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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0일-숨은 밤을 찾아서
 
 아침 출근길, 가랑비가 흩날립니다.
 '계획한 밤 줍기 체험을 못 하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길게 내릴 비는 아니었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집게, 비닐봉투, 면장갑 등 밤 줍기를 위해 단단히 준비해 온 친구들을 보면서
 "나 주워가세요."
 '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아이들이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그 염려는 학교를 나서면서 사라졌습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단맛을 더해가는 석류,
 덩실덩실 호박, 주렁주렁 수세미, 흙담 위에서도 자라는 명아주
 여러 가지 가을풍경과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익한 체험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 걸음이 제일 늦은지라 밤나무가 있는 산에는 제일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밤송이가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명당자리를 발견하였습니다.
 풀숲에 떨어져 숨어 있는 밤들을 찾아내고 밤송이를 까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즈음엔 뱀도 더러 나온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내심 무섭기도 했지만
 아이들 까치발로 서 있거나 달아날까 봐 차마 표현하지 못합니다.
 밤송이 속에서 밤톨들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탐스럽다며 환호를 질렀습니다.
 처음엔 자기 봉투에 서로 많이 담으려고 했는데
 우리는 니것 내것 없이 모두 함께 모으기로 했습니다.
 벌레에 물리기도 하고, 밤가시에 찔리기도 했지만
 즐거운 가을 나들이로 기억되기에 충분한 체험이었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점심을 바쁘게 먹고, 밤을 고르는 작업을 해 보니 벌레 먹은 것도 많았습니다.
 괜찮은 것들만 모아 10개씩 봉투에 담아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내일 삶아서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며칠전 교장선생님께서 아침 산책길에 주웠다며 한 줌 가져다주셔서 삶아 먹었습니다.
 그땐 양이 적어 아이들 군침만 더 삼키게 했었는데 내일은 우리 아이들이 맘껏 먹을 수 있을 듯합니다.
 반질반질, 땡글땡글한 밤톨처럼
 이 가을,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속이 여물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길천초등학교 홈페이지 1학년 학급홈피 학급일기에 올라온 김향숙 교사의 체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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