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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6일. 날씨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게 맑음이다. 영화 예고편을 봐도 그렇듯, 그날 여행지 정보를 모두 머릿속에 넣고 떠난다면 그에 대한 기대치는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두 기생이 술에 취한 왜장을 안고 투신한 곳'. 오늘 이기대에 대한 정보는 딱 하나뿐이다. 주소가 적힌 메모지 한 장을 들고 이기대공원 입구에 들어섰다.



# 조금 더 걷는 것으로 시작하다


 걸으면 걸을수록 기대치는 수직 상승 중이다. '두근두근'. 심장박동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높은 경사도 수직 상승 중이다. 경사 때문인지,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설레는 마음이라 믿고 걸어본다. 아, 그런데 자꾸만 전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걸어도, 걸어도 공원 입구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가용을 타고 왔다면 조금만 걸어도 됐을텐데, 괜히 버스를 탔나 싶지만 그래도 공원에 왔으니 걸어봐야겠다. 평소보다 조금 더 걷는 것. 이것이 산책코스를 찾는 묘미 아니겠는가.
 
#울창한 소나무와 푸른 바다의 조화

드디어 이기대공원관리소가 보인다. 더 올라가야 하는가 싶어서 사람들을 뒤따라 가봤더니, 이제는 내려가야 한단다. 푸르고 울창하게 뻗어있는 소나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드넓게 펼쳐진 깊고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른 보람이 있다. 거칠게 내쉬었던 숨을 가다듬고 바다를 향해 다시 한 번 크게 호흡했다.
 향긋한 바다냄새, 알싸한 소나무향이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다른 산책공원보다 있는 그대로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이기대공원이기에 자연을 온 몸으로 안을 수 있다. 이날도 자연을 만끽하러 온 동호인들과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대학생들, 등산 커플룩을 갖춰 입고 나온 부부, 드라이브 나온 가족들까지. 이날따라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옷차림도, 표정도 한결 가벼워 보였다.
 


# 기암괴석과 어울린 바다의 향연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해안가에 서서 낚싯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이 곳은 빼어난 경관뿐만 아니라 전문낚시꾼의 낚시터로 아주 좋은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낚시꾼들은 각자 오늘은 대어를 낚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서있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지겨울 법도 한데, 미끼를 물 물고기의 신호를 기다리는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낚시꾼들의 뒷모습에서 또 하나 배워간다.

 여유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은 또 하나 있다. 밀려들어오는 파도가 철썩철썩 칠 때마다 파도의 모양과 높이가 다르다. 한 모습으로 밀려들어와 기암절벽사이와 부딪혀 다시 나뉘는 하얀 파도,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침식지대의 예술작품, 이것은 왜장과 바다로 동반 투신한 두 기녀를 기리는 자연의 외침이 아닐까 싶다. 
 
#군사보호구역 덕분에 남겨진 비경

이기대공원의 해안산책로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지상으로 올라갈수록 산 속을 가까이 볼 수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바다를 만나볼 수 있다. 좀 더 비교를 해보자면, 지상으로 올라가면 산책 데크가 마련돼 있어 편안히 걸을 수 있고, 아래로 내려가면 바위를 건너야 하는 조금은 험한 길이 나온다.
 머리는 좀 더 힘든 길을 걷자 하고, 몸은 자꾸만 편한 길을 택하라고 부추긴다. 조금 고민되는 상황이지만, 오늘은 머리의 선택에 따르기로 했다. 울퉁불퉁 크고 작은 바위의 감촉 그대로가 발밑으로 느껴진다.

 바윗길을 따라 걷다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군대의 초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군인 두 명이 보초를 서서 주위를 살핀다고 한다. 딱 두 명이 가만히 서있기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군인이 된 양 보초자세를 취해봤다. 앞을 내다보는데, 철근으로 만든 총 받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얼핏 새총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녹이 슨 총 받침대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1993년까지 이 곳은 군사보호구역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난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장병들은 이 곳에 서서 나라를 지키기도 했지만, 이기대의 자연을 지키기도 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 광안대교, 해운대, 달맞이언덕까지

바윗길에서 언덕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은 동굴 같은 큰 바위가 하나 보였다. 동굴이라 하기엔 작은 입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입구에는 작은 돌들이 탑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의 작은 소망 하나 하나가 담겨 있는 소원 탑이다. 소원 탑 뒤로는 넓은 바다와 함께 부산의 상징인 광안대교와 해운대해수욕장, 그리고 달맞이공원이 아늑하게 보였다.
 이기대공원은 그런 곳이다. 망원경처럼 크게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부산의 명소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장 먼저 들러야 할 부산 관광지는 바로 이기대공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기대공원 산책 코스는 '광안리-이기대-오륙도'를 거치는 코스로, 부산의 갈맷길 중 하나다. 이기대공원입구를 중심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왼편으로 가면 광안리해수욕장이, 오른편으로 가면 오륙도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날은 오륙도 방향으로 가는 코스를 걸었는데, 초행길이라 그런지, 가는 여정이 그리 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끊길 듯 이어지는 길을 계속 걸었다. 반대편 전망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여럿 보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출입구에서 산책을 시작해 반대쪽으로 걷는 길은 또 얼마나 달라 보일까.
 저 멀리에는 둥글게 기암절벽을 둘러싼 철조망이 보였다. 과거 군사작전기지라고 했으니 그 흔적인듯 싶었다. 철조망 쪽으로 걸어가면 작은 군부대가 나오는데, 해안산책로는 여기서 끝이란다. 무언가 빠트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전망대에서 마무리하다

마무리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하기로 했다. 굳이 데크에 따로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앞서 산책길에서 바라본 전경과는 또 다른 느낌. 조금 더 아득하면서도 한 곳, 한 곳, 짚어볼 수 있다.
 수면 위 유람선을 따라 시야를 옮기다 보면 광안대교, 해운대, 부산요트경기장, 누리마루 APEC 광장, 달맞이공원을 자연스레 들여다 볼 수 있다. 걸어오면서 눈에 담았던 모든 풍경을 배경으로 머릿속에 그려본다. 예고편 없이 마음가는대로 걸어본 이기대공원은 한 없이 푸르고 맑았다. 이런 재미없는 표현만으로는 모자라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어떻게 말로 거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찾아가 보는 것. 겨울이 다가오더라도 좋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리 차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거친 날씨가 이어지더라도 이기대공원의 의연함을 이길 수 없기에, 이 곳에선 감히 추위에 움츠러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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