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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쌀쌀하고 비가 올 듯한 흐린 날씨가 계속 이어진다. 이런 날이면 특히 더 생각나는 게 매콤한 두루치기나 낙지볶음이다. 매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확 잡아 당겨주는 이 음식들은 요식업계의 스테디셀러다. 매콤달콤 칼칼한 맛의 두루치기와 낙지볶음. 어떤 걸 고를 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섞어 먹으면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맛난 재료를 섞어 파는 음식점을 찾아 봤다.


▲ 다현정 '섞거돈'
#두루치기와 낙지볶음
두루치기는 철 냄비에 쇠고기나 돼지고기, 오징어, 조개 등과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국물이 조금 있는 상태로 볶듯이 만든 한국의 향토음식이다. 찌개와 볶음의 중간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등 지방마다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는 두루치기가 전해진다. 각 지방의 두루치기는 이름만 같을 뿐, 재료와 조리법이 제각각이다. 주재료에 따라 돼지두루치기나 두부두루치기, 삼겹살두루치기, 오징어두루치기, 닭두루치기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경남지방의 두루치기는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전골처럼 국물이 있게 만드는 것이 특색이다. 다듬은 콩나물, 무채, 배추 등 채소와 쇠고기 등의 육류, 표고버섯 등의 재료를 채썰어 따로따로 볶아 모은 다음, 양념장을 만들어 간을 맞추고 물을 부어 고기의 국물이 다른 재료에 밸 정도로 끓인다. 쑥갓을 넣고 미리 풀어 놓은 달걀을 끼얹는다. 이것이 익으면 실고추 등과 같은 고명을 얹어 상에 낸다.


 경북지방에서는 주재료를 돼지고기로 한 볶음 형태이다. 대강 익힌 고기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다진마늘 등의 양념을 넣어 볶은 다음, 다시 각종 야채를 넣어 볶아서 완성한다. 흔히 음식점에서 파는 돼지두루치기가 이와 같은 모양새다. 삼겹살로 두루치기를 만들면 기름 낀 쫀득한 육질이 또다른 감칠맛을 더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두부와 쇠고기, 배추속대, 버섯, 호박고지 등을 함께 볶아 만든 두부두루치기를 즐겨 먹는다.


 매콤쫄깃한 맛은 낙지볶음 맛의 매력이다. 해삼은 바다의 인삼이라지만 낙지는 개펄 속의 산삼이라고 한다. 특히 가을에 잡히는 낙지는 맛도 좋아서 봄 조개, 가을 낙지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의 <탐진어가(耽津漁歌)>에서도 형인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낙지 예찬론이 담겨있다.


 연포탕, 숙회 등 다양한 낙지 조리법이 있지만 요즘에는 매콤한 낙지볶음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낙지볶음 요리로는 '조방낙지'가 있다. 낙지 앞에 수식어로 쓰이는 '조방'은 엉뚱하게도 낙지와는 관계없는 조선방직(朝鮮紡織)의 줄임말이다. 일제강점기 때 부산 동구 범일동 부근 자유시장 자리에 조선방직이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이 공장 옆에 있는 좁은 길이 낙지볶음 골목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조방낙지는 이 조선방직에서 근무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힘든 노동을 끝내고 퇴근하면서 술 한 잔과 함께 즐겼던 음식인 셈이다. 이후 조방낙지는 부산을 벗어나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 다현정.
#섞어먹는 재미
삼겹살 특유의 기름낀 쫀득한 육질과 매콤달콤한 양념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두루치기와 매콤쫄깃쫄깃 낙지볶음. 쌀쌀한 날씨에 식욕을 돋우는 두 음식의 치열한 경합이 머리 속에서 펼쳐진다. 어느 하나 포기하기가 힘들어지는 그 순간, 탁월한 답안이 떠올랐다.


 '섞거돈'이었다. 섞거돈은 남구 달동 <다현정>에서 판매하는 음식 메뉴이다. 생소한 이 이름의 음식은 바로 두루치기와 낙지볶음, 돼지껍데기의 만남이다. 다현정에서는 섞거돈으로 표기한다. 석거(石距)는 낙지의 한자어이기도 하다.


 원래 이 집은 고기 전문이다. 지난해부터 식사메뉴를 추가하면서 이집만의 특별한 섞거돈을 선보이고 있다.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낙지볶음도 두루치기도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양념이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뭐 같이 넣고 볶아봤죠" 다현정에서는 적어도 낙지볶음과 두루치기 중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손님은 없을 것 같았다.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니 밑반찬이 나왔다. 노랑, 빨강, 초록, 갈색…. 순간 밥상에 오색 무지개가 떴다. 밑반찬을 낼 때 색이나 조리방법이 겹치지 않도록 항상 신경쓰기 때문이다. 밑반찬 만으로도 이미 눈과 입은 즐거웠다.


 조금 더 기다리니 드디어 '섞거돈'이 나왔다. 접시 한 가득 담긴 낙지와 돼지고기, 야채. 침을 꼴깍 삼키고 젓가락을 들었다. 먼저 집어든 것은 낙지 다리 하나. 매콤달콤한 양념과의 조우 뒤에 질기지 않고 연하면서도 쫄깃한 낙지의 식감이 느껴졌다.


 이번엔 삼겹살. 말할 필요도 없다. 삼겹살 특유의 기름진 고소함이었다. 섞거돈에는 저녁에 구이용으로 판매하는 삼겹살이 들어간다. 삼겹살 특유의 고소함과 씹는 맛이 섞거돈에서는 오롯이 느껴진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돼지껍데기는 쫀득하면서도 부드럽다. 팽이버섯, 호박, 당근, 양파도 너무 볶아 처진 것이 아니라 맛있게 익었다. 식사도 식사지만 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볶는 방법이 다르단다.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넣고 볶은 것 같지는 않다. 낙지를 볶으면 물이 많이 나는데 다현정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부 손님들이 어떻게 볶느냐고 많이 물어오지만, 가르쳐준 적 없다고 한다. 볶는 방법을 다시 한 번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미소 뿐이었다.


 양념맛은 깊은 편이고 살짝 달달하다. 칼칼하게 매운맛은 제일 마지막에 혀를 자극한다. 같이 내주는 김가루와 큰 그릇에 섞거돈과 따끈따끈 밥을 넣고 비벼 먹으면, 이것은 또다른 별미다.


 배를 다 채우고 나니 옷걸이에 걸린 분홍색 돼지모양 앞치마가 눈에 띈다. 양념이 옷에 튀지 않도록 손님이 사용하는 거란다. 귀여운 앞치마를 보고 남자 손님들도 일부러 입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고. 집에서 먹듯 편안하게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 다현정. 이곳에서 섞어먹는 재미 섞거돈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다현정 ☎267-9210. 섞거돈 1인분 7,000원(2인분 이상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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