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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는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형법 제269조와 270조에 기인하고, 모자보건법에 의해 보완되는 체계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0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낙태 수는 약 17만회에 이른다. 그러나 인터넷상에 퍼진 정보들에 따르면, 비공식적으로 낙태가 50만 회 혹은 100만 회에 이른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낙태법의 '부분적인' 사문화적 성격 때문이다.

 사문화(死文化)란 법령이나 규칙 따위가 실제적인 효력을 잃어버렸음을 뜻한다. 낙태관련법과 현실을 살펴보면,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강한 처벌과는 대조적으로 낙태 관련 의사들에 대한 단속이 상대적으로 경미하다. 왜 이러한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데, 이는 강력한 낙태법 단속으로 인해 야기되는 상충되는 결과 때문이다.

 상황을 가정하여 낙태법을 완전히 사문화시켜버린다고 하면, 사회에 낙태가 만연해지며 그로 인해 생명 경시 문화가 형성되는 등 나쁜 결과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만약 엄격한 단속을 시행한다면, 약 50만 내지 100만으로 헤아려지는 비공식적인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전문의에게 시술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흔히들 '돌팔이'라고 부르는 비전문의에게 낙태를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이는 곧 산모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낙태법이 현재의 부분적인 사문화적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부분적 사문화적인 낙태법의 성격을 학교의 두발에 관한 규정에 적용하여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학생과 학교 측이 갈등하는 공통된 이슈라 하면 두발규제가 아닐까 한다. 학생은 모름지기 짧고 단정한 머리를 해야 한다는 다소 고지식한 학교 측과, 시대의 변화로 인한 규제 완화 혹은 폐지를 주장하는 학생 측의 대립은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결론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측은 두발 자유가 시행될 때 발생할 학교 기강의 혼란을 우려하고, 학생 측은 말이 통하지 않는 학교에 분통을 터뜨린다. 양쪽이 서로의 주장을 고수하려 하고, 두발단속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매듭짓기가 어려운 것이 흔한 이유이다.

 그렇지만, 사실 학교 측과 학생 측 모두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공동선적인 기준이 분명히 존재한다. 학생들 측에서도 염색, 파마 등은 심하다고 인정하고, 학교 측에서도 머리 길이에 대한 적정한 정도를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분적 사문화적인 성격을 학교 규정에 도입하여, 비록 그 길이나 정도를 명시하지는 않더라도, 학교와 학생 측의 공동선적인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이 어떨까. 물론 이 공동선적 기준을 확고히 할 때, 양측 모두 집단적 이기심을 배제하고 교류하는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성공한다면, 개방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맞춰 학교가 한 자국 진보적인 발걸음을 내딛은 결과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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