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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가방 극장'의 대표 전유성 씨가 청도에 코미디 극장을 마련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그맨 전유성 씨와의 일자대면은 마치 정전됐던 전기가 갑자기 돌아오듯 '번쩍'하고 이뤄졌다.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눈을 휘둥그레 뜨게 할 공연도 아니고, 멋진 건물도 아니었다.
 물론 짜장면, 탕수육, 간장, 소주병 조형물로 장식된 '철가방 극장'을 보고 조금은 놀라긴 했지만, '번쩍'하는 놀라움은 평범한 극장 관계자로 보였던 전유성 씨의 뜻밖의 등장이었다. 
 전유성 씨는 극장 맞은편 의자에 앉아 여유로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사전에 통화를 했던 극장 관계자라고 생각하며 다가갔더니, '아뿔싸!' 그 사람이 바로 전유성  씨였던 것이다. 
 1999년 개그콘서트 마지막 코너에서도 그랬다. 항상 전유성 씨가 '땡!'하고 소리치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썰렁하지만 끝내 관객들을 웃게 했던 그 때처럼 전유성 씨는 여전히 한순간 그임을 깨닫게 하는 '느낌표' 같은 사람이었다.
 
#소심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

"오기 전에 인터넷에 올라 온 기사들은 보고 왔겠지? 다른 기자들이 예전에 했던 흔한 질문들에는 대답 안 할 거니까 묻지마"
 전유성 씨가 꺼낸 첫 한마디에 당황했지만, 기자는 그런 선전포고(?)에 가장 궁금하고도 흔한 질문을 제일 먼저 던졌다. 평소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그이기에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이유를 물었다.
 "하도 끈질기게 전화했다고 하길래 귀찮아서 만나기로 한거야"
 단순하고도 시원시원한 대답이 기자를 웃게 만든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넘치는 대답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그가 또 '기인'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며 두 번째 선전포고를 놓았다.
 전유성 씨는 자신을 '기인'이라는 말 대신 '소심한 원칙주의자'라고 소개했다.
 '밥을 먹을 때는 술을 먹지 않는다', '식사로 라면은 절대 먹지 않는다', '늦은 새벽이더라도 반드시 횡단보도로 지나간다' 등 자신이 정해 놓은 생활규칙이라면 꼭 지켜야 한단다. 비록 모두 지켜나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원칙으로 정해 놓은 사항들은 최대한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원칙주의의 삶과 함께 그가 말하는 '소심함'은 지인들과 대화에서 나눈 약속들에서 비롯됐다.

 자주 만나지 않는 지인들이라도 '언제 한 번 그 지역으로 공연을 가겠다'라고 말을 꺼냈으면 그 공연은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고. 편하게 이야기 했지만 항상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던 사소한 약속들이 어디서든 배달되는 개그를 탄생하게 했다.
 기자는 "그럼 울산에도 언제 한 번 공연하러 와 주세요."라며 약속을 청했다.
 "공연 주문이 들어왔으니 언제든지 가야지. 우리는 공연을 배달하는 극장이니까 공연 시간도 주문에 따라 맞출 수 있어"
 그는 또 한 번 흔쾌히 공연 약속을 수락하며 따뜻한 정이 넘치는 전유성 씨만의 소심함을 보여줬다.
 
#개그맨을 꿈꾸는 사람들의 집합소

전유성 씨는 서울 토박이다. 그가 다른 광역도시도 아니고 다름 아닌 '청도'에 철가방 극장을 세운 이유는 뭘까.
 평소에는 '고향이 청도냐'라는 질문도 빈번히 받는단다.
 그가 청도에 자리 잡은 이유는 따로 없다. 여행길에서 만난 청도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서울이 아닌 시골 '청도'에 있는 철가방 극장인 만큼 단원들의 출신지는 대부분 경상도다. 어쩌면 우연히 전유성 씨의 눈에 들어온 '청도'는 지방에서 개그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철가방 극장'의 단원들은 거의 매일같이 공연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술 취한 아저씨를 흉내 내는 개그, 날카로운 부부 싸움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개그,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신나는 개그 등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공연으로 무대를 채운다.
 그런데 이 무대를 장식하는 단원들은 실제로 데뷔한 개그맨들이 아닌 '개그지망생'이다.
 25명으로 구성 된 전유성의 코미디 시장 2기 단원들은 이 곳에서 먹고, 자고, 연습하며 개그맨의 꿈을 꾸고 있다.
 단원들은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필요할 땐 입으로 직접 소리를 내며 실제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후배는 공연을 선보이고, 선배는 지도해주고. 이들의 모습은 마치 '스승과 제자'를 가늠케 했다.

 전유성 씨에게 '제자들이 잘 따라와 줘서 뿌듯하겠다'고 한마디 건냈더니, 그들은 '제자'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같은 극장에서 공연을 연습하는 '단원'일 뿐이지 결코 자신의 밑에서 가르침을 배우는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개그맨 지망생 단원들에게 있어 전유성 씨는 '시장님'이다.
 코미디 시장의 대표니까 그냥 '시장님'으로 부른다. '시장님'이라는 말을 꺼내며 웃어 보이는 전유성 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 애칭이 정말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언제까지나 후배들의 '기둥'으로 남고파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흔히 우리는 '개그맨'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개그맨'이라는 단어는 전유성 씨가 직접 창안한 용어다. 대학시절 '개그'가 영화에서 '관객을 웃게 하기 위해 하는 대사나 몸짓'이라는 뜻임을 배운 것이 떠올라 웃기는 사람을 '개그맨'이라 칭했다. 현재는 일본뿐만 아니라 영어권인 미국에서도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쓴다 하니 과연 대부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코미디 계의 대부'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전유성 씨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는 항상 뒷자락에 있었다. 주인공은 정말 하고 싶었지만 말투가 워낙 느려 웃음 포인트를 살리지 못하니까 감독님이 역할 배정을 안 해주더란다.

 "주인공은 정말 하고 싶었지. 그런데 내 말투가 워낙 느리고 웃음 포인트를 살리지 못하니까 감독님이 안 시켜주시더라. 그래서 남들 안하는 할아버지 역할을 맡기로 했지. 당시 방송 3사의 할아버지 역할은 내가 다 했어. 경쟁자 하나 없는 할아버지 역할을 했더라도, 어쨌든 그 할아버지가 전유성이라는 걸 모든 국민들이 다 알잖아. 그럼 됐지 뭐"
 중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그는 묵묵히 뒤에서 기둥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방송계를 떠났기에 텔레비전에서 전유성 씨를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전유성이라는 '기둥'은 청도에서 개그지망생 후배들을 받쳐주고 있다.

 오후 2시. 철가방 극장의 오후 공연이 시작됐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세 번 선보이는 철가방 극장의 공연은 항상 전유성 씨의 담백한 멘트로 시작한다.  
 "보통 공연에서는 극단의 제일 막내, 뒤에서 걸레질 하는 막내가 바람잡이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극장에서 바람잡이는 저 전유성이 합니다. 이 공연은 우리 후배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우리 극장은 조금 남다른 공연장입니다. 이 커튼 보이시죠? 이건 정말 어디에도 없는 커튼이에요. 예술에 전당에도 없고 어느 공연장에도 볼 수 없습니다. 왜요? 공연장에서 이런 파란색 커튼 보신 적 있습니까? 하하하."
 개그계의 조상이자 개그맨들의 든든한 지원군인 전유성 씨는 지금도 후배들의 뒤에서 유쾌한 웃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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