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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에서 비롯된 7천여년의 고래잡이 역사를 간직한 울산은 고래의 땅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만큼 고래와 관련된 기록 또한 풍성하다. '고래논'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고래와 친숙한 곳이 아니면 생겨나지 못할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고래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딱 들어맞는 말임에 틀림없다.

 '고래논'이란 '고래실'의 옛 말이다. 고래실은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은 기름진 논을 뜻 한다. 고래에서 유래했다. 고래의 그 큰 덩치가 크고 풍성함을 나타내듯 논이 기름져 수확량 또한 많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고래의 땅 울산의 북구 어물동에 고래논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어물동의 '물청청 고래논'이 바로 그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울산의 방어진 북쪽 해안가 주전동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생업인 고기잡이를 하러 자그마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한창 고기를 잡느라 골몰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사나운 물결이 일었다. 난데없이 엄청나게 큰 고래 한 마리가 물기둥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어부는 급하게 그물을 거둬올려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도망치기에 바빴다. 하지만 고래는 어부가 탄 배를 뒤쫓아왔다.

 마침내 고래는 그 큰 입을 쩍 벌리고 어부와 배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어부는 정신이 아찔하여 한동안 실신한 뒤 깨어났으나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고래 뱃속에 갇힌 것을 알았다. 고래 뱃속에서 벗어나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어부는 더듬거리며 뱃전의 칼을 잡았다. 고래의 배를 긋기 시작했다. 죽을 힘을 다하여 긋고 또 그었다.

 그러자 고래의 뱃가죽이 쭉 뿠어지고 말았다. 드디어 바깥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탈출한 어부는 물위에 올라와 숨을 내쉬었다. 꼼짝 못하던 죽을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어부는 헤엄을 쳐서 육지에 상륙하고는 실신하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쯤 흘러간 뒤에 이웃 사람들이 어부를 발견하고 어부를 흔들어 깨웠다.

 어부는 정신을 가다듬어 고래와 싸운 이야기를 했다. 이웃 사람들은 큰 배를 가지고 고깃배와 고래를 찾으러 나섰다. 고래는 죽어서 물위에 떠 있었고, 주위는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부와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한나절이나 걸려서 고래와 배를 끌고 육지에 닿았다. 고래의 크기는 초가삼간 다섯 채만큼이나 컸다. 고래를 팔아서 논을 샀다. 마을에서는 고래를 팔아서 산 논이라 하여 '고래논'이라 했다.>

 지금도 북구 어물동 황토전 마을의 가운데에 있는 고개의 동남쪽에 있는 물 맑은 물청청-일명 물청진, 물칭칭, 수청진-골짜기에 들어서면 해송백이라는 산기슭에 '고래논'이라 불리는 기름진 논을 볼 수 있다. 서 마지기쯤 되는 이 논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 걱정이 없는 일등 호답(好畓)이라고 한다. 논 한 마지기가 200평쯤 되니까, 이 논은 600평 가량 된다.

 고래논 전설과 함께 울산의 또 다른 고래 전설을 알아 본다. <옛날 옛적에 아름다운 처녀가 바닷가에 살고 있었다. 고래 한 마리가 처녀에게 반하여 청년으로 변한 뒤에 육지로 나왔다. 둘은 관계를 맺어 자식들을 낳았다. 처음에 나온 자식들은 고래였고, 그 다음에 낳은 자식들은 사람이었다. 고래 자식들은 바다로 돌려보냈다.

 아버지가 늙어 돌아가자 자식들이 식량을 구하러 바다로 나갔다. 가장 잡기 쉬운 것이 고래였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희들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제를 죽였구나"하고 몹시도 애닳아 했다. 끝내 슬픔을 못 이긴 어머니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사람과 고래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전설이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자연생태사상을 반영한 전설인 셈이다.

 고래에서 비롯된 갖가지 전설을 간직한 울산은 타의에 의해 26년여 전부터 포경을 하지 못하지만, 이제는 고래를 관광자원으로 한 고래관광도시로 새롭게 발돋움하고 있다. 고래와 인간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래 전설과 고래 이야기가 관광자원의 밑바탕임을 깊이 깨닫고는 수집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보다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했으면 한다. 고래 전설과 이야기가 모아지고 여러 장르의 문화상품으로 태어나 울산이 그야말로 고래의 땅으로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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