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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출문학상' 상패를 품에 안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맡겼다. 울산과의 두 번째 이별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세 번째 만남이 머지않아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남편을 따라 어색한 발걸음을 풀어 놓은 것이 울산과의 첫 만남이었다.
 현대중공업을 마주하고 있는 서부아파트 116동 앞에서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파트 마당 한쪽을 꽈악 채우고 있는 오토바이 행렬! 동굴처럼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나를 보며 남편이 빙그레 웃었다.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는 거야."
 며칠 후, 살림살이들이 제자리를 찾아간 뒤에야 나는 울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산책을 즐기는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미포사택이었다. 푸른색 기와지붕에 빨간 벽돌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집 앞엔 꽃나무들이 겨울을 견뎌내느라 온몸에 힘을 꾸욱 주고 있었고 대나무는 행여 곧은 마음이 흐트러질까봐 또랑또랑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정겨운 골목을 거닐며 내 마음의 연못엔 기쁨의 물무늬가 일었고 머리 한쪽에선 벌써 시작(詩作)에 들어가고 있었다.
 "커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우리 집에 찾아온 첫 손님은 나처럼 키가 작은 경원, 재원이 엄마였다. 그 곁엔 아지(강아지 이름) 엄마, 그리고 601호 순자 언니!
 그들은 차를 마시며 우리집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을 보곤 몹시 놀라는 얼굴이었다.
 "웬 책이 이렇게 많아요?"
 "아동문학을 하고 있어요."
 조심스레 입술을 열며 나는 동시를 읊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들의 인연은 정말 못 견디게 아름다웠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지 엄마의 기타 연주와 노래에 가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어느 날은 빙 둘러앉아 그림동화책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하곤 했다.
 그림동화책에 홀딱 빠져 있던 나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부도서관 동화 창작반에 발을 들여 놓았다.
 바다 냄새가 살금살금 들어오던 교실, 강사이신 문선희 선생님을 비롯해서 30여 명쯤 되는 학우들의 열정에 교실은 들썩거렸다.
 매주 동화책 한 권을 읽고 소감을 발표할 땐 책 속의 주인공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 뒤에 이어지던 신랄한 비판! 그리고 여러 방면에서 접근하던 창작!
 수업이 끝난 뒤엔 밥집으로 장소를 옮겨 열띤 토론이 계속되었다.
 "삶이 곧 문학입니더. 삶이 정직해야……"라며 지칠 줄 모르고 창작의 방향을 알려 주시던 문선희 선생님, 행여 그 방향을 놓칠까봐 선생님의 손가락으로 모여 들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한 주에 한 번 있는 수업 시간을 기다리다 못해 목소리로 달려와 안부를 묻던 학우, 내 동시집을 읽고 박수를 쳐주던 학우, 보고 싶었다며 단숨에 달려와 나를 끌어안던 학우,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놓고 나를 초대하던 학우, 그리고 기도의 옷을 입혀 주던 문선희 선생님!
 울산에서의 삶은 두 해도 채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 못 견디게 아름다운 울산에서의 삶은 내 작품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태어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약력
1964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1996년 아동문예문학상에 동시가, 2007년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동시집 (잠자리와 헬리콥터), (손수건에게), (불량 식품 먹은 버스), (흙탕물총 탕탕)을 펴냈으며 수원문학상 작품상을, 제5회 서덕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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