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엇이든 돋보이는 '경쟁력'이 있어야 주목을 받는 시대다.
나만의 방, 내가 사는 집, 또 우리가 사는 마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건 모든 사람들의 당연한 욕구다.
그렇게 조그만 어촌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닥나무 밭', 지금은 '장어마을'로 불리고 있는 이 마을의 사연은 무엇일까.

▲ 제전마을은 늘 푸르다. 사시 푸른 바다를 끼고 돌미역과 함께 장어로 새 도약을 꿈꾼다.


# 공주를 사랑한 장어

제전마을을 찾아가는 길. 처음부터 탁 트인 드라이브 코스로 시작한다. 북구청에서 무룡터널을 지나자 바다가 안길듯이 다가온다. 정자항 입구에서 왼쪽으로 쥬전방향으로 가다보면 제전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사랑길 제전장어입간판이 있어 찾기 쉽다. 마을은 바닷가를 끼고 있어 사시사철 푸르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 사이를 지나 제전마을에 도착했다.

 좁은 골목과는 다르게 마을 입구는 마당 앞에 와있는 양 넓었다. 그리고 얼마 전 작업을 완료한 아기자기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바닷속 물고기를 타일로 표현해 더욱 앙증맞다. 벽화를 따라 걷다보니 '눈 먼 장어의 사랑이야기'라는 마을의 설화가 보인다. 사랑하는 공주를 위해 태평양 바다까지 헤엄치는 장어를 위로하러 많은 장어들이 제전항에 모여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설화에서 보 듯 제전마을을 대표하는 상징은 '장어'다.
 
# 장어를 소재로 한 마을기업

'장어'를 대표 상징으로 하는 제전마을은 지난 7월 장어구이를 소재로 마을기업을 만들면서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마을회관을 재건축해 '사랑길 제전장어'라는 이름으로 장어요리를 판매하고 있는 이 마을기업은 어촌계장 김명찬(57)씨를 비롯한 마을주민 7명이 운영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의 연령대가 60~70대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을기업을 비롯해 이 마을의 분위기는 주민들이 보내온 세월과 같이 푸근하고 정이 넘친다.

 총 163명 80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젊은이들을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젊은층이 40대 중반이다.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이기에 멸치, 복어, 조개, 소라 등 각종 해산물을 손 뻗으면 잡을 수 있어 과거 이 곳은 경제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각종 해산물로 쏠쏠한 재미를 보던 제전마을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바다 일을 기피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그들은 도시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제전마을의 '장어'는 10년 전에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장어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마을 곳곳에 들어서면서 타지의 사람들도 제전장어를 맛보러 관광을 자주 다녀갔단다. 그러나 불법으로 운영하고 있는 포장마차였기에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의 낙은 하루하루 모여드는 '사람구경'이었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서 세상과의 원활한 소통도하지 못했을 뿐더러, 도시외곽에 있는 어촌마을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엔 어려웠을 터. 최근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중반쯤인 수요일이나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점심, 저녁시간 이 곳에는 장어 맛을 보러오는 사람들로 북적하다.  

▲ 제전장어는 참숯에 구워먹는 재래식 장어구이로 전국 500여곳의 마을기업 중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 참숯에 구워먹는 재래식 방법

'사랑길 제전장어'가 특히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재래식 장어구이'를 고집하는 마을기업 운영진들의 굳은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원조'라는 이름을 걸고 장어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들어서고 있지만, 단연 이 곳이 '전통 장어 구이'를 파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제전앞바다에서 통발이나 줄낚시로 직접 장어를 잡는다. 마을 주민 3~4명이 돌아가면서 장어잡이에 나선다. 또 오븐이나 가스레인지 불이 아닌 천연 참숯으로 굽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방에서 미리 구워서 제공하는 방식이 아닌, 손님이 직접 구워먹을 수 있도록 생 장어를 상에 내 놓는다. 물론 재료만 가져다주고 알아서 구워먹으라는 것은 아니다. 김명찬 어촌계장이 직접 나서 구워주기도 한다.
 장어를 구워먹는 게 생소한 젊은이들에게는 방법을 가르쳐줘 직접 요리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평일 저녁, 사랑길 제전장어를 찾은 김우현(28)씨는 "직접 구워 먹는 재미와 함께 밑반찬도 깔끔하게 나와 단골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 집의 음식은 조리를 직접 하는 어머니들의 그윽한 손맛으로 만들어진다. 새빨간 김치는 매워 보이지만 입에 착 감길 정도로 안 맵고, 미역, 나물, 시금치, 멸치볶음 등도 조미료를 쓰지 않고 조리해 더욱 감칠맛이 돈다.
 
# 2층에서 마을역사 한눈에

이 마을은 1729년부터 '제전'이라 불러왔는데, 딱나무(닥나무의 사투리)가 많아 '딱밭'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해온다.
 그만큼 과거 이곳에는 넓게 펼쳐진 바닷가 주위로 창호지를 만드는 나무인 '닥나무'가 뻗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닥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며 생활을 이어갔다.

 이 가게 2층으로 올라가면 딱밭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1970년대 이전의 마을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면, 과거 어촌의 행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새마을운동 이전인 마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김 어촌계장이 마을 자료를 정리하면서 발견했다. 그는 작은 사진을 확대해 커다란 액자를 만들어 벽에 걸어뒀다. 자연포구를 배경으로 초가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마을의 모습은 지금과 같은 듯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 장어만큼 미역도 유명

제전마을에서 장어, 닥나무 이외에도 유명한 것은 '미역'이다.
 제전앞바다가 자연산 미역의 산지이기 때문이다. 미역이 제철인 매년 4월이 되면 상인들은 꼭 이곳을 찾아 미역을 사간다. 워낙 맛도 좋고 유명하다보니 우선 이 마을의 미역을 구입한 뒤에 다른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단다.

 상인들이 거의 모든 미역을 사가고 나니 정작 마을 주민들이 먹을 수 있는 미역은 적정량 밖에 없을 정도. 그만큼 제전마을 미역의 인기도 장어만큼이나, 아니 장어보다도 더 높다.
 
▲ 마을회관을 이용한 제전장어 판매장.

 
#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

한때 번성기를 누리다 주춤했던 이 마을의 활기는 점점 뜨거워질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을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사랑길 제전장어'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마을기업의 대표 김명찬 어촌계장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며 활기 넘치는 제전마을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2층으로 운영하고 있는 마을기업의 범위를 좀 더 넓혀 앞마당에서도 바다를 보며 장어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명실공이 '장어마을'로 우뚝 서기 위해 마을에 남아있는 젊은 층들이 마을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함께 나서겠다는 것이다.

 마침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2011년도 우수마을기업에도 '사랑길 제전장어'가 선정됐다. 전국 500여 마을기업을 대상으로 3차에 걸친 평가를 거쳐 16개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된 것. 우수마을기업 선정에 따른 인센티브로 사업개발비 2,000만원을 지원받아 내년에는 마을기업의 내실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제전항도 주민들의 의지에 새하얀 파도로 응답하고 있다. 그 바다 속에는 공주와의 사랑을 쟁취하기위해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눈 먼 장어도 있으리라. 제전항에는 희망을 바라보며 헤엄치는 장어가 있고, 마을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마을주민이 있기에 미래는 밝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