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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억새길 2구간의 백미인 단조늪. 해발 900m이상인 이 고산습지에는 역새를 비롯 수많은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환경보고다. 단조늪의 억새너머로 2구간의 시작점인 영축산과 함박등 체이등(오른쪽 부터) 등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억새의 계절이다. 간월산(1,083m), 신불산(1,209m), 영축산(1,059m), 재약산(1,108m), 천황산(1,189m), 가지산(1,240m) 등 영남알프스의 광활한 평원에는 지금 억새가 깃털 같은 꽃을 피우고 있다. 울산시는 이 길을 '하늘 억새길'로 이름 붙였다. 산정에 서면 마치 하늘 위에서 억새를 내려다보는 듯 한 느낌이다. 하늘억새길의 1코스는 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까지, 2코스는 영축산~청수좌골~죽전마을까지, 3코스는 죽전마을~향로산 갈림길~재약산(수미산)~천황재~천황산(사자봉)까지다. 4코스는 천황산~샘물산장~능동산~배내고개까지, 5코스는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까지로 나눴다. 모두 30㎞ 남짓 되는 거리다. 이번 산행은 2코스다.
 

 

   
 

# 높고 청명한 가을날에 떠난 여행
하늘 억새길 1구간(간월재~영취산)을 걸을 때는 한여름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속살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2구간 답사의 택일(?)은 신중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산행에 나선 지난 23일은 하늘은 높고 청명한, 완연한 가을하늘이었다. 제2구간은 영축산을 기점으로 청수좌골을 거쳐 죽전마을 까지다. 당초 1박2일 코스로 만든 길을, 하루 한구간씩 답사하려다보니 매번 산을 오르내릴 수 밖에 없다. 출발지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 2구간의 종착점인 죽전마을에서 신불재까지 가 1구간 코스를 따라 영축산에 오른 뒤, 2구간인 영축산~단조늪~청수좌골을 거쳐 다시 죽전마을로 회귀하는 길을 잡았다. 이렇게 길을 잡으면 오르는 길에 '하늘억새길'의 주변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인 파래소폭포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신불재 너머 보이는 가파른 영축산 전경
죽전마을(배네치아 산장)에서 신불산자연휴양림 하단 관리사무소까지는 산림휴양지를 찾는 방문객들을 위한 도로가 나 있다. 하지만 코스 답사를 위해 차를 초입에 세워두고 걷기로 했다. 장안사를 거쳐 10여분 걷다보면 유료주차장과 청수골팬션이 나온다. 영취산으로 오르는 청수좌골 등산로는 이 청수골팬션안 물레방아 쪽으로 난 산길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팬션안으로 진입하는 길이 막혔다. '사유지로 등산로가 아니라는 안내판'이 생뚱맞게 서 있다. 하늘억새길이 확정됐지만 코스를 안내하는 표지가 없다. 등산객들은 다리를 건너기 전 우회길을 이용하고 있었다.

 

   
▲ 2구간 주변경관의 백미 파래소 폭포.


 팬션을 지나 왼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신불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가 나오고 여기서 1km 남짓 오르면 파래소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파래소폭포를 뒤로하고 10여분쯤 내려오면 산림학습장이 나오고, 근처에 나무데크로 만든 신불재로 가는 등산로 진입로가 나온다. 초입은 가파르다. 깎아지른 절벽을 어깨에 걸고  오솔길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숨이 목젖까지 찰 즈음부터는 능선 허리를 따라 완만한 등산로다. 7, 8부 능선 즈음(임도를 만나지 전) 계곡을 건너는 교차점을 만난다. 오르던 길을 계속가면 신불재 쪽이고, 계곡을 넘어 오르면 영축산 아래 단조늪의 끝을 만난다. 이 오솔길을 오르면 쉽게 영취산에 오를 수 있지만, 지난 1구간 답사 때 미처 보지 못한 신불산 구간을 담기위해 신불재를 계속 오르기로 했다. 이 교차점에서 5분여 오르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서 곧장 오솔길로 다시 접어들면 산림 생태계가 많이 바뀐다. 나무의 키가 작아지고, 산죽이 숲을 이룬다.

 1시간 30분가량 만에 오른 신불재 데크에는 이른 억새를 보기위한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곳은 간월재에서 영축산으로 이르는 하늘억새길 1구간의 가운데쯤이 된다. 동쪽으로는 가천리 쪽으로 난 가파른 하산길이다. 북쪽으로 신불산 정상으로 이르는 까마득한 데크와 주변의 억새, 그 너머의 푸른 가을하늘이 압권이다. 저 길 끝 어딘가에 천상이 있을까? 발길을 영축산이 남쪽으로 돌렸다. 데크가 끝나는 곳, 산마루에서면 저 멀리 영축산 정상이 보인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잦아들고 산행길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소리가 가끔씩 들린다. 데크가 설치되지 않은 길의 동쪽 사면은 대부분 직벽에 가까운 절벽길이다. 삼성 SDI공장과 양산쪽 놀이시설, 골프장이 발아래다. 멀리 울산시가지의 모습과 동해의 푸른 물빛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갓 피어난 억새사이를 비집고, 단조늪을 지나 영축산에 올랐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9월말의 태양은 아직 뜨거웠다. 햇살을 피할 수 없는 산행은 고행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벌써 3시간 넘게 이어진 산행에 지친 상황에서 마지막 정상은 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을 쉬었다를 반복하며 영축산 정상에 섰다.
 
# 남쪽으로는 함박등 서쪽으로는 배내골로
영축산의 높이는 1056m. 가지산에서 간월산, 신불산을 거쳐 내린 준봉이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축산은 동쪽 사면은 깎아지른 듯 급경사이고 서쪽 사면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동 지형을 이룬다. 산정이 화강암으로 된 예리한 톱니바퀴형으로 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성채 같다.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과 북쪽의 풍광은 극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세상에서 다시없을 절경이라는 점에선 똑 같다. 남쪽으로 함박등과 체이등으로 가는 능선 길은 가파르다. 톱날처럼 뾰족 선 봉우리들이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 길 동쪽 사면을 타고 내려가면 천년고찰 통도사고, 서쪽 사면으로 가면 청수우골을 거쳐 배내골로 갈 수 있다. 북쪽은 단조늪을 거쳐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으로 이어진다. 북서쪽에서는 재약-천황봉-능동산과 그 너머로 배내재-상운산이 산너울 처럼 일렁인다
 
# 석양에 물든 통도팔경 '단성낙조'
정상에서 땀을 식힌 후 봉우리를 내려서면 하늘억새길 2구간이다. 영축산에서 출발한 2구간의 첫 만남은 가을 내내 은빛물결로 넘실댈 거대한 평원, 단조늪이다. 이 평원 한쪽에 쌓인 수많은 돌들은 단조산성(丹照山城)의 잔해들이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주둔했던 관군들이 왜적 침입 때 가천들까지 나가 전쟁을 치렀다 한다. 영축산 절벽을 이용해 쌓은 이 성은 양산, 울산, 밀양을 방어하는 유용한 진지였다. 국방의 요새로서뿐 아니고 경치도 일품이다. 석양에 물든 산성 정취는 '단성낙조'(丹城落照)라 하여 예부터 통도팔경 중 하나다.

 단조늪은 해발 940~980m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고산 습원으로 각종 희귀 동·식물이 자라고 있다. 늪의 크기는 습지부가 약 7,000㎢이고 습지부 주변의 고산 초원 지대를 포함하면 약 30만㎢로 정족산 무제치늪의 3~4배이며, 지금까지 보고된 것 중 가장 크다. 이곳 에는 억새 말고도 식물 183종과 동물 64종이 서식하고 있다. 습지 식물은 방울고랭이·동의나물·물매화·흰범꼬리 등 30여 종, 고산 식물은 동자꽃·노랑제비꽃·쥐오줌풀·잠자리란 등 24종이 발견되었다. 또한 희귀 식물로는 환경부 지정 특정 관리 식물인 설맹초·솔나리·개족도리풀 등과 습지 군락으로 진퍼리새 군락·방울고랭이 군락·박새 군락 등이 있다.

 

 

 

   
▲ 신불산자연휴양림 숲 체험장

 

 

 길은 중앙 습지부를 관통해 만든 방화선으로 나있다. 하지만 억새군락지 곳곳에 미로 같은 오솔길이 만들어져있다. 사람 키만큼 자란 억새들 때문에 길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지나는데 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 길이 아닌 곳으로 벗어나면 거친 억새의 줄기가 발목을 챈다. 해서 무심코 들어간 길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무심코 억새밭을 해쳐 나오면 길은 다시 갈린다. 곧장 내려가면 신불재 오르는 길과 만나고, 남서쪽 길을 택하면 2구간 길인 청수좌골 길이다. 청수좌골로 가는 길은 남쪽의 영축산과 봉우리들을 보는 눈 맛이 좋지만 숲으로 접어들면 그저 산속에 난 오솔길일 뿐이다. 2구간으로 굳이 이 길을 택했는지 알 수는 없다. 오히려 신불재 등산로와 연결된 길을 택했다면 자연스럽게 파래소폭포가 있는 신불산자연휴양림을 거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수좌골 하산 길은 참나무숲 사이 오솔길 같은 길의 연속이다. 1시간쯤 내려갔을까, 들리는 물소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별다른 특징 없는 오솔길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계속 내려가면 죽전마을이다. 죽전마을은 2코스 종점이자 3코스 시작지점이다. 죽전마을엔 베네치아산장, 영남알프스펜션 등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5시간의 산행을 마친 후 '하늘억새길 2구간'은 아직 설익인 구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유지여서 들머리가 막힌 청수좌골 보다는 영축산에서 단조늪을 거쳐, 신불재 등산로로 들어서 파래소폭포가 있는 자연휴양림쪽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과 단조늪의 억새는 잊을 수 없는 감흥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야흐로 억새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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