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반구대 환상곡'으로 울산과 연을 맺은 전인평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공업도시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울산의 수려한 자연환경에 매료됐다"는 전 교수는 "태화강 대나무 십리대밭길, 대왕암 등 지역 곳곳에 숨겨진 비경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 학술대회서 암각화 전문가로부터
'샤먼조각 루트·대륙 주머니 역할'등 전해듣고 관심
반구대'상상 이상의 감동'음악으로 알리고자 작곡

"반구대 암각화의 중요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울산의 자랑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 아름다운 선율로 새 새명을 불어넣은 중앙대학교 전인평(66) 명예교수.

 국악관현악곡 '반구대 환상곡'을 울산시에 헌정하기 위해 지난 21일 오후 울산을 찾은 전 교수를 만났다. 이날 헌정식 및 연주회에서 선사인들의 삶을 녹여낸 아름다운 음악으로 1,000여명의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전 교수는 "반구대 암각화의 고향인 울산에서 이 곡이 연주되고 울산시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게돼 기쁘고 영광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전 교수는 "부디 이 음악으로 반구대 암각화의 중요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면서 "아울러 문화도시로서의 울산의 새로운 면모를 세상에 알리는데 작은 힘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전 교수는 울산과는 아무런 연이 없다.
 또 순수 음악인으로 문화재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 어떻게 반구대 암각화를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됐을까?
 전 교수가 반구대 암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모스크바 국립대학 동양학 학술회의에 참가해 러시아 암각화 전문가 루삐노스 교수로 부터 "반구대 암각화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는 설명을 듣게 됐다.

 전 교수는 "반구대 암각화의 샤먼 조각은 시베리아 몽고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샤만 루트를 나타내는 것이며, 한반도는 대륙에 붙은 주머니 역할을 해 아시아 대륙의 문화 양상을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흥미진진한 설명을 러시아 교수로 부터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으로서 모르고 있던 우리 문화를 외국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부끄러웠다고.
 이후 오랜 세월동안 반구대 암각화를 연구하면서 '반구대 환상곡'을 작곡, 반구대 암각화를 음악을 통해 알리기로 했단다.

#깎아지른 절벽 바위 위 그림, 놀랍고 신비로워

울산을 찾아 직접 본 반구대 암각화는 상상 그 이상의 감동이었다고.
 "깎아지른 절벽 바위 위에 그림을 그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웠다"는 전 교수는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다양하고 생명력이 넘친다"면서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어 먼 옛날 선사시대에 이 땅에 살던 조상들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냥 장면,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무당,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그물 그리고 영혼을 싣고 하늘로 오르는 배의 모습.

 작살맞은 고래,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고래, 함정에 빠진 호랑이, 새끼를 거느린 사슴 등 바위에 새겨진 200여점의 그림은 전교수에게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그들의 간절한 희망으로 다가왔다고.
 전 교수는 "절벽에 무딘 돌로 그림을 쪼아 새긴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면서 "그만큼 그들에게는 간절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냥감이 풍부해 지는 것, 고래를 많이 잡는 것, 동물이 새끼를 많이 낳는 것, 그리고 사후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가 영생을 기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가슴으로 다가온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삶을 모습을 음악으로 녹여낸 것이 바로 '반구대 환상곡'이다.
 '반구대 환상곡'은 모두 4악장.
 1악장은 고동체 모임의 새벽을 묘사한 것이고 2악장은 죽은 영혼이 배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을 묘사했다.
 3악장은 공동체의 간절한 기원을, 4악장은 굿을 마친 후의 흥겨움과 환의에 찬 모습을 묘사한 '환희의 춤'이다.

 이가운데 2악장에 사용한 주제는 인도 저녁의 '라가'로 인도음악의 종교적인 색채와 저녁 풍경의 은은함이 표현됐고 4악장은 몽골초원에서 받은 감흥을 주제로 했다.
 전 교수는 "우리 음악은 먼 옛날부터 여러 다양한 요소가 시냇물처럼 흘러들어와 오늘날의 큰 강을 이루었다"면서 "외국음악 주제를 사용한 것은 또 하나의 작은 시냇물 줄기를 한국음악에 보태고 싶은 마음에서다"고 설명했다.

#대중성 있게 변신을 꾀하는 '반구대 환상곡'

선사시대의 신앙과 예술을 보여주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감동을 녹여낸 '반구대 환상곡'이 울산시민에게 뜻깊은 선물이긴 하지만, 사실 일반시민들이 감상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다.
 순수예술 음악으로 작곡됐기 때문. 감상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 본연의 기능에 접근하기에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 교수는 "순수예술의 음악은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그 의미를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면서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곡이 고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을 신비롭고 평화로운 정신세계로 안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도록 대중성이 짙어진 분위기로 또 한번 변신을 꾀할 전망이다.
 서울의 한 퓨전국악단체에서 '반구대 환상곡'을 현대적 감각으로 편곡,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
 이밖에도 2~3건의 공연이 예정돼 있단다.

#울산소재 창작곡으로 인연 이어가고파

전 교수는 '반구대 환상곡'으로 맺은 울산과의 소중한 인연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공업도시라는 선입견에 가려진 울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마음을 빼앗긴 것.
 특히 자연생태를 잘 보존하고 가꾸어 시민들에게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십리대밭길, 대왕암의 수려한 경관 등에 감탄했다고.

 '반구대 환상곡'에 이어 울산을 소재로한 창작곡을 작업하고 싶단다.
 전 교수는 "울산지역 시인들이 시를 쓰고, 지역 관현악단, 성악가들이 협연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면서 "울산을 위한 작품 탄생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차기작은 '태화강 대나무 십리길', '대왕암 찬가' 등이 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