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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신라 불교문화
2011년 11월 23일 (수) 22:10:11 김종경 kimj@ulsanpress.net
   

울산은 신라의 해외교류 창구였다. 자연스레 앞선 당나라의 불교문화도 울산을 통해 들어오게 마련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장 스님이 당나라에 유학갔다가 울산을 통해 귀국한 일이다. 자장 스님은 울산에 신라 호국불교의 3대 사찰 중의 한 곳 태화사(太和寺)를 지었다. 울산은 불교문화가 활짝 꽃피었고, 당연히 높은 문화수준을 갖췄으리라.


 울산은 자장(慈藏, 590~658) 스님이 내세운 신라 호국불교의 거점이었다. 자장 스님은 선덕여왕 5년(636년) 당나라에 가서 오대산 문수보살에게 기도했다.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 등을 갖고 선덕여왕 12년(643년)에 귀국했다. 울산 땅인 하곡현(河曲縣)에 내렸다. 당나라에 있을 때 태화지(太和池)에서 만난 신인(神人)과 약속한대로 태화사(太和寺)를 울산에 지었다. 태화사는 번성했으나 고려 말에 폐허가 됐다. 조선 초기에 새 단장을 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졌다.
 자장은 대국통(大國統)으로 불교교단을 이끌면서 흩어졌던 민심을 모으고, 취약했던 선덕여왕의 정치적인 입지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 힘썼다. 신라의 이데올로그였던 셈이다. 울산은 자장의 호국불교 사상이 활발하게 실현됐던 곳으로 자리잡았다. 태화사와 동축사, 문수사, 간월사, 혁목암, 망해사 등이 호국불교를 반영한 절이었다.


 울산은 자장의 역할로 문수신앙의 활발한 현장이었다. 원효 스님이 가르침을 받은 낭지(朗智) 스님이 문수산 동쪽 봉우리 영취산에 머문 이후로는 법화신앙의 성지이기도 했다. 낭지 스님은 법화경(法華經)에 통달했다.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승보살의 헌신적인 자세와 실천이 감동적이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 역시 법화경에 통달한 연회(緣會) 스님으로 인해 법화신앙이 꾸준히 이어졌다. 지혜의 추구와 함께 자비의 실천에도 애썼다. 대중 속에 파묻혀 대중의 교화에 힘썼다는 것이다.


 원효(元曉, 617~686) 스님 역시 큰 발자취를 남겼다. 대곡천 상류 천전리 각석 근처 반고사(磻高寺)에서 머물렀다. 영취산의 낭지(朗智)와 대안(大安), 혜공(惠空), 보덕(普德) 스님 등으로부터 배웠다. 대중 속에 파고들며 신라사회에 만연한 부정과 차별적인 신분질서, 정복의 논리를 씻어내는 일을 실천했다. 지금의 울주군 웅촌면 고련리에 있었던 운흥사(雲興寺)를 지었다. 59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
 울산에도 신라 하대에 들어서면서 선종(禪宗) 사찰이 세워졌다. 신라는 하대에 접어들자 지배층의 부정부패에다 사회에 만연한 퇴폐향락 풍조로 패망의 길을 걸었다. 불교는 이론과잉의 교학위주로만 흘러 민중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선종이 도입되면서 변방에서부터 선종 사찰이 건립됐다. 울산에도 도의(道義) 스님이 가지산문의 석남사를 열었다. 석남사는 나말여초에 불교의 변혁과 고려라는 새로운 왕조의 교체를 상징하는 절이었다.


 울산에 심어진 신라 불교문화를 학자들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째가 신라의 국가불교, 호국불교의 주요 거점이었다. 자장이 뿌리내린 것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황룡사, 통도사와 함께 신라 호국불교 3대 사찰 태화사가 반영했다. 둘째 문수산의 동쪽 봉우리 영취산이 문수신앙과 법화신앙의 성지였다고 한다.
 셋째 자장과 함께 신라 불교의 큰 봉우리 원효의 활동이다. 젊은 시절 반고사에 머물면서 낭지를 비롯한 여러 고승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바탕으로 무애행(无碍行)을 실천했다. 그의 사상은 다툼의 화해라는 '화쟁(和諍)'과 다름을 근원으로 모으고 소통시키는 '회통(會通)'으로 요약된다. 당대를 넘어 지금의 시대는 물론 영원토록 이어질 참다운 지침이다.
 넷째 석남사의 등장이다. 산라 말에 이론과잉으로 치닫던 교학위주의 불교는 문자를 아는 지배층에게는 호응을 받았지만, 실천성은 약화됐다는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기존 체제의 유지에만 적극 봉사함으로서 백성의 고달픈 삶은 외면했다. 체제에 비판적이고 해체적인 성격의 선종이 들어왔다. 수도 경주에 가까운 울산에, 그것도 오랜 기간 호국불교가 융성했던 곳에서 선종 사찰이 들어섰다는 것은 그만큼 혁신을 기대하고 있었음이 아니랴. 그렇게 물이 고여 썩게 되면 새로운 시대가 오게 마련이다. 혁신의 바람은 늘 필요한 법이다. 울산의 신라 불교문화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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