의 대표이자 모든 음식을 직접 조리하는 김태선(63·여)사장은 38년동안 장사를 이어왔다. 이제는 미꾸라지만 봐도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한눈에 알수 있을 정도라고.

 

 

   
▲ 진장동 이정표 추어탕

 김 사장은 "지금의 미꾸라지는 85%가 수입으로 우리들의 밥상에 추어탕으로 올라온다"며"우리집의 자랑거리는 전라도 남운에서 직접 공수해온 100프로 국내산 미꾸라지이고, 그중 3~5년된 몸통이 굵은 미꾸라지만 고집한다"고 말했다.

 

 

    지역에서도 이집의 맛이 소문나 김영삼 대통령의 전 부인 손명숙 여사도 찾아왔을 정도라며, 김 사장은 추어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김 사장은 "미꾸라지의 맛을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드는 비법은 된장"이라며 "된장의 비법은 비밀이지만, 매년 가을철 경기도에서 직접 주문한 매주를 사용하기에 맛이 구수할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추어탕에 빼놓을수 없는 제피가루 역시 김 사장이 직접 빻아, 시중에서 판매되는 재피가루와 비교를 거부한다. 김 사장은 "손님들이 제피가루통을 통째로 들고가는 경우도 종종있어 골치가 아프다"며 "그만큼 재료는 최고를 고집한다"고 웃었다.

 

   
▲ 신정동 할매 추어탕

#할머니 손맛 그대로

시골에서나 맛볼수 있는 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추어탕에 담은 집이 있다. 특히 이집 추어탕은 깔끔하고 먹기좋아 여성들도 많이 찾는다. 바로 남구 신정동 '할매추어탕(☎269-1141)'이다.

 할매추어탕은 추어탕과 추어튀김만을 주 메뉴로 하는 집이다. 메기매운탕과 명태찜이 있지만 계절메뉴로 분류돼, 식단표를 보고 고르고 할 것도 없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뚝배기에 추어탕이 담겨 나왔다. 걸쭉하고 얼큰한 국물을 떠 먹다 보면 미꾸라지 살점도 살짝 씹히는 게 특징이다. 들깨가루랑 산초, 얇게 썬 풋고추를 적당량 넣어 먹으니 입에서 단맛이 돈다. 우거지도 듬뿍 들어 있다.
 이 집의 추어튀김은 튀김옷을 아주 얇게 입혀 미꾸라지의 몸통이 그대로 비친다. 튀김옷을 두껍게 입히지 않아서인지 느끼하지 않고 과자처럼 바삭바삭하다. 양도 제법 많았다. 탕과 함께 먹는다면 서너 사람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 신정동 할매 추어탕

손으로 직접 걸러 '씹히는 맛'
대파·숙주 듬뿍…경상도 반찬
얇은옷 입힌 추어튀김도 인기


 추어탕에 들어가는 미꾸라지는 믹서로 갈지 않고 체에다 손으로 거른다고 했다. 가는 뼈는 살과 같이 내려가고 굵은 뼈는 걸러진다. 그래서 미꾸라지의 살이 씹혔나 보다.

 국물이 개운하고 깔끔한 이유는 대파, 숙주를 듬뿍넣고 거기에 비밀 장맛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또 미꾸라지도 직접 골라 국내산만 100프로 사용하고, 새벽 5시부터 3시간동안 솥에 고아내기 때문에 비린내가 전혀없다.

 반찬으로 파래, 갓김치, 배추김치가 나온다. 경상도 반찬으로 만들어 맛이 깊다.
 할매추어탕은 1970년께 김춘자(75·여)여사가 개업해 40년동안 지역 역사와 함께했다. 하지만 김 여사가 건강이 악화돼 현재 사위 도순봉(59)사장이 꾸려나가고 있다.
 도 사장은 "장모님(김춘자)의 손맛은 유명해 멀리 남창이나 호계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올정도다"며 "내가 그 장모님의 비법을 직접 전수받아 명성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정성껏 추어탕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 신정동 할매 추어탕

 실제로 음식도 도 사장과 부인 강명화(49·여)씨만 조리하며, 종업원도 외부인을 채용하지 않는다. 서빙 또한 딸이 직접맡아 하고 있다. 이는 손님들에게 음식맛 뿐만 아니라 서비스까지도 신경쓰기 위해서라고 도 사장은 말했다.

 음식과 서비스 모두 '정성'을 강조한 할매추어탕을 맛봐서 그런지, 예전 할머니가 손수차려 주시던 시골밥상이 자꾸 떠올라 미소를 짓게했다.
    서승원기자 uss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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