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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읽기'는 불편하다. '읽기'보다 '보기'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속도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낳았다. 가벼움은 단순하고 날렵한 강점 때문에 우리 사회의 주된 흐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가벼움은 금방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속도와 결합한 '보기' 문화의 맹점이다. 향토서점이 문을 닫고 도서관이 입시와 입사시험 준비장으로 변질되는 이유도 이 같은 현상과 무관치 않다. 결국 해답은 '읽기'에 있다. 산업수도·소득수준 최고 부자도시의 명맥은 있지만 문화도시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울산의 경우 특히 읽기 문화의 담금질이 시급하다.

▲ 울산 4개 시립도서관 '북스타트 운동'.


12월 현재 공립·작은도서관 96곳 전국최저
지자체·비영리 단체간 협력체제 구축 통해
콘텐츠 개발 등 시민 자발적 참여 유도해야

문화도시 울산으로서의 첨병이 될 '책 읽는 울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활발한 독서운동을 펼쳐온 지자체와 독서경영을 도입한 기업의 사례를 알아보고 책 읽는 도시로서 울산이 나아갈 방향을 조명해본다.

# '책 읽는 도시'를 꿈꾸는 지자체

김해의 '책 읽는 도시' 정책은 지자체와 비영리단체가 지역의 독서 및 도서관문화의 발전을 위해 협력 체제를 구축한 국내 첫 사례로 큰 성과를 거뒀다.
 시는 2007년 '책 읽는 도시 김해'를 선포한 이래 독서문화확산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견학 인원만 전국 80개 단체 1,000여 명에 이르는 상황을 맞고 있다.  2011년 독서릴레이 책으로 뽑힌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박경화)'는 57개 단체 2만3,400여 명이 읽었다. 이와 함께 '청소년 인문학 읽기 전국대회', 1박 2일 독서캠프, UCC 제작대회, 김해의 책 독후감 쓰기대회 등을 열어 시민들의 열띤 참여를 이끌어냈다.

 김해는 울산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도서관 수는 시립도서관 4곳, 작은 도서관 33곳, 청소년 문화의 집이 38곳에 달한다. 게다가 이 도서관들은 통합도서관 시스템을 갖춰 한 곳처럼 이용할 수 있다.
 구리시의 '거실을 서재로 운동'도 눈여겨볼만한 사례다. 2007년 무서운 기세로 시작된 이 운동은 올해 12월말 현재 전체가구의 40%를 웃도는 3만여 가구가 동참하는 성과를 거뒀다. 시는 책 읽는 문화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유명작가 강연회, 시 낭독회, 마술쇼, 독서공원 건립 등 다양한 독서문화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국내 첫 기적의 도서관을 개관한 순천을 비롯한 부평, 파주, 인천에서도 독서운동이 활발하다. 부평은 부평신문, 도서관협의회, 주민센터 등 여러 단체가 힘을 보태 독서릴레이 운동, 어린이 책놀이마당, 북 콘서트 등의 행사를 열고 있으며 파주 역시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영유아에 책 등을 지원하는 북스타트운동과  독서교육 전문강사의 부모교육 등을 펼치고 있다.
 시립도서관의 운영비 전액을 지원하고 공립 도서관 11개를 세워 '작지만 큰 도서관 전략'을 펴온 부천, 북 콘서트 등을 열어 시민의 호응을 받은 인천도 책 읽는 도시 대열에 합류했다.

▲ 부평시 '책읽는 마을 책읽는 사람들 선포식'.

 
# 선진 기업들 독서경영 현장

국내 기업도 책읽기를 통한 독서경영에 나서고 있다. '기업도시'울산에 성공적인 독서경영기법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더 클 것이다. 독서경영을 선도하는 현장들을 소개한다.
 우림건설 직원은 매달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고나면 손수 쓴 독후감도 제출해야한다. 우림에선 직원 스스로 일찍 출근하거나 점심시간 짬을 내 책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1996년부터 시작된 '책 나누기' 행사는 10권, 100권씩 이뤄지다가 2004년 2,000권, 그 뒤로 5,000권이 넘는 책을 나눠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독서가 기업문화가 된 사례도 있다. 동양기전 직원에게 독서는 입사에서 승진까지 영향을 미치는 회사생활의 일부이자 기업문화다. 입사 전형 과정부터 회사가 나눠준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내고 토론하는 문화를 접한다.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며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사고의 폭도 넓힐 수 있다.
 책 읽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깨끗한 기업'의 이미지를 얻자 1995년 1,100억 원이던 매출이 2005년 2,760억 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 아시아>가 선정한 최우수 중소기업 20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울산의 도서관·정책 현황

12월 말 현재 울산 도서관 수는 공립도서관 11개 작은도서관 96개로 전국 16개시도 중 최저 수를 보인다. 도시규모 등이 비슷한 대전, 광주와 비교해도 도서관 수가 부족하며 독서인구 역시 2010년 기준 약 868만 명으로 광주 1,828만 명, 대전 1,964만 명에 비해 훨씬 적다.
 울산시 교육신도시 교육담당 정유희씨는 중구와 울주군에 공립도서관이 한 기씩 더 들어설 예정이며 2016년 대표도서관 개관을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들이 건립된다하더라도 타 시도에 비해 울산의 도서관 수는 부족하다.

 2011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적인 독서 장려를 위한 지자체의 역점사업으로 '도서관 증설 및 장서량 확대'(32.8%)가 가장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음으로 '지자체 예산 확대'(18.7%), '대중매체의 책 관련 정보제공 확대'(16.5%) 순으로 나온 것을 봐도 도서관 증설과 장서량 확대는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울산의 도서관 정책은 어떨까. 시는 4개 시립도서관에서 북스타트, 독서릴레이, 강연회, 영어 스토리텔링, 구연동화 낭독, 1일 독서교실 체험 등 각종 독서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홍보 부족 등으로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진 못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울산신문과 지자체, 관내도서관, 시민 등이 손잡고 대대적인 독서운동을 펼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 현장 직원들의 바람·조언

울산 남부도서관 이경숙 열람봉사팀장은 "울산시의 도서관 수, 지원금 등이 도시규모에 비해 열악하다"며 "북구의 경우 여러 작은 도서관 등이 들어섰으나 다른 구는 아직도 도서관 수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동네에 작은 도서관을 설립해 접근성을 높이면 시민들이 도서관을 찾는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시의 차미옥 도서관정책담당자는 "지금까지 김해가 벌여온 독서운동은 사실상 활발한 독서를 위한 기반 조성이라고 본다"며 "독서운동의 결과물은 30년 후 독서 혜택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청년이 돼 김해를 이끌고 나갈 때쯤 나올 것"이라며 "울산시도 급하게 서두르기보단 관과 민이 협동해 시민의 참여를 이끌며 추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거실을서재로구리시민운동본부는 "'거실을 서재로 운동'을 포함한 많은 독서운동이 취지와 내용이 좋아도 시민의 참여가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라며 "구리의 경우 시나 운동본부의 지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 성공의 원인이었다"며 "울산시도 관과 민이 협동해 시민에게 독서운동 참여를 호소하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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