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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수자원 대책을 두고 울산시와 문화재 당국의 대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울산시가 제시한 '유로변경' 추진안에 손을 들어 주었다 하건만, 문화재청은 댐 여수로를 낮추는 '수문설치'를 위해 30억원의 예산까지 반영할 정도로 문화계 내부의 입장은 완고하다.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둔 갈등을 접하면서 경부고속철도 경주구간 노선과 역사 위치를 두고 당시 건설교통부와 문화계 그리고 경주시민과 울산시민이 갈등하던 때가 되새겨진다.
 경주 도심에 경주역사가 들어서면 신도시가 형성될 것이고 그러면 천년고도 경주의 경관을 크게 훼손한다며 고고학계를 비롯한 문화계에서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6월 문화재위원회와 이듬해 3월 문화체육부가 경주도심 통과노선을 외곽노선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지만 건교부는 당초 노선을 고수하였다. 1995년 8월 문화재관리국이 경주노선 구간에 대해 문화재 발굴허가를 취소하고, 국무총리실도 조정회의를 수 차례 했건만 의견차를 해소하지 못했다. 그 때는 YS정부가 개혁을 힘껏 추진한 집권 초기였지만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이듬해 4월까지 도심통과 노선을 고수한 건교부도 두 달 뒤 우리나라의 영향력있는 지식인 77인이 경주도심통과 반대 선언을 하자 20일 뒤인 6월 5일에 제3의 경주노선을 채택키로 방침을 바꾸었다. 새로운 4개 대안 가운데 건교부는 울산역 추가 증설 요인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울산과 인접한 내남면 역사를 선호했다. 그러나 또다시 경주남산 인근이란 고고학계의 집요한 반대로 현재의 화천리 신경주역이 들어서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경주역사가 울산에서 먼 곳에 입지하게 됨으로서 격역논리와 대통령선거전을 활용하여 오늘날의 KTX울산역이 생기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울산역사 개통의 최고공로자는 문화계란 말도 나돈다. 한마디로 문화유적을 발굴하는 작은 꽃삽이 기계 삽으로 땅을 파내는 포클레인을 이긴 결과였다.
 이제 반구대암각화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 숨을 가다듬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볼 때도 되었다. 대통령이 유로변경안을 지지했다지만 지금은 대통령의 령이 잘 먹히지 않을 MB정부 후반기이다. 문화재와 관련된 사안과 충돌될 때는 문화재 당국과의 협의도 필요하지만 문화계인사들과도 진정어린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심의위원회는 이미 유로변경안에 대해 세 차례나 부결시킨바 있다. 지금은 전면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오늘날 상황을 숨죽이고 지켜보면서 정보를 교환하며 공유하고 있다한다. 지난번 울산시의 관련 간부 공무원이 장관을 비난했다고 해서 문화계 내부에서는 속병을 새기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물 문제도 물론 생존의 문제로 문화유산 등재보다 더 시민에게 현실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도시 뉴욕도 오늘날 경제도시보다 문화도시를 더 큰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문화계를 이해하려는 입장도 가질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지시를 내세우면서 잠깐 그 자리에 앉은 문화재 당국자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문화고고학계와의 소통을 건의하고 싶다. '터널유로변경'에 대한 보완적 해법의 자문을 구할 수 있으면 정말로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암각화 앞 임시제방을 만들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큰 '운문댐'보다는 울산의 수계가 있는 '밀양댐' 물을 끌어들일 때 까지 물 수급에 대해서는 현상을 유지하고 암각화 훼손도 중단시킬 필요가 있다. 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이후 임시제방을 걷어내 원상회복시키고 그 뒤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는 것도 지금 물속에 잠겨두고 논쟁하고 훼손을 재촉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울산시도 마침내 이 '한시적 유로변경안'을 제안했다는데 지금으로서는 최적의 대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터널 유로변경안'을 고수하려고 대통령을 찾는 것 보다는 '한시적 유로변경안'에 대해 조용하게 문화계 인사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더 급선무이다. 꽃삽과 포클레인이 할 일이 따로 있음도 인정하고 해법을 찾을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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