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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억새길 5구간(배내재~간월산~간월재)은 지금 단풍이 절정이다. 사진은 배내재에서 간월산으로 오르는 길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간월산 임도와 오색 단풍숲. 그 위로 패러그라이딩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오색 옷을 갈아입은 가을 산이 손짓하고 있다. 북쪽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은 어느새 남으로 내려와 영남알프스를 뒤덮었다. '하늘억새길'은 이제 단풍 길이다. 아직 은빛 억새가 피어있고 가을 햇살에 눈이 부시지만 자꾸만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든 단풍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의 마지막 제5구간은 배내재(680m)에서 배내봉(966m)을 지나 간월산(1,086m)을 거쳐 간월재로 이르는 4.8km 구간이다. 이 구간은 지금 단풍이 절정이다. 능선을 따라 난 오솔길 발아래가 온통 단풍이다. 정상부에서 시작된 거대한 단풍 띠는 벌써 5부 능선까지 내려갔다. 정상부의 회색과 하단부의 초록 사이, 오색 단풍 띠는 한 폭의 수채화다.

# 눈아래 펼쳐지는 오색 수채화

   
 

하늘억새길 5구간의 들머리는 배내재(680m)다. 최근 터널이 뚫리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상북 석남사 길을 통해 배내재로 오르는 길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터널위에는 주차장과 몇몇 상가를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차량이 많다. 현재 간월재로 가는 임도는 모두 막혔다. 이 때문에 간월재로 오르는 많은 이들이 이 배내재를 출발지로 하고 있다.
 배내재에서 간월산으로 오르는 초입은 밋밋하다. 배내봉까지 온통 나무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나무데크는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30분 쯤 오르니 배내봉(966m)이 일행을 맞는다. 30분 만에 1,000m급 봉우리에 올라 영남알프스의 비경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배내봉에만 올라도 확 트인 사위를 감상할 수 있다. 동쪽으로는 등억온천지구와 언양시가지, 멀리 울산도심과 울산항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재약산 수미봉과 사자봉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너머로 켜켜이 준봉들이 줄을 서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지산 봉우리와 쌀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영남알프스 준령들에서 살짝 비켜난 고헌산도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그 아래로 너른 상북 언양 들판이다. 가을은 도시와 농촌을 확실하게 구분지어 놓고 있다. 회색빛의 도시와 달리 농촌은 지금  황금색의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 간월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간월(재)평원 전경. 10만평의 간월평원에는 어직 은빛 억새가 한창이다.


 배내봉에서 간월산으로 가는 길은 남쪽이다. 10월 마지막 햇살을 받은 배내봉 갈대들이 아직 은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갈대밭의 규모가 크지 않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갈대밭 사이로 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배내봉에서 간월산 정상까지는 줄곧 등억리 온천 지구를 굽어볼 수 있는 능선길이다. 온통 억새와 철쭉, 참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멋진 길이다. 오솔길 왼쪽으로는 깎아지른 암벽이다. 용기를 내어 발아래로 눈을 내리는 순간, 황홀한 광경이다. 밝음산 쪽 능선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넋을 놓고 바라본다.
 배내봉에서 1시간 조금 넘게 경사도 낮은 봉우리를 몇 개 지나면,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과 맞닥뜨린다. 동행한 이가 "간월산의 깔딱고개다"라고 한다. 문수산 정상부에 이르는 가파른 고갯길이 생각난 모양이다. 하지만 온통 데크로 깔아놓은 문수산 깔딱고개 길보다는 훨씬 걷기에 수월하다.
 숨이 턱밑까지 오를 즈음, 오솔길 한 가운데 거의 드러누운 소나무가 한그루가 있다. 힘든 등산객들에게 쉬어가라는 듯 마치 공원의 의자 같은 안락한 느낌이다. 둥치가 반들반들한 것을 보면 실제로 많은 이들이 앉아 쉬어가는 모양이다.
 잠시 편안했던 길은 다시 가팔라지고, 오솔길의 양편의 나무도 작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억새가 드문드문 보인다 싶더니 느닷없이 정상이다. 간월산 정상은 신불산 영취산 재약산 봉우리들에 비해 소박하다. 사람 키보다 작은 표지석 두 개가 달랑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까. 사람들은 정상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간월재 쪽으로 길을 간다.
 간월산(肝月山)은 산기슭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61년(철종 12)에 간행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간월산이 '看月山(간월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등억리의 사찰은 '澗月寺(간월사)'로 표기되는 등 간월산의 표기가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간월산의 북쪽과 남쪽은 각각 능동산과 신불산이 이어져 있고 서쪽은 배내천이 흐른다. 이천리 등에 산지촌이 발달하고 이천리와 북쪽의 덕현리는 고갯길로 통한다. 동북쪽으로는 태화강(太和江)의 지류인 작괘천(勺掛川)이 발원하고 산록면은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 남천(南川) 주변에  언양이 위치한다.
 지금 간월산은 '肝月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간'(肝)'은 사람의 장기의 이름과 같다. 간월산은 영남알프스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산임을 상징한다.

   
▲ 간월산 정상의 표지석.


 간월산 정상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길은 온통 억새다. 이제부터가 간월 평원이다.
 멀리 벌써 회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신불산 칼바위가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칼바위 능선은 멀리서 보기에 마치 물고기 등지느러미처럼 날카롭고 뾰족하다. 베일 듯 위태로워 보이는 저런 곳에도 발길이 미칠까 싶은데 아뿔싸 그곳에도 형형색색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간월평원 데크 길 왼쪽으로는 기묘한 형태의 암릉들이 자태를 뽐낸다. 간월재 동쪽 홍류폭포, 등억온천단지로 이어지는 고불고불한 간월산 임도로 산행을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10여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면 하늘억새길의 시작점인 간월재(900m)다. 거대한 U자 협곡에는 억새들이 은빛 물결로 굽이친다. 간월재는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8m)의 능선이 내려와 만난 자리다. 두 산의 능선을 타고 내려온 억새들이 이곳에서 만나 거대한 억새의 바다를 펼쳐 보이고 있다. 절정이다. 바람이 산자락을 간질일 때마다 하얗게 물결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파도다.
 
# 패러글라이드 등 산악 레저 중심지 도약

간월재엔 지금 쉼터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돌탑 인근에 마련된 활공장에서 동호회원들이 노란색 패러글라이더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산악자전거 팀도 눈에 들어온다. '하늘억새길'이 어느덧 산악 레저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넓게 펼쳐진 평원 사이 억새 사이로 몸을 낮췄다. 고산(高山)의 억새는 모두 키가 낮다. 정상부 계곡과 능선에는 대기의 이동이 항상 긴박하기 때문이란다. 안개가 심할 땐 큰 능선 하나쯤은 1, 2분 사이에 감춰버리기 일쑤다. 그런 기류(氣流)와 바람 속에서 모든 식물들은 필요 이상의 생장을 스스로 억제한다. 자연에서도 겸손의 미덕은 유효하다.
 등산객들이 데크 이곳저곳에서 도시락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여름 '하늘억새길' 1구간 답사때 운무 속에서 초록빛깔로 하늘거리던 억새는 이제 수명을 다한 듯 생기를 잃어 버렸다. 하지만 광활한 억새밭은 여전히 눈부시고, 눈을 즐겁게 만든다. 그리고 바람과 억새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없이 정갈해 지는 것 같다.
 발길을 돌려 원점회귀하기 위해 다시 간월산으로 오를 때 간월재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노란색 패러글라이더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패러글라이더는 곧이어 간월산 단풍 속에 파묻히면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간월산을 포함해 지난 두 달여 동안 답사했던 신불산(1,209m), 영축산(1,059m), 재약산 수미봉(1,108m), 재약산 사자봉(1,189m) 등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이 새삼 떠오른다. 억새가 막 피기 시작했던 여름 끝자락에 나선 첫 답사에서 예기치 않은 비구름 때문에 미처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간월재~신불재 구간의 원거리 풍광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답사의 의미는 남다르다. 여름과 가을사이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하늘억새길'과 그 길가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또 억새를 테마로 한 '하늘억새길'이 충분한 상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원점회귀를 포함해 40km의 산행길이 더욱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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